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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마는 폭주하고 토론은 죽었다"

대선 보도 평가…떠오른 여론조사, 외면 당한 TV토론

"경마식 보도를 양산하는 여론조사는 폭주했고, 정책 검증이 가능했던 TV토론은 죽었다."

27일 오후 한국언론재단과 한국언론학회의 공동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7대 대통령 선거와 언론-종합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은 지난 12월 19일 치러진 대선에 대한 언론 보도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는 낮은 투표율로 대변되는 선거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무관심과 함께 정책보다는 BBK 등 사건 중심의 정치권 공방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돈은 묶고 입은 풀자'며 지난 2004년과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여론조사가 지나치게 압도한 선거"

발제자로 참석한 양승찬 숙명여대 교수는 "그 어느 선거보다도 여론조사의 홍수 속에서 선거를 치른 한 해였다"며 "그 동안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이 과학적이지 않은 해석을 하는 점과 결과를 왜곡하는 문제에 많이 집중되었다면, 이번 선거에는 여론조사가 지나치게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양승찬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가 다수의 국민의 숨은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20년 전이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여론조사가 선거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과도한 정치성을 띠게 되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는 공식선거기간 중 여론조사결과 공표가 인정된 첫 대통령선거였다. 언론사들은 선거기간 이전부터 경쟁적으로 여론조사 결과 보도를 쏟아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지난 6월 11일부터 12월 10일까지 6개월 동안 주요 언론의 자체 여론조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중앙일보>는 28회, <조선일보>, <한겨레> 각각 17회, <동아일보>와 <SBS>는 16회, <KBS>와 <MBC>는 12회의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이처럼 양적인 면 외에도 각 당이 후보자 선정에 여론조사를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 또한 여론조사가 주목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가장 먼저 경선을 치렀던 한나라당은 당헌에 근거하여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 선출에 20% 반영했다.

'여론조사 만능주의'…누가, 어떻게 하는지 검증해야

여론조사의 내용과 보도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양승찬 교수는 "민언련이 <조선일보>의 여론조사 중 특정한 질문이 이명박 후보에 유리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점은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8일 실시된 이 여론조사에는 "BBK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 "이회창 후보 출마로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 "OO님께서는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 씨의 BBK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 정당들의 주장에 공감하십니까? 아니면 공감하지 않으십니까?" 등의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것을 전제하는 듯한 질문, BBK주가조작 의혹이 일부 정당의 주장일 뿐이라는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15일부터 12월 12일까지 언론사들은 총 86건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신문사는 약 90%의 여론조사 결과를 1면에 소개했으며 방송의 경우 전체 22건 중 15건(68.2%)의 여론조사 결과를 저녁 메인 뉴스의 상위 5개 기사로 보도했다. 언론사가 주관하여 실시한 여론조사는 선거 과정 중 매우 중요한 뉴스로 취급됐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을 살펴보면 BBK와 관련된 질문이 전체 여론조사의 58.1%에서 등장한 반면 후보자가 내세운 정책과 관련한 질문은 6건(7.0%)에서만 발견됐다.

양승찬 교수는 "한국의 선거 과정에서 정치권과 언론이 '여론조사 만능주의'에 빠지고 있다는 진단이 현실로 등장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여론조사가 국민에게는 정치적 구속력이 있는 중요한 제도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정치인과 언론인에게는 판단의 근거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누가 어떻게 여론조사를 실시하는지 우리 사회가 검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맥빠진 TV토론…역대 최저 시청률 기록

한편 안차수 경남대 교수는 "2007년 대선 TV토론은 '맥빠진 토론'이었다"며 TV토론 시청률 하락을 이번 선거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지적했다. 그는 발제문에서 "1995년 처음 도입된 TV토론은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커다란 관심과 반응을 일으켰다"며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관심을 보여주는 TV토론 시청률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12월 6일의 1차 토론은 24.0%, 11일의 2차 토론이 21.9%, 그리고 16일의 마지막 토론이 19.2%를 기록했다. 1, 2, 3차 토론 평균시청률 21.7%는 1997년(53.2%)이나 2002년(34.2%)에 비해 크게 하락한 수치다.

이는 90년대 이후 선거에 대한 관심이 하락한 미국과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미국 역시 TV 토론에 대한 시청률이 하락했지만 20%대 중반 이하로 추락하지 않았고, 2004년 부시 대 케리의 경우 첫 번째 토론 시청률이 39.4%를 기록하면서 TV토론의 위력이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보였다.
▲ 15, 16, 17대 대선 TV 토론 시청률 추이 ⓒ프레시안

충돌 최소화, 예측 가능, 저급한 질문…왜 굳이 시청하나

시청률 하락의 원인에 대해 안차수 교수는 "선두 후보와 추격 후보간의 지지율 격차가 지속됐고, 유례없는 무더기 출마에, 6명이 합동TV토론회에 초청되는 등 정치역학 상 흥미적 요소가 떨어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후보자 초청 대담 및 토론 방송이 짧은 기간 지나치게 많이 편성된 점, 공영방송이 아닌 SBS가 합동 TV 토론 중계에 참여하지 못한 점도 TV토론회에 대한 무관심을 높이는 데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례없는 6인 토론회는 토론 형식에 결정적 압박을 주었다. 시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힘들고 형식적 공정성을 갖추기 위해서 한 후보당 총 발언 시간은 15-20분을 넘지 못했다.

안차수 교수는 "이번 합동 토론회는 '충돌적 성격'이 관건인 TV토론의 충돌을 오히려 최소화했고, 토론이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으며,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또 "상호토론이 무색한 일방적 주장 위주로 구성됐고, 질문 내용은 두루뭉술한 일반적 형태로 제시됐으며, 1분 혹은 1분 30초 내에서 대답하는 토론에서 쟁점과 논박의 깊이를 찾기는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시간 총량제를 도입해 1분 혹은 1분 30초 내에 반론과 재반론의 시간적 제약을 후보자가 적절히 벗어나게 하는 방법, 추첨에 의해 1:1 상호토론을 다자간에 적용하여 후보자가 직접 질문하고 토론을 주도하는 방법, 후보별 시민질문을 다양화하는 방법 등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며 다자간 토론 형식에서도 가능한 대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질문의 수준 역시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 중 하나"라며 "집으로 우송된 선거홍보물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바에야 왜 굳이 TV토론을 시청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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