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인들이 팬 곁을 떠났다. 지난 7월 30일 세계영화계는 두 개의 별을 잃었다. 스웨덴에서는 잉그마르 베리만이,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란 별이 떨어진 것이다. 스웨덴이 낳은 거장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리만은 89세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다. 1944년 영화 <고통>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1956년 <한 여름밤의 미소>가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57년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제7의 봉인>으로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는 <산딸기><페르소나><가을소나타><화니와 알렉산더>등 영화사에 남는 수작들을 탄생시켰다. 그는 영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 신의 존재 여부와 구원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영상의 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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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모더니즘의 거장 안토니오니는 로마의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향년 95세. 1912년 태어난 그는 볼로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기자로 활동하다가 영화에 뛰어들었다. 포 강을 삶의 근거지로 삼은 사람들을 소재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포 강의 사람들>로 평단의 시선을 끌었던 그는 1960년 브루주아 계층의 고독을 그린 <정사>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밤><태양은 외로워><붉은 사막><욕망>등의 걸출한 작품을 발표했으며, 90년대 들어서도 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와 옴니버스 영화 <에로스>를 만드는 등 만년까지도 창작열을 발휘했다. 아쉬움을 가장 많이 남긴 죽음은 바로 에드워드 양이었다. 향년 60세.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대만 도시인의 내면적 불안감과 정체성 혼란을 예민하게 건드렸던 에드워드 양 감독은 지난 6월 29일 고작 8편의 영화만을 남긴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하나 그리고 둘>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후샤오셴과 함께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동시에 아시아 영화를 이끌었던 양감독의 죽음에 세계 영화팬들은 애도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특별전으로 그의 작품세계에 존경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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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발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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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대표했던 잭 발렌티 전 미국영화협회(MPAA) 회장도 4월 27일 85세 나이로 사망했다. 영화계 종사자들은 발렌티 전 회장을 "할리우드의 가장 위대한 외교관"이라고 칭송하면서 "때로는 비이성적인 영화업계에서 고인은 거대한 이성의 목소리였다"고 그의 죽음에 애도를 나타냈다. 지난 2004년 사임할 때까지 무려 38년동안이나 미국영화협회를 이끌어온 발렌티 전 회장은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았던 반면, 한국은 물론 유럽 등 각국 문화계로부터는 무지막지한 시장개방주의자 또는 할리우드주의자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탈리아 시칠리아계로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난 발렌티는 존 F 케네디 행정부때 린든 존슨 당시 부통령의 정치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특히 63년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되던 순간, 뒤쪽으로 6번째 자동차에 타고 있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영화배우로는 <쿼바디스><왕과 나><러브 어페어> 등의 작품들을 통해 우아한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줬던 '잉글리시 로즈(영국 장미)' 데보라 커가 지난 10월 16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커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의 영화로 6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불운의 배우이기도 했다. 1994년에는 아카데미 명예 공로상을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전 부인이자, 40~5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걸 배우였던 제인 와이먼은 9월 10일 90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을 통해 스타로 떠오른 그녀는 <조니 벨린다>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청각장애자 역할을 맡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레이건과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등 사생활은 순탄치않았지만, 50여년 동안 총 86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는 등 배우로서의 삶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와이먼은 말년에 출연한 TV 드라마 '팔콘크레스트' 에서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의 강인한 노 여주인 역을 맡아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배우이기도 하다. 이밖에 40년대 히트 뮤지컬 영화 <애니여 총을 잡아라>의 주인공이었던 베티 허튼, ABC 아침프로 '굿모닝 아메리카' 등에서 평론가로 활동했던 조엘 시겔 등이 사망했으며, 제2의 마릴린 몬로를 꿈꿨던 섹스 심벌 애너 니콜 스미스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을 거둬 숱한 화제거리들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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