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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때리지 좀 말아주세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45> 세월이 가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은 여전

상담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비슷한 사안들이 연이어 올 때가 있다. 연이어 오나 드문드문 오나 상담을 받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똑같으니 뭐 놀라울 것은 없지만, 같은 성격의 문제들을 연이어 접하면 아무래도 정서적으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 연이어 온 상담이 '한국인에게 얻어맞았다'라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그냥 넘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폭행피해에 대한 상담을 불과 3일 사이에 세 건을 연달아 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본국에서 내과의사였다던 30대 중반의 몽골여성인 어유나가 어느 날 대낮에 찾아왔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해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공장에서 일을 하던 어유나는 3개월 전에 공장을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는 사업주의 폭행 때문이었다.

어유나는 그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연장근로와 야간근로시간을 꼼꼼하게 달력에 체크하면서 자신이 수당으로 받아야 할 임금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매달 받는 월급은 자신이 계산보다 항상 적었다. 그 점에 대해 어유나는 사업주에게 계산이 맞지 않다고 몇 번 얘기했지만 사업주는 모른 척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면서 어유나의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회사는 점심시간을 1시간 주는 것이 아니라 점심식사를 마치면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여느 때처럼 어유나는 점심밥을 먹고 오후 근무를 하기 위해 자기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어유나를 사업주가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왜 일을 하지 않고 왔다갔다 하고 있느냐'고 야단쳤다. 어이가 없어 어유나는 '지금 일하려고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대꾸했다.

그런데 어유나의 그 말에 사업주는 갑자기 화를 벌컥 내면서 어유나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와 뺨을 몇 대 치고 멱살도 수차례 잡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사업주를 말려서 다른 장소로 데려갔고, 그 바람에 사업주의 폭행은 멈추었다.

어유나는 사업주가 왜 갑자기 자기를 때렸는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유나는 월급계산이 잘못 되었다고 얘기했던 것 때문에 사업주가 화가 났나 보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폭행이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알게 되었고, 추가로 더 필요한 정보들이 어떤 것인지를 어유나에게 설명하고 있는데, H라는 몽골남자가 찾아왔다.

H는 강원도에서 비닐하우스 설치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1주일 정도 하기로 했는데, 그날이 마지막 작업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전 10시경, 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반장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무언가를 던졌다.

얼떨결에 몸을 피했더니 반장이 달려와서는 발로 걷어차고 H의 얼굴과 몸을 여기저기 마구 때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한국인들이 달려와 반장을 떼어내서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 사이에 그 자리에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H는 자기의 짐을 챙겨서 얼른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좀 큰 지역으로 나간 H는 병원을 찾아갔다. 머리가 몹시 아팠고 이마 한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진찰하던 병원의사는 처방전을 써주었고, H는 일단 친구 집으로 찾아가 그날 오후를 쉬었다. 다음날이 되어 H는 일단 상담소에 가서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우리 단체를 찾아온 것이다. 피가 났다던 이마 한쪽은 부풀어있었고, 맞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두통에 시달린다고 호소하였다.

H는 자기를 때린 그 반장은 평소에도 자주 '빨리빨리 하라'는 말을 늘 하던 사람인데 자신이 잠시 쉬고 있으니까 아마 그것 때문에 때린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탁자에 나란히 앉아서 폭행당한 정황을 설명하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 짐작은 이렇다'라고 똑같이 말하는 어유나와 H 두 사람을 보자니 기가 막혔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일은 어유나가 찾아오기 바로 몇십분전에 며칠 전에 접수된 폭행건으로 사업주와 통화를 하였었다는 것이다.

밧트라는 몽골청년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고 내리는 일을 하는데, 처음에는 별 문제 없었다가 점차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통증의 양태를 차근차근 물어보았더니 추간판탈출증이 의심되었다. 정밀진단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밧트가 찾아온 것은 요통 때문이 아니었다. 밧트는 허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회사에 했지만 누구도 크게 관심 가져주지 않았다.

밧트는 허리가 아픈 것 외에는 특별히 회사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해서 괜히 눈총받기 싫어서 그냥저냥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허리는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일을 하는 도중에 가끔가끔 쉬어야 하게 되었다.

그날도 허리가 아파진 밧트는 잠시 쉬고 있었는데 반장이 갑자기 뭐라고 소리치면서 밧트를 발로 걷어차고 작업용으로 사용하는 철제 간이의자도 발로 걷어찼다. 반장이 걷어찬 철제 의자는 튀어오르면서 밧트의 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리고도 반장은 밧트를 향해 덤벼들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공장장이 반장을 만류하면서 사무실로 데려갔다. 밧트는 반장이 왜 갑자기 자기를 때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허리가 아파서 가끔가끔 쉬는 것 때문에 그러나보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모든 상담이 다 그렇지만, 접수된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혹은 회사의 한국인들의 주장이 서로 다른 것을 거의 매번 목격한다.

그런데 폭행 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만이 아니라 폭행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이 다른 것을 왕왕 보게 된다. 즉 '맞을 만한 짓을 했다'라거나 '오죽하면 손찌검을 했겠느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될 법이나 한 말인가.

1994년에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경실련 강당에서 농성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 최초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사안인데, 그 당시 구호가 '때리지 마세요''우리는 동물이 아니다'였다.

그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상황은 상당히 많이 개선되어갔다. 그런데, 그럼에도 여전히 폭행이 이렇게 빈발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1994년에 이주노동자들이 외쳤던 그 절규를 이제는 내가 외치고 싶다.

'제발 때리지 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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