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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인권 탄압에 맞서기 위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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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인권 탄압에 맞서기 위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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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절차로 보는가 분배나 계층 같은 좀더 구조적인 차원으로 보는가에 따라 의견이 좀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몰라보게 진전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슨 말을 하든 함부로 제한받거나 구속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옛 군사독재 시절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아이들입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아이들에게만은 자유가 있었습니다. 마음껏 뛰어놀고 어른들의 강제가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느리고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아보이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정서와 인간적 면모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감옥에서 지내는 수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평균적으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이른바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들은 경쟁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과거식 어린이 탄압, 즉 폭력이나 권위주의적 방법을 통해 아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구속하는 일은 이제 적어졌고 누구나 비판적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심한 매로 다스리는 교사는 발붙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더 강도 높은 구속이 이루어지는 오늘의 어린이 탄압은 전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탄압은 이른바 '아이의 미래'라는 강력한 명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모든 아이들이 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자유와 인권이 이 정도로 구속되는 예는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가공할 인권탄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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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가 IMF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라는 무한경쟁 체제로 변화하면서 아이들이 경쟁의 감옥으로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경쟁의 감옥에서 중요한 건 인간적 면모가 아니라 경쟁력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길러지는 것입니다. 옛날엔 아무리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들에겐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너 하나만 잘났다고 되는 게 아니다." "너보다 약하고 불쌍한 동무를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젠 진보적인 부모들도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못합니다. 가르친다고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 쯤이면 끝입니다. 동무는 곧 경쟁자이며 경쟁자를 존중하라는 말은 패배를 준비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한국의 부모들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그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단지 이 무한경쟁의 바다에서 제 아이가 도태될까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학생 쯤 되는 아이가 있는 집에 가보면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타자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없고 소통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짜증스럽고 종종 공격적입니다. 지나치다 싶어도 부모들은 별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한국의 아이와 부모는 엘리트 체육의 선수와 코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선수의 성적을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코치들은 선수의 인간적 면모에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설사 문제가 보인다 하더라도 이미 과도한 훈련에 심신이 포화상태에 이른 선수에게 그런 부분까지 요구한다는 건 엄두가 안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잘못 자라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근심하면서도 도리없이 경쟁에만 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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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진 않더라도 아이들을 이렇게 키울 때 우리의 미래가 어떨지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돈과 소비적 가치관으로 뭉친 아이들이 자라 불과 10년 후, 늦어도 20년 후 우리 사회가 그런 인간들로 가득찬다고 상상해봐야 합니다. 지금 어른들끼리 사회에 대해 말하고 진보와 개혁을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운다면 우리는 공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은 진정한 행복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우애나 연대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소비나 축적이 아니라 사람과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들입니다. 우리가 그걸 아는 건 우리가 아이일 때 자유롭고 느린 시간들 속에서 그걸 경험하고 또 부모에게서 그걸 목격하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경쟁만 배운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을 알 수 있겠습니까? 무려 20여년 의 인생을 수인처럼 살고 난 다음 무엇이 행복인지 어떤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경쟁에서 이기든 지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는 세대간의 존경이 사라집니다.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었다고 재산을 갖게 해주었다고 감사할 순 있습니다. 전에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우승한 여성은 "명동 아무개 미장원 사장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하곤 했지요. 그것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실용적 기여에 대한 감사이지, 그 사람을 인간적으로 존경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부모는 최선을 다해 자식의 미래를 준비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존경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지금 상태로라면 부모는 자식에게 '명동 아무개 미장원 사장님'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들, 세대간의 존경의 단절은 우리 사회의 공멸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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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일은 두가지 편견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의 한 시기가 다른 소중한 시기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은 어른 시절을 위한 준비기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어른들의 생각입니다. 지난 시절은 지금이 아니니까 지금에 미친 영향만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어른도 자기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은 중요한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시기가 다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둘째는 내 가치관을 기준으로 아이의 인생을 구성하려 합니다. 어른은 아이를 보호하고 돕는 사람이지 자기 가치관을 기준으로 그들을 구속해가면서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는 부모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두가 제 아이의 미래만을 생각할 때 우리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모든 부모와 성인들이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보다 중요하며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모든 성인들이 동병상련의 정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회 문제에 대한 일정한 차이가 있습니다. 만명에겐 만명의 의견이 존재해야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서로 존중하지만 오늘 아이들 문제에 관해서는 연대해야 합니다. 이른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공할 어린이 인권탄압과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공멸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경쟁만 배우면 행복할 줄 모릅니다"라는 이름의 전사회적 어린이인권 캠페인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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