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겁게 끝났다. 이변도 없었고 막판 변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긴 측은 여유가 있었고 진 측도 담담했다.
이명박 당선자의 48.6% 득표율에는 우리 국민의 절묘한 균형감각이 잘 담겨져 있다. 자신감을 갖고 국정을 담당하되 오만하지는 말라는 메시지가 이처럼 잘 드러난 수치도 따로 없지 않을까?
"매우 겸손한 자세로,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당선자의 일성도 48.6% 라는 수치에 얹혀있는 국민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고 있는 것 같아 일단은 마음이 놓인다.
사회 화합과 국민 통합을 강조한 대목도 정치적 수사로만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 공방이 심한 선거였으니만큼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사회 화합과 국민 통합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을 법도 하지 않은가. 당선자의 앞에 도사리고 있는 '이명박 특검법'도 당선자에게 겸손과 화합이라는 모드를 이심전심으로 주문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이 성장과 변화, 균형감각 등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무엇이 우선 순위이고 중요한 지를 잘 가려서 하겠다"는 말도 성장일변도로 갈 것 같았던 당선자의 말로는 뜻밖이지만 반갑다.
대통령 취임까지 2달여의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으나 이명박 당선자와 이제 곧 여당이 될 한나라당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마인드를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해두고 싶다. 당선자는 정치인으로부터 국가 경영자로, 한나라당은 야당으로부터 여당으로 마인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식적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몇 달 지내면 자연스럽게 당선자는 대통령 노릇을, 그리고 한나라당은 여당 노릇을 익숙하게 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인드가 전환되어가는 그 몇 달이다. 1년의 시작이 1월이고 계절의 시작이 봄이듯 한 정권의 시작은 취임 후의 그 몇 달이 아니겠는가. 마인드 전환이 덜 돼서 하루가 1년 같이 소중한 이 기간 동안 대통령이 정치인처럼 행동하고 여당이 야당처럼 움직인다면, 대통령다운 대통령, 여당다운 여당을 고대해 온 민심이 다시 한 번 돌아서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는가.
마인드 전환의 키워드는 통합이다. 정당정치 구도에서 대통령이 정파를 초월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파를 넘어서지 않으면 국정 운영이 정쟁에 함몰될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점은 굳이 참여정부의 실패를 되돌아보지 않아도 될 터이다.
대통령이 정파를 넘어설때 국민 통합은 시작된다. 여당의 도움을 받되 야당도 배제하지 않고 설득과 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같이 갈 때 정치 통합은 사회통합으로 그리하여 국민통합으로 확대 발전되어 가는 것이다. 사회적 화합과 국민통합을 강조한 당선자의 말을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여당이 야당되기 보다 야당이 여당되기가 더 어렵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려운 야당보다 온갖 자원이 풍부한 여당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냐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당이 된다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다는 뜻이고 어떤 경우에도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고, 열 번 잘하다 한 번 실수해도 그 한번의 실수에 책임을 져야하고 그 때문에 선거에 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참여정부에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연전연승했던 것도 따지고보면 한나라당이 야당이었기때문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마인드 전환을 제대로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어법 변화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분열과 갈등보다는 통합과 화합을, 치우침보다는 균형을 먼저 말할 때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지고 여당은 여당다워지는 것이다. 그럴 때 "잃어버린 10년" 따위의 한풀이식 어법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개방적 태도와 신중함, 관용과 균형 감각은 이와 같은 마인드와 어법 전환의 결과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여유와 넉넉함의 표현일 것이다.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이명박 특검법'에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예상되는 어수선함을 최소화하고 새정부 출범의 청신한 기운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도 마인드와 어법 전환은 꼭 필요하다. 유머가 자신감의 표현이듯 당당함이야말로 여유와 넉넉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의 마인드 전환을 통한 심기일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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