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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보수 대반격'에 삼성 비리 묻힐까 두렵다"

[인터뷰]김용철 변호사 "제대로 된 특검이 아니면, 없느니만 못하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17대 대통령이 된다면? 당선의 일등공신은 BBK 사건 수사팀으로 꼽힐 수밖에 없다. 물론 검찰 스스로는 그와 같은 여론을 경계하겠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BBK 사건에 대한 혐의가 없다"는 발표로 검찰은 '이명박 대세론'을 겨냥했던 여권의 '결정적 한방'을 무력화 했다. 17대 대선의 실질적 주인공 중 하나로 검찰을 꼽아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BBK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검찰은 여전히 주인공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불법로비 의혹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정점인 대권의 향배를 사실상 결정지었던 검찰은 국내 최대의 경제권력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까. 관심이 쏠린 질문이다.

'삼성맨' 모인 이명박 진영, '삼성 동아줄' 될까

목적어의 자리에 경제가 놓인 질문이지만, 정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후보 진영에 이미 많은 '삼성맨'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인재들을 정치권이 탐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후보를 돕고 있는 '삼성맨'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사장 출신인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은 삼성 비자금을 관리하는 데 이용됐다고 지목된 차명계좌가 개설된 곳이다. 또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사장을 지낸 지승림 씨도 이명박 후보를 돕고 있다. 삼성 구조본은 비자금 조성 및 불법 로비 등을 지휘한 핵심 부서로 지목돼 왔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삼성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 10일 이명박 후보를 돕고 있는 전직 삼성 경영진을 언급하며 "삼성은 이명박 후보를 자신들을 살릴 유일한 동아줄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의원의 말처럼 새로운 정권이 '삼성의 동아줄' 구실을 한다면, 가장 먼저 좌절할 사람은 위험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삼성의 비리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다. 대선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김 변호사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김 변호사를 다시 만났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 대해 만족하는지, 차기 정권에서 꾸려질 특검이 과연 제대로 수사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지 등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14일 서울 교대역 근처 한 법무법인에서 만난 김 변호사의 표정은 밝았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불법 로비 의혹을 제기한 직후,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그를 만났을 때와 비교해도 그랬다. "얼굴이 더 좋아졌다"라고 말을 건네자, 선선히 수긍했다. "이렇게 지내도 몸이 편한 것을 보면, 나도 운동권 체질인가 보다"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 "검찰이 머뭇거리는 동안, 삼성은 증거를 폐기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언론의 보도 태도를 접하며 든 생각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 했다. "이번 기회에 언론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라고 말하는 그는 언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날 김 변호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간추려 정리했다.

"''시간 끌기' 수법 쓰는 삼성, 금감위와 국세청은 뭐 하나?"

프레시안 : 삼성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만족하나?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

김용철 :
나는 조사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수사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검찰이 열심히 수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에 부딪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가 파주에 있는 삼성증권 문서 창고에서 직접 전표를 뒤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이 사건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건에서는 팩스로 자료를 주고받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삼성 측이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시간 끌기' 수법을 쓰고 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들이 보통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교통사고 과실범은 징역 5년 이하 처벌에 그친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큰 잘못을 저지른 삼성은 전혀 사과의 기미가 없다. 단군 이래 이 정도 규모의 뇌물, 부패 사범은 없었다. 사상 최대의 거악(巨惡)인 셈인데, 모두들 내 입만 보고 있다.

삼성 비자금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금융감독위원회나 국세청은 뭐하고 있나.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할 경우에는 그나마 특별검사라도 선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나 금감위의 역할은 다른 곳에서 대신 할 수 없다. 이처럼 중요한 국가기관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곳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인지 모르겠다.

"'언론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하긴 금감위나 국세청만 탓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제 <월간조선> 12월호를 읽었다. 나를 다룬 기사가 있더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언론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특정한 목표를 미리 설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사실들을 짜깁기했다. 그나마 사실이라고 적은 것도 대부분 조금씩 왜곡된 것들이다. 기사를 읽다보니, 내가 술을 먹지 않는 것까지 문제 삼더라. "술을 못 마셔서 사건 수임을 위한 영업 활동을 잘 못한다. 그래서 무능한 변호사다"라는 내용이다. 만약 내가 술을 잘 마신다면, "매일 술에 찌들어 지낸다"라고 적었을 것 아닌가.

하긴 '내가 무능한 변호사'라는 지적은 옳다. 사건 의뢰인을 만날 때, 나는 어차피 받아야 할 벌이라면 받으시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런 이야기에 대해 승복하지 않는 의뢰인도 있다. 이걸 두고 "김용철은 형편없는 변호사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잘못에 정확히 상응하는 벌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변론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잘못 이상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잘못 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특검이 아니면, 없느니만 못하다"

프레시안 : 삼성 특검 선정을 놓고 말이 많다.

