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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박성화 감독이 핸드볼 선수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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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박성화 감독이 핸드볼 선수였다는 것"

[프레시안스포츠] 핸드볼은 한국스포츠의 모태...장윤창, 염종석도

29, 30일 일본을 꺾고 남녀 동반 베이징 올림픽 본선진출에 성공한 한국 핸드볼은 한국 스포츠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핸드볼 선수 출신의 축구, 배구, 야구 등의 스포츠 스타를 살펴보면 그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현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인 박성화. 박 감독은 울산 청량초등학교 때부터 핸드볼을 했다. 청량중학교에서도 계속 핸드볼 선수로 활약한 박 감독은 핸드볼 장학생으로 울산공고로 진학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체육교사의 권유로 남창중학교로 전학간 뒤 동래고에서 축구 선수로 이름 석 자를 알릴 수 있었다. 박 감독은 "과거에 시골 학교의 환경에서는 축구부나 야구부를 정식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핸드볼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주로 운동에 재능있는 선수들이 도 체육대회 같은 것에 참가하기 위해 핸드볼에 입문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어제는 축구 대표팀 경기와 겹쳐 핸드볼 경기를 못 봤지만 내가 선수로 뛰어서 그런지 늘 핸드볼에 관심을 가져왔다. 과거 태릉 선수촌에서도 핸드볼 선수들 중 후배를 만나면 반가웠다"고 덧붙였다.
  
  '돌고래'를 연상시키는 다이내믹한 스카이 서브와 스파이크가 전매특허였던 왕년의 배구 스타 장윤창과 강만수도 핸드볼 선수로 출발했다. 장윤창은 안양초등학교 시절 핸드볼 선수로 소년체전에 출전해 동메달까지 따냈던 핸드볼 유망주였다. 하지만 주변의 배구부가 있는 중학교에서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유연성을 갖춘 장윤창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장윤창은 경기도 송산중학교로 진학해 배구 선수로 전향했다. 한 때 한국 배구의 주포였던 강만수도 초등학교 시절 잠깐 핸드볼을 했었다. 두 선수의 경우 배구에서 꼭 필요한 강한 스파이크의 원동력인 강한 팔의 스윙은 사실상 핸드볼에서 비롯된 것.
  
  1992년 앳된 모습의 고졸 신인으로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슬라이더의 귀재' 염종석도 핸드볼 선수 출신. 그는 부산 동일초등학교에서 핸드볼을 했고 육상 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의 사장인 김응룡 당시 해태 타이거즈 감독은 "염종석의 슬라이더를 선동렬에 버금간다"며 극찬을 했었다. 그의 예리한 슬라이더도 핸드볼 선수 경력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다. 핸드볼의 경우 그 어떤 스포츠 종목보다 순간적인 스냅을 활용한 빠른 스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운동에 재능이 있던 한국의 스포츠 선수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핸드볼 선수로 뛰었던 경우는 매우 많다. 실제로 핸드볼은 다른 스포츠에서 필수적인 던지기, 뛰기에다 몸싸움 등을 익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유망주들은 결국 주위의 권유 등으로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대신 인기 종목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는 많은 핸드볼 유망주가 다른 종목을 택했다는 점은 핸드볼 계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한국 핸드볼이 그간 한국 스포츠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에 큰 밑바탕을 형성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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