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내 친구는 그 이유에 대해 종종 이렇게 얘기한다. "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니까. 주인이 돈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정상인이든 장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전혀 상관하지 않으니까." 그리곤 그 친구는 장애인을 따라 다니며 길거리에서 사는 어떤 개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개한테는 사는 데가 궁전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오로지 주인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자기와 같이 사는 주인. 이 세상에 그런 동물은 개밖에 없어."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쿨(cool)한 감성'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쿨하다는 건 개가 아니라 고양이를 좋아하는 감성과 같다고도 얘기했다. 쿨하다는 것은 타인과의 사이에서 스스로 벽을 쌓고 혼자 고립돼 있는 상황을 그러지 않은 척, 드러내지 않으려는 자기 안간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근데 그럴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살 수가 있겠어? 그렇게 사는 게 맞아? 그래서 난 쿨하다는 이야기들을 믿지 않아. 모두들 가식적으로 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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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것이 좋아 |
1월 흥행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뜨거운 것이 좋아>의 권칠인 감독은 이 영화가 전작인 <싱글즈>에 이어 또 다른 여성들의 쿨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 대해 그것과는 조금 다른 각도로 설명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약자의 존재니까요. 여성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면 세상이 제대로 보이니까요." 결국은 쿨한 것보다는 진정성이 먼저라는 것,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우선논리라는 것, 권칠인 감독이 <뜨거운 것이 좋아>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전혀 다른 영화같지만 루마니아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를 보면 세상의 모든 영화작가들이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차우세스크의 괴물 같은 독재정권이 끝나던 1989년 12월 22일 12시8분엔가 10분엔가 당신은 어디있었느냐는 걸 묻는 영화다. 그 시간 전에 광장에 있었으면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이 되고, 그 후에 있었으면 슬쩍 승자에 편승한 비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때 거기에 있었느냐 아니냐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고, 시골마을 방송국에 모여 토크를 벌이는 '희대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심문하듯 몰아치는 것은 그것때문이다. 그 지리하면서도 시종일관 낄낄거리게 만드는 이 셋의 정치토크쇼의 말미에 한 여성 시청자가 전화를 거는데 그 내용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밖에 눈이 와요. 지금 빨리 나가서 눈오는 거 보세요. 그렇지 않고 하루만 지나면 이 눈은 진창으로 변해있을 거에요. (그만들 떠드시고) 어서들 눈구경하세요." 그런 것이다. 혁명에 앞장을 섰든 사람이든 뒷짐을 지고 있었던 사람이든 그 혁명의 가치를 올바로 오랫동안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가서 함께 눈구경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짐짓 쿨한 척 하면서 방에 처박혀 있으면 기다리는 건 진창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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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
왜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가.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 이해와 소통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해와 소통의 범주엔 제한이 없다. 일도, 사랑도, 연애도 뜨거운 것이 좋은 여자들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어느 날 광장에 나가 세상의 변화를 외칠 수가 있다. 그러면 비로서 그때 거기에 있을 수 있다. 두편의 영화가 아주 다르면서도 사실은 같은 구석이 있다고 얘기하는 건 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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