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한 방송사와 공동으로 "IMF 사태 10년동안 우리사회는 어떻게 변했나"를 조사하여 발표했다. 눈에 띄는 내용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불안한 사회에서 믿을 건 돈 뿐"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되는 것은 대학 캠퍼스에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각 대학에서 여성학은 수 백명의 학생들이 경쟁적으로 수강 신청하는 소위 인기교양과목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학생들은 각종 취업준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양에 몰리고 있다. 여성학 관련 과목 맨 앞줄에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은 "이제는 여성에 대해 완벽하게 공부한 후 연애에 성공하고야 말리라", 혹은 냉혹한 군대사회를 경험한 후 군기가 채 빠지지 않아 사열을 하듯 "충성!" 하는 차렷 자세로 앉아있는 늙수그레한 남자 복학생들이다.
요즘 지하철에서 20대 남성이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는 책은 "20대부터 재테크 하라"는 내용의 실용서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남녀관계, 부부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큰 힘은 돈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결혼 시장에서 '신부수업 중'인 여성은 참한 신부감을 상징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참 이상한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늙은 남성노동자들은 "가족이 남녀평등하려면 일단 결혼을 해서 부부가 돼야 하는 데, 우리들은 장가를 못갑니다"라고 슬픈 눈빛으로 내게 말한다. 상대적으로 계급적 위치가 높은 남성들도 무한경쟁사회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맞벌이를 할 여성을 노골적으로 원하고 있고 부부가 함께 벌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효율적 관리'의 영역으로서 등장하는 가족
"가족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들어한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공기가 늘 거기에 있는 그 무엇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듯이 가족 역시 자연화된 영역이었다. 끊임없이 배우며 일하고 경쟁적으로 자신의 실적과 고객을 관리하는 영역은 일터였고 가족은 애정이 배어있는 감정적 연대체, 거친 세상의 안식처로서 의미돼 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거친 세상의 안식처이기보다는 가족 자체가 폭력과 불편함으로 가득한 거친 세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더불어 가족도 남보다 뛰어난 실적을 드러내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든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투자를 위하여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족공동의 이해관계와 목표가 공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세상을 더 경쟁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시간이 돈'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1분 1초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시간부족을 해결하려고 한다. 출퇴근하는 승용차 안에서 어학공부를 하거나 고객관리를 위하여 통화하기도 한다. 지하철 갈아타는 시간 수 초를 아끼기 위한 시간계산을 한 후 적당한 장소(맨 앞 부분 혹은 맨 뒤쪽)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것은 아예 몸에 배어있다.
이처럼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비생산적인 시간을 죽이기 위한 소위 시테크는 가족의 영역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여성은 1시간 동안 무려 10개에 가까운 일들을 동시에 해치우기도 한다. 가족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과 시간은 자녀의 학업성취를 관리하는 것, 그것과 관련된 시간이다. 가족 안에서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불확실성과 불안으로 점철된 현재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부부가 정규직으로 맞벌이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가족은 계급 재생산 혹은 자녀의 상층진입을 위해 자녀에 대하여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생산성이 있는 가족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주의는 가사노동의 가치재평가를 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과의 협상력을 갖기 위한 경제활동 참여를 주장해왔다. 따라서 고등교육을 받아 성 평등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시장에 진출해있는 화이트칼라 여성이야말로 여성주의를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실현할 잠재력을 가진 집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실업이 만연하고 경쟁이 가속화되며 생산성 담론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가운데 가사노동은 가장 비생산적인 것으로 의미되어 경제적 자원을 활용하여 가사노동 대체인력을 활용하여 해결되고 있다. 가족 안에서 남녀를 궁극적으로는 평등으로 향하게 될 과정으로서의 '협상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었던 가사노동은 이제 주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젠더위계의 비가시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관계는 대화가 거부되어 불편한 침묵으로 일관되는 관계이고 매우 끔찍하게 생각되는 곳은 조용한 사회이다. 남녀에게 차별화된 규범과 기대가 구조화되어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가 상호존중에 기반하여 서로 대화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긴장 어린 언쟁 속에서 남녀는 서로의 차이와 오해를 인식하게 되고 더 나은 타협점을 찾아 계속 노력하며 변화해 간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맞벌이 가족에서 부부는 젠더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상당한 금원을 지불하고서 24시간 아내역할을 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주로 친인척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주의는 남성들의 가사노동시간은 맞벌이 32분, 비맞벌이 31분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며 남성들의 참여를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덤불숲을 함께 헤쳐 나가고 있는, 자원이 있는 중간계급 맞벌이 남녀는 '주 5일제'로 표현되는 법정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평일에는 12시간 이상을 회사에 바치느라 자녀들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다. 여성들은 증가하는 노동 강도 속에서 폭주하는 업무량을 감당 못해 야근하는 남성들을 안쓰러워 하고 남성들은 여성들이 동분서주하며 세팅(setting)해 놓은 틀 속에서 일에 더욱 몰입하고 있다. 빠른 속도사회에서 각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무한경쟁이 내면화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남녀관계, 가족 역시 시장의 원리가 관통하고 있다.
부부의 의무이기도 하고 친밀감의 원천인 성관계를 할 시간과 에너지도 없다. 친밀감의 원천은 가족을 함께 책임지고 있다는 공동의 생계부양자 역할이다. 섹스리스(sexless) 부부이고 대화할 시간도 없다. 그렇지만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씩 가족을 위하여 일정금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것이 유지되는 한 가면부부로 살지언정 부부관계, 가족관계는 크게 깨어지지 않는다. 성별 권력관계, 젠더위계는 점점 비가시화되어 주변화되고 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잠시의 시끄러움은 속도사회에서 "바빠 죽겠는데 왜 그런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라며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나는 빠른 속도사회, 생산성 담론과 함께 가족의 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자칫 느린 시간을 요하여 비생산적이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성불평등문제에 어떻게 개입하고 바꿔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 위의 칼럼은 필자가 집필 중인 박사논문 '화이트칼라 유배우 취업여성의 시간정치에 관한 연구'(가제)의 문제의식을 칼럼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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