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불법적인 중1 진단평가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전국 1% 표집에 의한 진단평가'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법적 근거도 없이 '일제고사'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교육단체 '학벌없는사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일제고사는 이미 시험지옥에 빠진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빙자한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진단평가는 지난해 2월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시험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가 몰고 올 교육 개혁의 시금석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2001년 이후 부시 행정부가 진행했던 미국의 '교육 개혁'과 그 양상이 똑 닮았기 때문이다.
시험, 카운트다운…미국 학교를 바꾼 NCLB
1980년대 이후 신보수주의적 개혁이 지속돼 왔던 미국의 교육 정책은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큰 변화가 일었다. 1965년 이후 유지돼 왔던 '초중등교육법 개정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전원성취교육법', 또는 '낙제학생방지법'(the No Child Left Behind Act·NCLB)이라고도 불린 이 법은 '경쟁과 선택의 원리'를 기존 법에 대거 도입했다.
그중에서도 핵심 사안은 매해 3학년부터 8학년까지 학생을 상대로 '표준화 학력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특히 소수인종 등의 연간 성취도 증가 보고를 의무화한다고 명시했다. 또 학업 성적, 학업 진보 정도, 각 학생집단 간 학업 차이 증감에 따른 체계적인 상벌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학교별 성적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임재훈 교수는 지난 2005년 11월 <우리교육>에 기고한 글에서 "이 같은 학력 검사는 기존에 주정부나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업 상태나 진보 상황 등을 평가하는 자료로만 쓰이던 이전 학력 검사와 달리 학교의 효율성과 교사의 질을 평가하는 직접적인 잣대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결과에 따라 교장의 학교 운영 효율성이 평가되는 상황에서 미국 내 일선 교장 및 교사들은 학생들의 시험 성적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가난한 지역의 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평균 이하인 학교에서 이런 양상은 더욱 심했다.
임재훈 교수는 "일부 학교에서는 1년에 7~8차례에 걸쳐 표준화 학력 검사를 치르기도 하고, 초등학교에서도 시험 2주 전부터 카운트다운 표시를 학교 현관에 붙여 교사와 학생 모두를 긴장하게 하기도 했다"며 "일부 도심 학교에서는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해 시험을 잘 못 볼 것 같은 아이들을 시험 당일에 일부러 결석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고 밝혔다. 매년 3~4월 시행되는 표준화 학력 검사는 이제 미국의 학생, 교사 모두를 긴장하게 만드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끌고 교육감이 미는 '일제고사'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 개편 5대 실천 과제 중 하나로 내놓았던 '기초학력·바른 인성 책임 교육제'는 NCLB의 '한국형 복사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학교가 책임지고 학습부진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현재 표본을 추출해 실시하고 있는 학력진단평가를 전국 초등학생을 상대로 확대해 시행하고,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를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새 정부의 정책 방침에 시도교육감들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25일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회장 공정택 서울특별시 교육감) 창립총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학교별 학력 정보 공개를 추진하겠다"며 관련 법령을 정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평준화를 폐지하고 '고교등급제'를 부활시키겠다는 주장에 다름없다.
한편 6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는 "시도교육감 합의로 실시하는 오늘 중학교 1학년 연합평가는 그 법적 근거와 권한이 없는 명백한 불법적인 일제고사"라고 비난했다.
초중등교육법 제9조와 시행령 제10조에 의하면 전국단위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육과학기술부에 시행 권한이 주어져 있다. 시행목적은 '교과학습 성취수준 파악', '부진학생 선별 및 기초학력 책임지도'으로 명기돼 있다. 이번처럼 전국 모든 초·중학생의 개인별 성적, 학교별 성적, 지역단위 석차 백분율 등을 환산해 공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분별한 진단평가 성적 공개는 16개 시도교육감 협의회가 합의한 '2008년 중학생 전국연합 평가 기본 계획안' 중 '비교육적인 과열 경쟁 및 학부모의 사교육비 증가 부담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개인별, 학교별, 교육청별 비교자료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본방침을 스스로 어기는 처사"라며 "앞으로 개인별 성적 공개로 인한 학생·학부모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16개 시도교육청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벌없는사회도 성명에서 "석차경쟁은 사교육 경쟁으로 비화한다"며 "지금보다 사교육비경쟁, 석차경쟁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채 시험을 강화하는 정책은 기왕의 교육붕괴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시험강화 정책을 중단하고 대학서열체제 혁파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작용은 벌써 시작…서울시 교육청 예상문제집 배포 성적 공개가 예고된 진단평가의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개별 성적표에 '점수, 평균, 전국 석차백분율'을 매겨 통보하는 서울은 이미 학원가를 중심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일제고사 대비반이 편성돼 사교육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공교육에서 '기초학력'을 책임지겠다는 기본 정책 방향과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 교육청별 평가 결과 공개가 예고된 상황에서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12월부터 '꿀맛닷컴'이라는 자체 사이트를 통해 사이버 자율평가를 하는가 하면 예상 문제집을 서울 지역 초등학교에 배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타 시도교육청의 항의가 잇따랐다. 지난 4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참교육학부모회는 "이런 방식으로 학원에서 족집게 연습을 하고 문제출제 교육청이 제공한 예상문제를 연습시켜 치르는 일제고사로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라며 서울시 교육청과 시도 교육감협의회를 질타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우리는 대학입시 자율화에 부응할 만큼 사교육비 지출이 가능한 계층을 중심으로 차별 교육을 하려는 공교육 포기전략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또 이러한 계층의 지지를 업고 오는 7월 치러질 교육감 재선에 유리한 고지를 만들려는 사욕을 꾀하는 공정택 교육감은 더 이상 학부모와 학생을 우롱하지 마라"고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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