김용철 : 검찰이 지금처럼 수사를 진행한다면 굳이 특별검사를 선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검찰 수사가 더 효율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건, 원래 하던 사람이 잘 하기 마련 아닌가. 국내 사례를 보건, 외국 사례를 보건 특검이 재대로 성과를 거둔 경우가 많지 않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사의 효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굳이 특검을 꾸리는 이유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검찰 수사는 수뇌부의 의중이 반영돼 왜곡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다. 위보다 아래의 힘이 강해진 세상 아닌가. 국민 여론의 힘으로 최고 권력자를 압박한다면, 특검이 아니어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다. 이는 이왕 특검을 선정하려면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 수사팀에 맡겨도 될 일을 굳이 특검에 맡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변호사 협회가 추천하려는 특검 후보자들은 모두 검찰 고위직 출신이다. 검찰 수뇌부를 향한 로비에 대해 수사해야 하는데, 검찰 고위직 출신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검찰 고위직 출신이 지휘한 수사 결과에 대해 삼성이 불법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품고 있는 국민들이 납득하겠는가. 제대로 된 특검이 아니면, 없느니만 못하다.

"여론의 흐름은 제대로 잡혔다"

프레시안 :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삼성에 대한 수사가 영향을 받으리라고 보는가.

김용철 : 검찰은 '거버넌스 마인드(Governance mind)'도 일부 갖고 있는 조직이다. 통치권을 보좌하는 역할도 담당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가 바뀌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최고 권력은 여론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없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결국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삼성 문제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 그래야 여론이 바로 형성되고, 권력이 삼성에 대한 수사를 흔들지 못한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조차 삼성 문제에 대해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디어의 속성이라는 게 강자를 감싸기 마련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론의 큰 흐름은 제대로 잡혔다. 다행스런 일이다. 국민 대부분은 삼성이 비자금을 엄청난 규모로 조성했으리라고 믿고 있다. 또 이에 대해서 더 이상 덮어두면 안 된다고 여기고 있다.

사실상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현재 출국금지 상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외국으로 나갔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발이 묶였다. 또 아직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삼성 수뇌부에 대한 기소는 불가피하다는 게 대세 아닌가. 삼성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의 뜻이 선명하고, 누구도 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 자체로 중요한 성과다. 그리고 이런 성과는 국민이 거둔 승리다. 여기에는 또 이용철 변호사를 비롯한 용기 있는 분들의 증언도 역시 큰 힘이 됐다.

"'보수 대반격' 분위기가 두렵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든다. 만약 보수 정권이 들어설 경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이 생길 수도 있다. 일종의 역풍이다. 이명박 후보는 금산분리 철폐를 내세웠다. 삼성이 '영원한 제국'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위험한 이야기인가.

당선자에 대해 우호적이기 마련인 정권 초기의 분위기가 삼성 문제에 대한 여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 일종의 '보수 대반격' 분위기 속에서 삼성의 비리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희석될까하는 우려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은 투표소에서만 주권자다. 투표가 끝나는 순간, 주권은 국민의 손을 떠난다. 그래서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에, 삼성 문제를 공론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민이 주권을 넘기기 전에 대선 후보들이 삼성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을 취하도록 최대한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삼성 이야기를 꺼낼 시점에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니, 이미 공약이 이상했다. 삼성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삼성 문제의 공론화를 서둘러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언론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사를 두루 찾아다녔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공론화가 늦어졌다. 오죽하면 신부님들(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까지 찾아갔겠는가.

"삼성 사장단 회의는 종교적 분위기"…"차라리 지금, 마음이 편하다"

프레시안 :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요즘 심경이 궁금하다.

김용철 : 삼성 사장단 회의가 어떤 분위기인지 아는가.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다. 물론 교주는 이건희 회장이다.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사장들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5~6시간은 훌쩍 넘기는 게 보통인 회의 도중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은 어떤 주제에 대해 한 번 말문이 열리면 끝없이 이야기한다. 또 사장들에게 인격적인 모욕이 될 수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 한다.

그곳에 모인 사장들은 밖에서는 모두 대단한 권위를 지닌 사람들이다. 또 집에서도 존경받는 가장일 게다. 그러나 이 회장 앞에서는 모두 우스운 존재가 된다. 삼성 사장단 회의 풍경을 보면, '잘 먹고 잘 살자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진다.

이 회장이 사는 모습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그는 유럽 귀족의 생활방식을 닮고 싶어 한다. 애완견을 키우고, 승마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하다. 하지만 그저 닮고 싶어 할 따름이지 진정한 귀족의 자세와는 거리가 있다. 애완견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좋아서 기르는 게 아니다. 그냥 장식품일 뿐이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겁 많은 사람이 막상 싸움에 나서면, 앞뒤 재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내 이름을 지을 때, '용감할 용'자를 쓰셨다. '칼을 들고 설치는 남자'를 형상화한 글자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비겁한 사람이다. 겁도 많고, 소심하다. 학창 시절에도 여자 아이들에게 종종 꼬집히곤 했다. 또 직장에서도 상사의 명령을 잘 따른다. 조직을 거스르기보다 순응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떤 한계가 있다. 조직이 한계를 벗어나도록 요구하면 싸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한계를 넘어섰다. 나는 변호사로 생계를 꾸리며 조용히 살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삼성은 그것도 못하게 했다.

내가 삼성에 관해 폭로한 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삼성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모두 말을 바꿨다. 내가 분명히 들은 말인데, '그런 말 한 적 없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렇게 모두들 말을 바꾸면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물론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앞뒤를 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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