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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들떠있는 지금 당신의 이웃은…

'외로이' 거리에 서 있는 KTX승무원, 이랜드, GM대우 비정규직

들떠 있는 연말이다.

누구는 샌드위치 연휴를 맞아 월차를 내고 해맞이를 보러 가고, 누구는 TV 앞에서 각 방송사의 연말 특선 영화에 빠져 있고, 또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약속을 하는 시간.

그 시간에도 여전히 영하의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새해 소망요? 다시 일할 수 있는 것 뿐이예요"

누구에게나 지난 시간은 늘 '다사다난'하게 느껴지겠지만, 명동 한복판에서, 서울역 앞 천막 안에서,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그리고 일하던 GM대우 부평공장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20m 높이의 CCTV 관제탑에서 연말을 맞는 이들에게 지난 한 해는 참 지독하게 '다사다난'했다.

누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파업 중에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았고, 누구는 일하던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해 정문 앞에서 용역 경비원과 살을 부딪히며 서로를 할퀴어야 했으며, 또 누구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회사가 폐업을 해 길거리로 쫒겨 나기도 했다.

그 한 해를 여전히 거리에서 돌아보며 "착잡함"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새해 소망을 묻는 일은 '부질없어' 보였다. KTX승무원, 이랜드 비정규직, 코스콤 비정규직과 GM대우 비정규직. 회사 이름과 관계없이 거리에서 저무는 한 해를 바라보는 이들의 바람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그저 하루라도 빨리 다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 밖에 없어요."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농성 중인 KTX 승무원
▲ KTX 승무원들은 지난 27일 또 다시 서울역 앞에 천막을 세웠다. 지난해 3월 시작한 파업 이후 몇 번째 천막농성인지 헤아리기도 어렵다.ⓒ민중의 소리 김철수 기자

KTX 승무원들은 지난 27일 또 다시 서울역 앞에 천막을 차렸다. 지난해 3월 시작한 파업 이후 몇 번째 천막농성인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새마을호 승무원 10명을 포함해 모두 80명의 승무원들이 농성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더욱이 '역무 계약직으로 직접고용'이라는 노사 잠정합의서가 타결 직전 불발로 끝나 시작한 농성이었다. (☞관련 기사 : KTX 승무원 노사 합의, 타결 직전 불발)

연내 타결의 희망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지금, KTX 승무원 오미선 씨는 "잠정합의서를 쓰고 나서는 안팎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마음은 참 가벼웠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이미 다들 해결된 걸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기자들도 그렇고 교수님들도 그러시고요. 그런데 다시 농성을 하려니…."

미선 씨의 말끝이 흐려졌다.

"2년 가까이 파업을 하면서 승무원들의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병원 다니고 약 먹는 사람들도 많고요. 지금은 오히려 몸을 추슬러야 할 때인데 맨 바닥에서 한 겨울에 다시 천막농성을 하게 되니 마음이 아프죠."

"그만큼 일하고 싶어서…."

승무원들은 길 위에서 연말을 보내는 것이 두 번째다. 같은 이유로 시작한 파업이 어느덧 두 해를 넘기고 있다. 그래도 미선 씨는 "지난해 연말에는 '도대체 언제나 끝날까' 막막함이 컸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싶어 다시 길 위에 선 것이니 마음이 작년보다는 가볍다"고 했다.

비록 잠정합의서가 사인 직전 불발로 끝나긴 했지만 철도공사와 계속 사태 해결을 위해 논의 중이라는 것. 비록 '마지막 농성'이라고 말하기는 "섣부른" 감이 없진 않지만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농성인 셈이다.

미선 씨는 '승무직 직접고용'을 요구해 왔던 승무원들이 역무 비정규직이라는 안을 받아들인 데 대한 안팎의 시선들이 부담스럽기도 한 모양이었다. "우리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안이었고 외부에서도 많은 비난이 있는 것을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정리됐으면 하는 것은 그만큼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년 가까운 파업 기간 생계 문제에 대한 고민도 무시 못하는 거거든요. 파업을 해 본 사람들은 저희를 이해하리라고 봐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새해에는 그저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험, 적금 다 깨서 쓰고 마이너스통장으로 사는" 이랜드 노동자
▲ 파업 6개월을 넘기고 있는 홈에버, 뉴코아 등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빠른 해결을 바라는 것은 역시 생계 문제도 크다. 파업 직후부터 수배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43일 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박양수 뉴코아노조 위원장도 마찬가지다.ⓒ프레시안

파업 6개월을 넘기고 있는 홈에버, 뉴코아 등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빠른 해결을 바라는 것 역시 생계 문제가 크다. 파업 직후부터 수배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43일 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박양수 뉴코아노조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파업하기 전에 들고 있던 보험이랑 적금은 이미 다 깨서 벌써 다 썼죠. 지금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거죠. 아내도 가정주부인데 생활이 될 리가 없죠…."

