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수상은 유럽은 '하이테크'와 고부가가치를 실현하는 고숙련 노동력과 지식 집약적 서비스 산업으로 옮겨 가자고 역설한다. 어떻게? 그는 유연성과 공평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선 구조 개혁을 제시한다. 시장에서 유연성이 담보되어야 세계화의 도전에 적응할 수 있다. 동시에 구조 개혁은 공평해야 한다. 개방에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브라운 수상의 처방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화에 직면하여 풀어야 할 과제는 한국이나 유럽이나 다르지 않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안소니 기든스 교수의 간단한 정의를 빌자면, 세계화는 세계 사회의 상호 의존성이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와 단절된 폐쇄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통용되는 상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사회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지 세계화가 아니다. 브라운 수상이 처방을 낸 것도, 영국 신노동당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인 '유럽사회모델'(ESM)을 세계화에서 적극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이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세계화에 대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샤오캉(小康) 사회'라고 자신의 가치를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세계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라는 상식을 거부한다. 세계화 자체를 한국 경제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길로 숭배한다. 세계화가 선이며, 목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결정판이다. 한미 FTA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우리 사회의 가치와 지향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브라운 수상의 팜플렛을 적용하면, 한미 FTA는 유연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세계화에 대한 대응이 될 수 없다.
지식 집약적 서비스 산업의 본보기라 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 시장을 보자. 한국의 법률 시장은 현재 일본은커녕 중국보다도 훨씬 더 경직돼 있다. 상하이에서조차 합법적인 외국인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는 서울에서는 불법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는 이러한 뒤쳐짐을 과감히 역전시키려는 적극적인 가속도가 붙지 않았다. 대신 로스쿨 파동과 김앤장 사태가 한국의 법률 시장 서비스를 짓누르고 있다.
한미 FTA의 취약계층이 농민이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으면서도, 농민의 목소리에 진실로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려는 사람들은 없다. 한미 FTA는 농민의 삶에 먹구름보다도 더 짙은 불확실성 그 자체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발표용일 뿐이다. 그 대책은 이미 오래 전에 실패로 검증되었다. 1994년의 '우루과이 라운드' 개방 대책의 복사판이다. 농업을 2차 산업화하겠다는 이명박 새 대통령의 대책은 이미 1994년의 김영삼 정부의 농어촌발전 대책에 포함된 이야기이다.
한미 FTA는 브라운 수상이 말하는 공평성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이미 충분히 많이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해 공공성과 공익규제마저 쪼개버리려는 쐐기이다. 이제 그들은 농지를 소유하기 위해, 한미 FTA의 이름으로 경자유전의 헌법 조항을 깰 것이며, 의료보험 민영화를 위해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부셔버릴 것이다.
지난 18일, 이명박 새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중국과 일본보다 먼저 미국과 FTA 체결에 성공했다고 노 전 대통령을 칭찬했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본질상 그 반대편에 있는 민족주의마저도 동원한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한미 FTA에 맞서 단식하는 모습은 고상하지도 세련되지도 않다. 그가 단식하는 모습을 보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 지도 모르고 단식한다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낡은 자는 누구인가? 강기갑 의원은 세계화 이데올로기로부터 한국 사회가 해방된 이성의 시대를 앞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세계화에 직면해 한국이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적극적으로 보전하고 유지할 것인지를 밥을 굶어 가며 공부하면서, 소통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 시대에 뒤떨어진 자는 누구인가? 강기갑 의원인가? 이명박 대통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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