15만 명의 조합원을 자랑하는 대형 산업별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올해 산별 교섭 요구안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현대차, 기아차 등 완성차 4사가 불참하면서 이뤄내지 못한 산별 중앙교섭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이자 대기업을 향한 경고였다.
"'대각선 교섭'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15만 명이 단체행동 벌일 것"
비록 해석을 놓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진통이 있긴 했으나 12일 발표된 단체 교섭 체계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는 "노·사는 그간의 산별 교섭의 비효율성을 완화·제거하고 교섭 체계의 안정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그간 이중 교섭과 이중 쟁의 행위 등을 핑계로 산별 교섭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 온 경영계가 산별 교섭을 인정한 최초의 합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갑득 위원장은 13일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합의문에) 세부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으나 진일보한 것으로 경영계도 산별 교섭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완성차 4사가 산별 교섭에 더 이상 불참할 명분이 없다는 압박이었다.
지난 2006년 11만 명의 조합원이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다시 출범한 금속노조의 지난해 산별 중앙 교섭 참가율은 17% 수준이었다.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것. 따라서 올해 산별 교섭에 임하는 금속노조의 최대 목표는 참가율 제고에 있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는 최근 대의원대회를 통해 △임금 협상을 지부나 지회가 아닌 중앙에서 일괄 담당하고 △타결 목표 시점을 별도로 못 박지 않으며 △대각선 교섭 등 다양한 교섭체계를 도입하는 것 등을 결정한 바 있다.
정갑득 위원장은 "중앙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교섭단을 중앙에서 파견하는 '대각선 교섭'을 진행할 것"이라며 "이마저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법대로 해보자"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각 지부별 교섭을 통해 산별 교섭 참여 확약서를 받아낸 바 있기에 올해 산별 중앙 교섭 성사에 별다른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별 교섭 준비위원회에도 완성차 4사가 이미 참가해 교섭 형태와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
또 임금 협상을 중앙에서 일괄 진행하기로 해 지부별 교섭 타결이 어려워진 것도 올해 중앙 교섭을 낙관하는 이유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속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대한 조정 신청과 단체 행동까지 준비해나간다는 입장이다.
'기본급 13만4690원 정액 인상·비정규직 매년 5%씩 정규직화' 요구
금속노조는 이날 중앙 교섭 핵심 요구안 6개와 대정부 사회적 요구안 7개를 발표했다. 중앙교섭 요구안에는 △금속산업 최저임금 99만4840원 보장 및 기본급 13만4690원 정액 인상의 임금 요구안을 비롯해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등 노동시간 단축 △원하청 불공정 거래 근절 △비정규직 매년 5% 정규직화 등이 담겨 있다.
금속노조는 이 같은 중앙교섭 요구안을 오는 14일 산하 230여 개 사업장에 일괄 전달하고 4월 1일부터 2008년 중앙교섭을 시작하자고 요구할 계획이다.
대정부 사회적 요구안의 경우 국무총리실 등에 내용을 전달하고 별도의 정부와의 협의 테이블 마련을 제안한다는 입장이다. 대정부 사회적 요구안에는 △산별 교섭 제도화 △산업 공동화 대책 및 제조업 육성 정책 마련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이 들어 있다.
금속노조는 "산별 교섭은 날로 심화되는 비정규직 확산과 대공장-중소기업 문제 등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교섭형태"라며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사용자 측과 정부는 국가발전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직접 행동에 나서 그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사용하기로 하면서 산별 교섭의 힘을 보여준 보건의료노조에 이어 올해 처음으로 실질적인 산별 중앙교섭을 추진하고 있는 금속노조의 실험이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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