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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믿고 인생 걸고 공부한 우린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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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믿고 인생 걸고 공부한 우린 뭔가요?"

[현장] 가라앉지 않는 예비 영어교사들의 분노

"이건 정말…울고 있는 사람 뺨을 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인터뷰를 하던 이주섭 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곁에서 휴지를 건네주던 다른 이들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커뮤니티 '영어 예비교사와 현직교사의 모임'의 회원 10여 명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 모여 있었다. 이날 이곳에서 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예비교사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영어교육 정책방안을 발표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013년까지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전용교사(TEE)를 2만3000명 가량 신규 채용하겠다고 했다. 인수위는 테솔(TESOL) 자격증 소지자,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전직 외교관 등에게 응시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정규직이 아닌 3~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고도 했다.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분통이 터진 이들은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낙방을 거듭하면서도 수 년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해왔던 영어 예비교사들이었다. 인수위가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인수위가 개최한 공청회에도 참석하려 했다가 방청이 불허돼 발길을 돌린 바 있다. 이날 교육대학생 집회에 "죽기 싫어 나왔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수년 간 준비한 예비교사보다 '테솔'이 우월하다니…"

"사설 영어학원에서 영어도 가르쳐 봤고 테솔 수료증도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교사자격증 따려고 40대 1이 넘는 경쟁률 뚫고 사범대에 편입했다.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학원에서 가르치면서 몸 망가져가며 공부했다. 그런데 임용고시 1차에서 1.27점 차이로 떨어졌다. 억울하다고 했더니 다들 '여유있게 떨어졌다'고 하더라. 2차 시험까지 본 이들은 0.01점 차이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게 어떤 차이인지 안 겪어본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커뮤니티 대표를 맡고 있는 이주섭 씨는 "인수위가 예비교사들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해마다 치러지는 임용고시에는 매년 수백,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 준비를 거듭해온 예비교사들이 몰린다. 이 씨는 "그렇게 낙방을 하는 이들이 승복하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는 남들이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국가를 믿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인수위가 발표한 정책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이미영 씨도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현재 임용 과정이나 교육과정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현행 제도로도 실력있는 사람들을 뽑을 수 있는 걸 모르나. 작년에만 8000명이 영어교사 시험을 봤다. 20대1이 넘어간다. 이를 통과한 최근 영어교사들은 실력이 정말 좋다. 떨어진 이들도 실력이 없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임용시험이 3차로 바뀐다. 인수위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쓰기(writing)와 말하기(speaking) 능력, 수업실기능력이 제대로 평가될 수 있도록 시험이 바뀐다. 그런데 돈을 내면 6개월 만에, 심지어 2주만에 딸 수 있는 테솔 자격증을 더 우월하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봐요, 그 투자 우리한테 하면 안됩니까?"
▲ 이날 집회에 참석한 영어 예비교사 모임 회원들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교육대·사범대학생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시안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인수위의 발표 중 무엇보다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실력'을 운운하며 테솔 자격증 소지자, 유학생 등을 영어교사로 채용하겠다는 말이었다.

"저도 세금 내는 사람이고 이를 비효율적으로 쓰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열심히 교사를 준비한 우리를 제껴두고 몇 조원을 투입해 그들을 챙긴다니. 여기에 이명박 당선인이 있으면 묻고 싶다. '이봐요. 그렇게 통크게 돈 쓰시는 김에 우리에게 쓰면 안됩니까? 국익이라고요. 우리가 애들 잘 가르쳐서 국익으로 얼마든지 돌려드리죠.'"

"영어교사 뿐만 아니다. 매년 각 시도에서 1~2명씩 뽑는 다른 과목을 준비해온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은 비통하지 않겠나.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해외 교포들을 교사로 뽑겠다? 그건 교육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지 않나. 공정한 경쟁이라면 당당하게 겨뤄 같이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곧 사범대를 졸업한다는 김 모 씨와 강 모 씨는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만들어놓은 법을 그렇게 갑자기 바꿀 수 있나? 준비해온 이들이 당황하는 건 생각지도 않나. 구제책도 없이, 유예기간도 없이 내년부터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지… 하다못해 로스쿨 도입도 그러지 않았나. 아직 받지도 못한 교원자격증이 휴짓조각이 된다는 게 너무 마음아프다."

"의사에게 한 가지 방법 외에는 수술 말라는 것과 똑같다"
▲ 테솔 과정을 운영하는 한 외국 사설기관 웹페이지 홍보글. 4주짜리 단기 코스, 100시간짜리 온라인 코스 등을 통해 '테솔'을 취득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들은 인수위가 말하는 영어교육 강화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방법론'에서 완전히 어긋났다고 비판했다.

학원 강사로 수 년간 일한 경력이 있는 이주섭 씨는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결국 온 국민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것 반대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애들과 그렇게 수업하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교수법 중 하나이다. 이건 마치 의사들에게 수술법을 지정해서 어떤 방법 이외에는 수술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 않나."

"전 그분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가 뭔지 궁금하다. 기러기 아빠를 없애는 것? 그걸 위해서 이렇게 들쑤셔 놓는게 교육의 목표인가. 영어를 외국어로 가르쳐야 될지, 의사소통 수단으로 가르쳐야 될지도 정하지 않은 분들이…."

이날 인터뷰 내내 이들의 목소리가 떨렸던 건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이들은 "전국에 있는 많은 예비교사들이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며 "앞으로 인수위가 이대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천세영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상임자문위원(충남대 교수)은 지난 12일 한 토론회에서 영어 예비교사들을 향해 "굉장히 오해하고 있다"며 "그분들(예비 영어교사들)이 일차적인 자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분들이 배제됐다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인수위는 지난달 30일 공청회를 끝으로 가라앉지 않고 있는 영어교육 논란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인수위와 인수위원장의 '무책임'한 제안에 '오해' 속에서 불안해하는 이들을 탓해야 하는 걸까? 기러기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이들이 흘리고 있는 눈물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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