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한국 국회의 한미FTA 비준 움직임에 대한 미국 의회의 반응은 '비아냥'이었다."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활동을 벌이고 돌아온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18일 "내가 만난 미국 국회의원들은 모두 '한국 국회에서 한미 FTA가 비준된다고 우리(미국 의회)가 영향을 받을 거라고 너도 생각하냐'고 말하는데 한국의 자존심이 깡그리 무시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 의원들 "우리가 부결시켜야만 우리 입장 제대로 알겠냐"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는 한국 국회 때문에 '쪽 팔렸다'는 얘기다. 더불어 "한국 국회의 조기 비준동의안 처리가 미국 의회를 압박할 수 있다"는 조기 비준 처리론자들의 논리는 미국 의회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얘기일 뿐이라는 반박이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기자실에서 한미FTA 반대 방미 성과 설명회를 갖고 "내가 직접 만난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가 (한국처럼) 빨리 상정하면 오히려 좋겠다. 상정되면 바로 우리가 부결시킬 것인데 그렇게 해야만 한국이 (우리 입장을) 제대로 알겠냐'고까지 말했다"고 전했다.
미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부시 행정부 내에서 처리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얘기였다. 민주당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이후 한미 FTA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대외통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기사 : 美의원 한 목소리 "한미 FTA, 조기 비준 계획 없다")
이 위원장은 "이런 사정이니 한국 국회가 비준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한국 국회가 미국 의회 상황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도 "한미 FTA에 대해 미국 의회와 우리 국회가 현격한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미 의회의 이 같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현 정부 임기 내에서 처리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서로 적극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노총과 '공동선언' 발표…이해관계 다르나 "한미 FTA 반대" 한 목소리
이석행 위원장은 방미 기간, 미국 노조를 대표하는 단체인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승리혁신연맹(CTW) 관계자들을 만나 지난 13일 '한·미FTA에 대한 한미 노동자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동선언을 통해 "체결된 한미 FTA는 노동자의 권리, 공공서비스 그리고 환경보다는 투자자의 권리를 특권화시키는 경제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는 양국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노동유연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이들은 "제기된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양국 의원들이 한미FTA를 강력히 반대할 것을 공동으로 촉구한다"며 "한미 FTA가 비준되지 않도록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노총 및 승리혁신연맹이 한미 FTA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총과는 차이가 있다. 쇠고기, 자동차 부문 협상이 미국에게 불리하게 타결됐다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미국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가 뒤섞여 있는 것.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이와 관련 "미국노총의 '한미 FTA 반대'는 자신들의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도 들어 있지만 또 노동환경기준의 강화와 부시 행정부의 신 무역정책에 대한 문제의식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국내 현안에서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노동환경기준의 강화 및 양국 정부가 추진하는 FTA 모델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감대 속에 양국 노총은 오는 7월 일본에서 열리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공동행동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또 민주노총은 오는 20일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상시적인 투쟁본부 체계로 조직을 전환하고, 공공부분 민영화와 한미 FTA 등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대응을 모색 중이다. 6~7월 총력투쟁을 위해 이석행 위원장은 지난해 지역별 '현장대장정'에 이어 오는 3월 말부터 산업별 '현장대장정'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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