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는 참 딱하게 됐다. 새 정부 출범 뒤 불과 한달 보름 만에 치러질 총선을 위한 얼굴마담이거나, 우선순위로 거론되는 이들이 자리를 고사해 '어부지리 관운(官運)'을 챙긴 사람이 될 테니 말이다.
초대 총리 인선은 새 정부 인사정책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대단히 크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인 측의 '하마평 정치'는 행정 각부를 통할할 국정의 2인자에 대한 인사를 일찌감치 정치용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박근혜 전 대표와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가 그렇다. 이 당선인 측은 표면적으로는 당 안팎의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안아 '국민통합'을 상징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누가 봐도 4월 총선을 위한 포석이 속내다. 박 전 대표는 총리로 발탁될 경우 총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당내 정치력이 현저히 약해진다. '심대평 총리설' 역시 이회창 전 총재가 추진 중인 충청권 보수신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와 무관치 않다.
두 사람이 우선순위로 거론되자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오직 이 당선인만 (총리 후보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아무도 모른다"고 일축했으나, 이 당선인의 최측근인 최시중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은 "둘 다 유력하다"면서 "시간을 갖고 다시 요청해야 하지 않겠느냐. 계속 제안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와 심 대표가 분명한 거부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선인 측근들이 띄우는 애드벌룬은 실제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적 효과만 최대한 챙기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공식 제의도 아니고 언론을 통한 떠보기라면 삼고초려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비정치인들도 덩달아 체면을 구겼다. 1, 2 순위 정치인 후보들이 그들 나름의 정치적 이해에 의해 고사한 자리를 꿰차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은 9일 인수위발 총리 하마평을 다룬 언론기사를 언급하며 "박근혜 전 대표와 심대평 대표는 아닌 것으로 본다"며 "총리는 비정치인으로 할 것"이라고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능력과 자질보다 정치인이냐 비정치인이냐를 총리 인선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우습다. 또한 비정치인들마저도 그들의 전문적 역량과는 전혀 별개의 목적에 의해 거론되는 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게 소위 '충청도 총리론'이다. 물망에 오른 안병만 전 한국외대 총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이원종 전 충북지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총선에서 충청권 표심을 긁어모으려는 얄팍한 계산의 산물이다. 거론되는 이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책임총리' 만큼의 위상에 못 미치는 '대통령 보좌역' 정도의 총리라지만, 가뜩이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인선된 총리가 무슨 소신과 권위를 가지고 국정에 임할 수 있을까.
이 당선인의 '실용인사' 방침이 노무현 정부식 '코드인사'와 기업식 '토사구팽'의 결합이라면 이명박 정부 역시 인사에서 무너질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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