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김앤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21일 토론회에서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가 한 말이다.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의 공저자인 임종인 의원(무소속)과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마련했다.
"부끄러운 줄 알라"…"한 달에 5000만 원 받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하지만 이 교수의 이런 발언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다.
"말도 안 된다. 은퇴한 고위 공직자들이 변호사들에게 얹혀 지내며 받는 대가가 얼마인데, 자발적으로 그걸 포기하겠나. 한승수 총리 후보자의 경우, 2004년 6월부터 최근까지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총 4억 2000만 원을 받았다. 한 후보자 본인이 '일한 것은 없다'라고 했는데도, 대가가 이 정도다. 고위 공직자, 판·검사 출신이 '김앤장'에 들어가면, 사무실과 자가용, 비서 등을 제공받고 한 달에 5000만 원 이상을 받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어떤 공직자가 이런 유혹을 가볍게 마다 하겠는가"
토론회를 마련한 임종인 의원의 말이다.
김앤장의 막강 인맥, 사회 질서도 흔든다
그렇다면,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왜 이토록 많은 돈을 퇴직 공직자들에게 쏟아 붓는 걸까? '인맥' 때문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가한 최병모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앤장'이 고용하고 있는 고문들은 어떤가. 그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고위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막강한 권력을 누렸고, 공직을 통해 막강한 인맥을 쌓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김앤장에 들어가 김앤장을 위해 이 사회의 질서를 위반해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데 가담하고 고액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잠시 의문이 든다. 아무리 고위직에 있었던 이들이라 한들, 결국 퇴직자에 불과한 것 아닌가. 퇴직한 공직자가 사회의 질서를 흔들 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회전문 인사'…"언제 총리, 장관으로 복귀할지 모른다"
해답은 '회전문 인사'다. 퇴직한 공직자가 '김앤장' 고문이 되고,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총리나 장관을 비롯한 고위직으로 영전하는 게 이미 관행이 됐다는 것. 언제 다시 윗사람으로 올지 모르는 퇴직 공직자의 요구에 대해 공무원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례는 흔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총리로 지명한 한승수 후보자 외에도, 현직에 있는 한덕수 총리 역시 '김앤장' 고문을 거쳤다. 또 외환 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역시 '김앤장' 고문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으로 기용됐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이 한결같이 "노무현 정부나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나 모두 '김앤장'의 영향력 아래 있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이유다.
'노명박 정부' 조종하는 '김앤장'
임종인 의원은 이날 "요즘 '노명박 정부'라는 말이 유행이다.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라며 "김앤장 고문 출신인 한덕수 씨에 이어 한승수 씨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로 중용된 걸 보니 '노명박 정부는 김앤장 정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그림자 정부'라는 단어를 자주 들먹인다. 서구의 비밀결사로 알려진 '프리메이슨'에 관한 이야기다. 유럽과 미국 정부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그저 잡담거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날 토론자들의 지적대로라면 '김앤장'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림자 정부'를 뛰어넘는다.
"국가 부도 위기가 김앤장의 기회였다"
한낱 법률사무소에 불과한 김앤장은 언제부터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게 됐을까. 이날 토론자들은 모두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계기로 꼽았다.
최병모 변호사는 이날 "선택된 소수에게는 국가의 몰락이 오히려 비즈니스에서 절호의 기회가 된다"라는 구절을 소개했다. 모리스 버만이 쓴 <미국문화의 몰락>의 한 대목이다.
최 변호사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기득권층이 더 큰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1997년 IMF 이후 크게 성장한 김앤장이 그런 경우다"라며 "김앤장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특권적인 이익을 누린 재벌기업들과 연맹을 맺어 철저하게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 결과, 재벌과 함께 급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앤장이 거둔 수익은 결국 "9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희생, 봉급 생활자의 저임금, 중소기업의 절망이라는 비용을 지불한 대가"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전형적인 엘리트 집단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은 결국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통해 이익을 거뒀다는 지적이다.