지난 6월 비정규직법 시행 직전 파업에 들어갈 때 600여 명이던 파업 참가자는 어느덧 30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오랜 파업으로 인한 생계 문제가 제일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뉴코아노조는 최근 당초의 요구안에서 대폭 물러선 양보안을 사 측에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2009년까지 단계적 정규직 전환, 세부 사항은 사 측에 일임'으로 바뀌었고, '정규직의 타결 즉시 원직복직'도 '외주용역 도급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면담을 통해 원직 복직'으로 물러났다.

"양보, 또 양보해도 이랜드는 묵묵부답"

노조는 이 같은 안을 제시하면서 이랜드 측에게 30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 측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교섭 위원까지 포함해 지도부 전체에게 이미 해고 통보를 내린 '징계'도 철회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이랜드, '대선 틈타' 노조 지도부 33명 집단 해고)

성당 측이 한 해를 보내는 행사 때문에 천막을 잠시 치워달라고 요청해 와 박 위원장은 성당 한 구석의 지하 방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4살 박이 딸과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한 2살 박이 아들도 못 본 지 오래다. 두 달 전쯤 서울 영등포구의 민주노총 건물로 찾아온 딸이 "아빠랑 헤어지기 싫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짧은 만남을 가진 뒤로는 마음 아픈 것이 싫어 명동성당에 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성탄절을 시작으로 연말이 되면 유독 더 붐비는 명동이다. 그 한복판에 있는 명동성당에서 한껏 치장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불편한' 농성을 벌이는 박양수 위원장.

"사람들과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보면 괜히 마음이 아파서 잘 안 나가요."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영하의 날씨 20m 상공에서 지는 해 바라보는 GM대우 비정규직
▲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지회 조직부장 박현상 씨는 지난 27일 경기도 인천시 부평구청역에 있는 CCTV 관제탑으로 올라갔다. 지난 9월 비정규직지회를 만든 이후 '가을 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줄줄이 해고된 조합원들의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프레시안

땅으로부터 20m 위의 상공에서 저무는 해를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지회 조직부장 박현상 씨는 지난 27일 경기도 인천시 부평구청역에 있는 CCTV 관제탑으로 올라갔다.

지난 9월 비정규직지회를 만든 이후 '가을 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줄줄이 해고된 조합원들의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들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모두 35명이 해고됐다. (☞관련 기사 : "'비정규직에 대한 테러', 도를 넘었다")

관리자를 제외한 전체 25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24명이 조합원이었던 하청업체 스피드파워월드는 아예 폐업신고를 했다. 신규업체인 에이엔티텍이 고용승계를 거부하면서 모두가 길거리로 나앉았다. 또 다른 하청업체 욱산기업에서 해고된 4명은 최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까지 받았지만 아직도 거리에 있다.

현상 씨는 "집행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집행부를 믿고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만이라도..."라고 말했다.

갑자기 추워진 매서운 바람은 겹겹이 껴입고 나선 잠깐의 외출에서도 온 얼굴을 얼게 만드는 날이다. 현상 씨는 "추운 건 차라리 괜찮은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관제탑이 좌우로 자꾸 흔들리는 것이 곤욕"이라고 했다. 현상 씨가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수화기 너머로는 거센 바람의 소리가 전해져 왔다.

'법대로' 외쳐 온 이명박 시대가 되면 "법대로라도" 될까?

관제탑에서는 GM대우 부평공장이 일부 내려다보인다고 했다. 일하던 일터에서 쫒겨나 그 일터를 내려다보는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냥 조합원들이 빨리 저 공장에 들어가 예전처럼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최소한의 반응이라도 볼 수 있는 비정규직의 신세가 착잡하고요…."

그에게도 새해 소망을 물었다. "새해라고 해서 새로운 바람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나머지 문제는 그 다음에 생각하더라도" 해고된 조합원들의 복직 문제만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고. 그가 말하는 '나머지 문제'는 무엇일까?

"하청 노동자들이 하던 일이 자꾸 외주화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조합원 뿐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죠. 또 이번 해고 문제도 따지고 보면 회사 측이 비정규지회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이니까 복직이 되더라도 또 새로운 시작이죠. 법대로라도 했으면 싶어요."

2008년에는 이명박 당선자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늘 "법대로"를 강조해 왔던 인물이 새 청와대 주인으로 들어서면 "법에 보장된 만큼이라도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새해 소망이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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