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에서 땅값과 아파트값 상승 또한 한국 못지 않았다. 시내 중심의 땅 값은 10년 새 열 배 이상 올랐고, 아파트도 4, 5년 새 두 배나 뛰어 졸부들이 여럿 등장하였다. 2007년에는 여섯 달만에 두 배로 값이 뛴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한 친구의 아파트를 방문하였는데, 그 옆집 주인은 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전 민영화하는 국영기업의 주식을 산 후 상장한 이후에 팔아 100배 가까운 수익을 얻어 그 아파트를 샀다고 한다. 이런 경제적 변화는 하노이 시 전체를 건설현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남부 호찌민시에는 이미 고층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하노이 또한 호찌민시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건설 붐으로 시 전체가 먼지로 뒤덮여 있다.
이렇게 베트남 경제가 활황인데, 정치체제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어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 듯하다. 공산당이 1당 지배를 계속하며 다당제를 거부하고 있고,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는 공산당 지도하의 베트남조국전선이 후보자 선발과정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정치적으로 별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근래 책방 풍경을 보면 사뭇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우선 대학 근처나 시내 중심에 책방이 우후죽순으로 많아졌다. 내가 하노이를 방문할 때마다 짱띠엔 거리 책방에 들르는데, 서, 너 해 전부터 바로 그 뒷골목 딘레 거리에 할인서점들이 여러 개 생겨 손님들로 가득하다. 물론 할인서점들은 규모가 작은 사영 서점들이라, 국영 대형서점의 잘 갖춰진 서가에서 본 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나 그래도 제법 갖추어 놓았다. 나도 짱띠엔 거리의 국영 서점에서 책을 탐색하고 그 뒷골목 할인서점으로 가는데, 20%나 깎아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하나 현상은 학교 주변에도 헌책방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묵던 공과대학 대학촌에도 많은 책방이 생겼는데, 가본 곳만도 대, 여섯 군데나 된다. 호찌민시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응웬후에나 수언투 같은 시내 중심의 큰 국영서점뿐 아니라 응웬티민카이의 헌책방 거리에도 할인서점들이 여러 개 들어섰다. 모두 소규모 사영기업인 셈이다.
작년 초 하노이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보다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존 로크의 <통치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및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베트남어 번역본이었다. 그것을 하노이 뒷골목 할인서점에서 먼저 보았는데, 이후 짱띠엔의 국영서점 서가에도 등장하였다. 특히 앞의 두 권은 초기 자유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저작들이 아닌가! 게다가, 사회주의체제로부터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주제로 한 야노스 코르나이의 책도 번역되어 나와 팔리고 있었다. 아는 친구에게 물으니 지식인들은 동요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변화가 베트남에도 왔다고 반기는 눈치다.
이 저작들의 출판은 이제 베트남에서도 자유주의가 논의되려는 시점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현재도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자유주의가 공개적으로 논의된다는 것은 다원화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야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찌민사상을 사상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회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이러한 단일 이데올로기를 견지하지 못하게 할 것임을 예견케 한다.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정치사회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쪼록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좋은 점만을 취하여 조화로운 사회로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격주간으로 내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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