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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죽었다…유일한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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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교육은 죽었다…유일한 해법은?"

[화제의 책] '대학 평준화' 말하는 책 두 권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한국. 그중에서도 입시와 취업 스트레스로 인한 10~20대 자살은 그야말로 '한국적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단어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극단적인 상황을 나타낸다.

그러나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당국은 절박한 이들을 아예 코너 끝으로 몰고 가려는 듯하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합의'에 따라 지난 6일과 11일, 전국 초·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적과 등수가 공개되는 진단평가가 실시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육의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 두 권이 나왔다.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공동소장을 맡고 있는 이득재 대구 가톨릭대 교수(노어노문학)가 쓴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철수와영희 펴냄), 그리고 하재근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이 쓴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포럼 펴냄)이다. 교육계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한 듯 두 책 모두 표지가 검은색이라는 점도 눈에 띤다.

"나를 죽이고 나를 노예로 만든 것이 우리의 교육"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이득재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프레시안

두 책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선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는 단호하면서도 직설적인 제목을 단 이득재 교수의 책은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에 대한 이 교수의 단상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여러분의 스승님은 네이버닷컴입니다', '한우 1등급, 내신 1등급', '교수인가, 삐끼인가'등 책 속에서 교육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이 교수의 표현 역시 적나라하다.

제목에 이어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도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고 한번 더 못을 박는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교실은 '유격대 훈련장', 혹은 고된 '노동'이 이어지는 '사육장'이다. 그는 "병든 가축을 폐사시키듯이 점수가 떨어지는 학생은 대한민국에서 퇴출된다"며 "그 힘든 노동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은 죽음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훈련과 노동의 기제는 '시험'이다. 이 교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 학교별 학력 평가를 위해 시험을 다시 치고 모의고사를 치고 하는 학교는 국가를 대리하여 국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각종 시험을 보는 장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패자와 승자로 가르는 '1점'이 눈앞에 보이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다른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교수는 "국가와 학교가 출제하는 시험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강탈한 결과"라고 표현했다.

결국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이 같은 '사육'에 익숙해져 버린 현실에서 교육은 실종됐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안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 무지하다"며 "아이들이 아는 것은 있을지 몰라도 배우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나를 죽이고 나를 노예로 만든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었으니 내가 왜 '88만원 세대'로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퀴즈풀이식 교육에서는 문제 제기의 능력만이 아니라 사유의 능력이 불가능하다. 대상과 마주쳐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교육에서는 불가능하다. 어려서부터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체육, 가정 등의 교과목뿐만 아니라 피아노, 태권도, 골프 등을 가르치며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강요하는 교육 환경에서 생각하고 사유할 줄 아는 능력이 탄생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민생 파단, 문제는 독재나 부패가 아니다"
▲<서울대학교 학생 선발 지침>(하재근 지음, 포럼 펴냄). ⓒ프레시안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이라는 제법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자형' 제목을 책에 붙인 하재근 사무처장이 표현한 학교도 만만치 않다. 그는 학교는 '도박장'으로, 사회는 '정글'이라고 불렀다. 하 처장은 "우리 교육은 마치 경마장이나 도박장과도 같은 풍경이 된다"며 "탐욕과 절망, 이기심과 증오라는 유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학교와 사회가 이렇게 변한 핵심 원인으로 '자유화'를 꼽았다. 언뜻 듣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보이는 '자유'. 그러나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에서 자유화란 결국 마음껏 입시교육을 할 자유,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드는 자유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지켜야할 공동체는 철저하게 훼손됐다.

"단순히 생각해서 1995년에 비해 지금의 교육이 더 좋아졌습니까, 나빠졌습니까? 학교 붕괴, 공교육 파탄, 획일성, 입시경쟁, 사교육비 폭발, 격차 심화, 지방고사, 편입경쟁 등장, 사상 최대의 유학행렬, 끊이지 않는 자살, 그야말로 대환란입니다. 자유화 개혁 이후 마치 재벌들처럼, 서울 명문대들만 저 하늘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하재근 처장은 "현재의 민생 파탄은 독재나 부패가 아니라 자유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규정하며 "하지만 그것을 알린다고 해도 '어디에서 어떻게 이 흐름을 뒤집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남는다"고 분석했다. 지금껏 독재 타도, 자율성 신장, 부패정치 척결, 소비자 중심주의 등 온갖 묘안이 나왔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의 대폭 확충은 고등학교서열체제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1등 학교가 하나이던 것을 100개로 늘렸다고 칩시다. 그럼 그중에 1등은 없습니까? 어떻게 1등이 100개가 됩니까? 대학서열체제 아래에서는 그 100개 중에서 다시 1등을 향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요즘 실업계 내실화로 지나친 학력 인플레를 잡는다고 하는데, 다 공염불입니다. 사람을 학벌로 차별하는 대학 서열체제에서 엉뚱하게 중등교육 정상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정부정책이 나올수록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사라지고, 각자 알아서 자기 인생 자기가 개척하게 됩니다."


"이기심을 추방하고 연대 정신을 회복하려면…"

두 책의 필자가 전망하는 미래는 어둡다. 이미 가속도가 붙은 경쟁체제와 자유화 현실이 나아갈 길이 너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득재 교수는 "입시 자율화로 인해 아이들은 사육장 같은 학교와 사교육의 첨병인 학원에서 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며 "돈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계급적으로 더 유리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나머지 대다수의 아이들은 영원한 패자로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단이 같아서일까.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수는 "추상적으로 원론적인 수준, 제도적인 수준의 대안이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교육 프로그램을 모두 폐기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훈련, 사육, 전쟁, 노동이 교육으로 오인되는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시험, 입시가 우선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평준화해 유럽처럼 인근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재근 처장 역시 표지에서부터 이 답을 내놓는다. 그는 '대학 평준화'라는 급소야말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쉬운 길이며, 유일한 길이라며 시작이 어렵다면 우선 국립대부터 평준화를 하자고 주장했다.

"학교별 입시성적을 평준화한다는 것은 각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국가가 몰수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소비자, 수요자들도 학교선택권을 포기할 것을 결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학교와 수요자가 공히 이기심의 자율르 포기하는 것으로서 교육에서 이기심을 추방하고 연대 정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울분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대학 평준화'. 충분히 공감은 가지만 '과연 씨알이나 먹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재근 사무처장의 말대로 이미 무한경쟁와 승자독식체제에서 단물을 '쭉쭉쭉' 빨아먹은 사람들이 너무 큰 권력을 갖고 있고, 좀처럼 그것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진보적인 교육·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긴 했지만 갈길이 멀어보인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이미 일제고사가 힘들다며 "살려달라"는 중학교 1학년생들의 목소리가 작지만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개혁 소식을 들은 학생들의 예감은 "어른들은 왜 이명박을 뽑았어요"라는 질문으로 표출된다.

자신이 88만원 세대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고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울분은 점점 차오르지 않을까. 어려운 이론이 아닌 상식에 기반한 논리와 단어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문제와 대안을 짚은 두 권의 책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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