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한반도 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이 발족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대법대 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가진 '한반도 대운하 긴급 점검' 토론회에서 모임의 발족을 알렸다.
이날 발기인 명단에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상종 자연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정욱 환경대학원 교수, 송영배 인문대 철학과 교수, 이준구 사회대 경제학부 교수 를 비롯 84명의 교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간 경부운하 계획에 찬성하는 전문가들만 목소리를 내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새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대선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고 총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시기라 '정치적 편향' 의혹을 사기도 쉬운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듯 31일 서울대 법대 백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 방청한 기자들은 토론회 내용 보다는 교수 모임의 정치적 편향 의혹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던지기도 했다.
"운하 사업 입장은 진보·보수 문제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시각에 대해 단호히 부정했다. 최영찬 교수는 "정치적 관점에서의 반대로 비춰질까봐 상당히 걱정스럽다"면서 "그러나 운하 사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 진실과 거짓, 과학과 허구의 문제다. 운하가 국익이 되는 사업이냐는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것 아니냐. 학술적 진실에서 접근할 것"이라고 모임 취지를 밝혔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이현숙 교수도 "모임에 참석한 교수들의 정치적 성향만 두고 보자면 보수부터 중도, 진보를 아우른다"며 "교수 중 상당수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표를 줬으나 대운하 건설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해서 이름을 올린 분도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정치적 의혹'을 무릅쓰고 이렇게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로 '학자적 양심'을 들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상종 교수는 "(인수위는) '사업을 잘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방법 없는 사업은 없다. 그런 사업의 방법들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서울대 교수들인데 그런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학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모임을 주도한 교수들은 교수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훨씬 높은 호응을 얻자 스스로도 놀란 표정이었다.
정용욱 교수는 "이 모임이 처음 거론된 건 겨우 일주일 전"이라며 "일 주일만에 80명의 발기인이 모였다"고 말했다. 그는 "말그대로 '국토의 운명'이 달려 있는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폭넓게 공유됐다. 사실 미리 검증해 잘못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이명박 당선자에게도 좋은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추가적인 서명을 받아 2월 중순 기자회견을 통해 성명서와 서명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현재 150분 정도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경부 운하 계획을 검증할 검증위원회의 구성도 검토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러한 교수들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500석의 좌석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서있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 이날 토론회에는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운하 반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일부 학생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또 사전에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이날 토론회의 자료를 미리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활동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보여줬다.
"영혼을 상실한 전문가에게 분노"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경부운하 계획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전문가들을 비판하는 발언이 많이 나왔다. 이들의 '집단 행동'에 진실을 은폐하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박창근 교수는 인수위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을 "영혼을 상실한 전문가"라고 지적하면서 "정치권에서 '운하시간표'를 만들어서 전문가들을 몰아붙이고 있다"며 "정보 외부 유출을 금하고 밀실에서 작업하며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형식적으로 토론한다"고 비판했다.
김정욱 교수도 "말그대로 '곡학아세'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거짓말도 엄숙하게 한다.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어 좌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홍성태 사회학 교수는 실명을 거론해가며 이들을 비판했다. 홍 교수는 "이명박 당선인 쪽에는 이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과 같은 전문가가 없다"면서 "당선인을 대신해서 온갖 매체에서 운하 최고 전문가로 나오는 추부길 팀장은 목사다. 전지전능한 능력을 부여받아 운하 전문가가 됐는지 모르나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우익 교수에 대해서도 "운하 건설과 지리학은 다르다. 막중한 토목 사업에 책임자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운하 관련 토론 등에서 찬성측 패널로 나오는 정동양 교원대 교수,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등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2003년 독일 라인강 답사 때 '라인강은 식수원이 아니라 배를 띄울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분이고, 정 교수는 청계천 사업에 대해 생태 복원 사업이 아니라고 비판했던 전문가인데 운하에 대해서는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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