덩치 키운 재벌의 후계자 고민…해결사 노릇한 김앤장
이찬근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인천대 무역학과 교수)의 설명은 보다 구체적이다. 이 대표는 김앤장의 사업 모델에 주목했다. 국내 재벌과 해외 투기 자본과 결탁한 사업모델이 급성장의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외환 위기를 거치며, 삼성 등 국내 재벌은 오히려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배권을 장악하기는 힘들어진다. 총수 일가가 확보할 수 있는 지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수 일가는 계열사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과 그것을 후손에게 승계하는 문제에 온 힘을 쏟게 된다.
최근 관심이 쏠리고 있는 삼성 이건희 집안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도 이와 관계가 있다. 김앤장은 재벌 총수들의 이런 고민을 파고들었다.
이게 김앤장의 첫 번째 사업모델이다. 재벌 총수들이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리고 이런 지배권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돕는 대가로 막대한 보수를 받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업을 위해서는 법률 지식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 각계각층으로 통하는 인맥이 때론 더 중요하다. 김앤장은 단순한 자문 역할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앤장은 두터운 인맥과 정보를 활용해, 적극적인 '기획자'로 움직였다.
해외 투기자본의 길잡이 노릇, 김앤장의 돈줄
다른 한 가지 사업모델은 해외 투기자본을 돕는 것이다. 앞서의 사업 모델과 배경은 같다. 재벌의 규모가 커지고, 재벌 일가가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은 한계가 있어서 재벌의 지배권은 취약해 졌다. 여기에 겹쳐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해외 투기자본이 한국 국경을 넘나드는 게 자유로워졌다.
따라서 재벌 지배권의 약점을 파고들어 해외 투기자본이 이익을 누리는 게 쉬워졌다. 물론 투기 자본이 이익을 거두는 만큼, 국민 경제는 부실해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역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종사자 등 사회적 약자가 입는다.
김앤장이 이런 해외 투기자본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막대한 보수를 챙겼다는 게 이찬근 대표의 지적이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위해서도 법률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부족한 자리를 메운 게 든든한 인맥을 가진 고위 공직자 출신 고문들이었다.
소버린, 론스타 등 해외 투기자본 도왔던 한승수 총리 후보자
이명박 당선인이 차기 정부 총리로 지명한 한승수 씨가 대표적이다. 한승수 총리 후보자는 미국계 사모 헤지펀드인 소버린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2003년, 소버린이 SK와 경영권 분쟁을 하던 당시 한 후보자는 소버린 측이 지명한 5명의 사외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한승수 후보자는 이사회에서 사실상 소버린 측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버린 사건은 외국 투기 자본이 거둔 이익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경우로 꼽힌다.
이듬해인 2004년 6월, 한승수 후보자는 역시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은 '김앤장' 고문이 됐다. 고위 공직자와 김앤장, 해외 투기 자본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가 한승수 총리 후보자와 같은 '김앤장' 출신을 중용하는 것에 대해 이찬근 대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 투기 자본의 부정적인 활동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김앤장' 고문 출신인 한승수 후보자가 "총리로서 적절치 않다"라고 못박았다.
퇴직한 고위 공무원의 취업 규제, 강화해야
그렇다면, 이처럼 '고위 공직자-김앤장-재벌 혹은 해외 투기자본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적어도 이런 고리만 끊어진다면, 재벌 혹은 해외 투기자본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줄일 수 있다.
이런 방법에 대해 이날 토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퇴임한 고위 공직자의 취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최병모 변호사는 "변호사법을 개정해 법률사무소, 로펌 등이 고위 공직자를 고문으로 영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고문 명단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법률사무소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규모에 걸맞은 규제를 받고 있지 않고 있는 김앤장과 같은 조직에 대해서도 로펌과 마찬가지의 규제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앤장 특검'을 꾸리자"
토론을 마치며, 그는 "국회가 '김앤장 문제'를 조사하는 특위를 꾸릴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이 최근의 삼성 관련 의혹, 론스타 관련 의혹 등에 깊이 연루돼 있으며, 이런 의혹을 푸는 핵심 단서를 쥐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조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제안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