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는 당선인의 통치철학과 이에 기반한 새정부의 국정 비전과 핵심 국정과제들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체감도 높게 정리하지 못하고 영어교육 문제같이 새정부 출범 후 각 부처의 책임 하에 기획, 집행되어야 할 개별 정책 사안들에 매몰된 나머지 당선인을 소모적 논쟁에 끌어 들이고 출범도 하지 않은 새정부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고 말았다.
'노 홀리데이' 선언에서 보듯 인수위가 열심히 일한 건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 운영을 '열심히'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열심히'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이고 '현명하게'이며 '세련되게'와 '품위 있게'라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거듭 명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박 당선인의 실용주의가 자칫 외형적 실적과 효율에 경사됨으로써 민주적 정책결정과정의 정치적 중요성과 발전의 질적 내용을 경시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다시 되풀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만들어 갈 국민성공시대가 실적과 효율에 잘 길들여져 있는 기술관료들과 전문가들과 주류 기득권 세력의 성공시대로 왜소화되면서 사회 양극화, 계층 양극화, 지역 양극화, 세대 양극화 경향이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 역시 오늘만은 유보해두고 싶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동안 이런 저런 경고와 문제제기들이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수행 평가 지지도 50% 대라는, 정권 출범기치고는 유례없이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여전히 압도적 차이를 보이는 당지지도와는 별도로 안정론과 견제론이 각각 30%대의 엇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두는 것이 좋겠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부닥칠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정치력과 관련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정치력의 핵심은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논리적 설득력인지 감성적 소구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대개의 경우 논리와 감성을 적절하게 결합할 때 대국민 설득력이 최대화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이 또한 모든 사안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다. 때로는 거칠지만 단도직입적인 결단이 더 설득력 있는가 하면 때로는 한줄기 눈물이 백마디 웅변을 능가하는 감성적 소구력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중요한 것은 이명박 당선자와 이명박 정부의 핵심주체 세력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고, 국민을 설득하는 능력이 곧 대통령과 정권을 성공으로 이끌 왕도이자 유일한 침로라는 사실을 말 그대로 뼈속 깊이 새기는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이른바 홍보와 정무기능에 대한 기술적 고민은 그 다음의 일이다.
'올바른 일을 제대로 열심히만 하면 국민이 알아줄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은 일견 '진인사 대천명'같은 겸손함과 진정성으로 비쳐지지만, 이 또한 '자신들이 절대 선'이라는 독선에 기댄 '겸손으로 위장된 오만'일 때가 많다는 것을 국민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통령과 정권이 아무리 확고하게 신념을 갖고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수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미련 없이 자신들의 신념을 꺾고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국민 제일주의'로 확고하게 무장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 국민제일주의야말로 이명박 당선인이 선거기간과 인수위 기간 내내 제1의 목표로 내세웠던 국민성공시대로 가는 지름길이다. 국민제일주의만이 국민을 주인으로 세워 국민의 성공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방식으로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국민제일주의를 정권차원의 정치적 구호나 홍보 슬로건이 아니라 모든 정책의 입안 기획 단계부터 정책의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해 확고하게 견지해야 할 제1의 원칙으로 확립할 때 이명박 정부는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국민을 성공시키는 정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야 비로소 국민에 대한 설득력, 즉 정치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식인 오늘 청와대를 나와 지난 5년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길이 쓸쓸한 낙향길처럼 보이는 이유도 '정치의 실패'에 있었음을 이명박 대통령이 깊이 천착했으면 한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들을 매번 이렇게 귀양살이 보내듯 떠나보낼 수는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의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제일주의 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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