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도 최근들어 중요시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CSR 활동은 '노동자에게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것'인데 반해, 이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기업은 CSR을 '기업의 이미지 개선용'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교수)가 18일 개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노동지표 개발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임운택 계명대 교수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발제문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내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력 미치는 것은 기업"
임운택 교수는 이날 전국의 노동자 1100명을 상대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설문에 응한 사람들이 기업 활동에서 중요시하는 요소는 '이윤의 극대화'(3.9점)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4.3점)과 '사회적 책임 수행'(4.1점)"이라고 밝혔다.
CSR의 중요성은 노동자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자리 제공, 고용보호, 작업환경 개선 등 자신의 삶의 질 개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큰 곳으로 전체 응답자의 48%가 기업을 꼽은 것은 이를 보여준다. 정부라는 응답은 33%, 노동조합은 10.2%였다.
비록 노동조합은 기업의 영향력에 비해 4분의 1수준에 불과했지만 임 교수는 "사업장 규모가 증가할수록 노동조합 선택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노조에 가입한 응답자가 노조를 선택한 비율은 29.2%로 비노조원보다 3배 정도 높다"고 덧붙였다. 노조 경험의 여부가 자신의 삶의 질에 노동조합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
CSR과 관련해 응답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노동권 보호 및 차별금지'였다. 30.2%가 이 항목을 꼽았다. '경제적 가치의 생성과 분배'는 28.7%, '기업윤리경영과 반부패 활동'은 20.6%였다.
또 노동부문의 가장 중요한 CSR 활동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에게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것'(55.9%)이라고 대답했다. 2위는 응답자의 50.8%가 선택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었고, 성·연령·노동시장(정규/비정규 노동)의 지위에 따른 차별해소가 38.4%로 그 뒤를 이었다. 건전한 노사관계의 유지와 개선도 34.4%였다.
그런데 그 기업은 지금?…"기업이 내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지 않더라"
나의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기업이지만, 기업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기업이 쥐고 있는 힘을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에 쓰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대다수였다.
응답자의 52.8%는 "기업이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다"고 대답했다. "크다"는 응답은 47.2%였다. 정규직은 긍정적 평가가 50.7%로 비정규직 보다 6%포인트 정도 높았다.
이들 기업의 CSR 활동에 대해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이 45.1%로 "만족스럽다"는 의견(9.1%)에 비해 5배가량 높았다.
"기업은 CSR 활동을 이미지 개선용으로 인식"
우리 기업들이 CSR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을 보면 이 같은 조사결과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권순원 교수가 2006년 기준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조사에 응한 40개 기업을 놓고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기업은 CSR 추진과 실행을 담당하는 조직 내 부서를 두고 있는 등 "CSR에 대한 인식의 일반적 경향을 매우 적극적"이었다.
문제는 우리 기업이 생각하는 CSR의 방향이다. 조사 결과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CSR의 활동 영역은 '기업 거래의 투명성 및 윤리적 행동'이었다.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CSR의 활동 영역과는 거리가 먼 결과였다.
또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의 권리 인정' 문제는 CSR에서 중요도가 낮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권 교수는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CSR과 노동문제를 개별적인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향의 반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들이 CRS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 1순위가 "기업의 명성 유지 및 긍정적 이미지 형성"이라는 것은 국내 기업이 생각하는 CSR에 대한 인식 수준을 엿보게 한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CSR 활동을 기업의 이미지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함을 추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법적 규제 있어야 기업이 지키더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CSR 관련 국제표준인 유엔(UN)의 글로벌 컴팩트와 GRI 가입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유엔 글로벌 컴팩트에는 10개 기업, GRI에는 14개 기업만이 가입한 상태였다.
권 교수는 "이 두 가지 국제 표준이 기업의 CSR 활동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의 기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이 실시하는 CSR 활동은 매우 '자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또 참여연대가 제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 지표'를 바탕으로 기업의 수행 성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실행 수준 및 노력의지가 높게 나타나는 분야는 △건강하고 안전한 직장 △건전한 노사관계 등 법률적 요구로 제도화돼 있는 영역들이었다. 반면 △지역사회 배려 △차별 없는 직장 등의 지표는 실행 수준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법적 규제가 있어야만 기업이 의지를 가지고 실행을 하더라는 얘기다.
때문에 권 교수는 "결국 CSR-노동관련 기준의 실행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준의 제도화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CSR 제일 잘하는 기업? 삼성!"
흥미로운 것은 임 교수의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제일 CSR을 많이 실천하는 기업으로 삼성을 꼽고 있다(58.7%)는 점이다. 현대(34.9%)와 엘지(29.7%)가 뒤를 이었다. 이는 '노동권 보호'를 CSR과 관련해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응답과 배치된다. 삼성은 소위 '무노조 경영'을 철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이와 관련 "이는 노동자들이 우리 기업에 바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과는 확실히 배치되는 것"이지만 "CSR에 대한 인지 경로가 신문 방송 등 미디어(81%)가 압도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매스미디어에서 자주 접하는 기업의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모순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CSR 노동지표로 기업 감시할 것"
임상훈 한양대 교수는 이날 노동에 관한 기업의 사회책임 이행 가이드라인과 이행 수준 평가 척도로 활용될 수 있는 10대 분야 50개 노동지표를 발표했다.
임 교수는 기존의 글로벌 기준에서 저출산, 아빠의 적은 육아시간 등 국내 현실을 반영해 '가족친화' 항목을 포함시키고, 하청업체의 희생이라는 한국경제 구조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 '지역사회 배려' 항목에 '원청 대기업에게 하청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고용 개선과 건전한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부과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발표한 10대 분야 50개 지표를 보완한 뒤 이를 바탕으로 각 기업들의 노동 사회 책임 이행 정도를 평가, 점검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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