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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베풀어도, 권리는 인정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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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베풀어도, 권리는 인정 못 해?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44> 이주노조 임원 강제추방…위선의 한국사회

지난 13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이 법무부에 의해 강제추방되었다.

비록 최종단계의 법률적 해석을 다투고 있기는 하지만 이주노동조합은 수년간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활동하였던 조직이다. 그리고 지난 11월 26일, 불법체류 상태였던 세 사람을 단속하는 과정은 누가 봐도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표적 단속'임이 명백해 보인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원이 '표적 단속'되고 강제추방된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2002년 꼬빌, 2003년 비두-자말, 2004년 위원장 샤말타파, 2005년 위원장 아노아르, 그리고 2007년 위원장 까지만-부위원장 라쥬-사무국장 마숨.

해마다 한바탕 전쟁 치르듯이 법무부와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2007년은 어느 해보다도 정도가 심하고 충격적이다.

위 세 사람은 '표적 단속'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였고 외국인보호소에서 그 절차가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법무부는 진정사안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들을 추방하지 않겠다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약속하였다.

그런데 법무부는 약속을 어기고 추방시켰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불법체류자를 단속한 것일 뿐이다'라면서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한국 유입 시기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잡고 있으니 한국의 이주노동자 유입의 역사도 2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슬슬 지난 20여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한국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 유입의 역사를 기술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

애당초 국가가 외국인력도입을 노동인력정책의 하나로 삼기 이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으로 유입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들과 어떻게 관계맺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논의도 없었다.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4년과 1995년 이주노동자 10만 명을 넘어섰을 때였다. 구체적으로는 1994년 산재피해 불법체류노동자들의 농성과 1995년 산재피해 산업연수생들의 농성을 거치면서이다.

산재를 당하고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 '때리지 마세요,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를 절규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참혹한 실태에 충격을 받은 한국사회는, 이후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인도적 처우를 기본으로 하는 우호'적인 분위기로 선회하였고 이 추세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도주의적 시각은, 낯선 땅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에 처하기 마련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존이 위협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에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기본적 생필품 조달, 의료지원, 자녀 교육, 각종 사고 발생시 지원, 한국생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한국어교육, 컴퓨터 교육, 한국문화체험 등의 프로그램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위하여 제공되었고, 한국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혹은 조직적으로 참여하면서 인적, 물적 지원을 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지원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차적으로 당면하는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 최저조건을 보장해주는 '근로기준법' ' 최저임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될 수 있었고, 기초적인 사회복지서비스도 비록 민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긴 했지만 사회적 시스템을 형성하고 가동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의 법과 제도의 적용, 한국자원의 활용의 배경에 인도주의적 시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사회의 수용태도는 이주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장기체류자가 발생하고 다문화사회를 운운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이중적인 잣대로 기능하기 시작하였다.

즉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회복지 지원만이 아니라 최저임금의 적용,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 근로기준법의 적용과 같은 노동3권의 일부에 속하는 권리의 보장에서도 한국사회의 시각은 '노동자로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준다'가 아니라 '인도적인 입장에서 최저조건을 보장해준다'에 가까웠다.

그것은, 역으로 이후 조금씩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춰갔던 소수의 이주노동자들이나 '노동3권은 노동자로서 갖는 당연한 권리'임을 선언하고 이주노동조합을 결성한 그룹에 대해서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이런 시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가 이번 2007년의 이주노동조합 임원 단속과 추방이다.

현재 한국의 미등록노동자는 23만여 명에 달한다. 외국인력과 관련하여 미등록노동자의 존재는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영역이다 보니 미등록노동자 발생은 불가피한 문제이기도 한다. 그리고 외국인력도입제도의 성패는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어느 유입국도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인가에 대해서도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단속과 추방만으로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긴 하였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안정하다. 그리고 미등록노동자는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미등록노동자의 증가원인이야 여러 가지이고, 그 중에는 한국사회가 제공한 것도 있고 한국사회와 무관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의 이주노동조합의 존재가 미등록노동자의 증가나 지속의 원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법무부는 물의를 빚어가면서 이주노동조합의 임원을 표적단속-추방시키고 있다.

정부가 유독 이주노동조합원을 표적으로 삼아 단속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법무부는 23만여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이주노동조합원이 되어 강력한 노사분규라도 일으켜서 우리의 산업현장을 마비시킬까봐 염려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이주노동자상조회'가 아니라 '노동조합'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인들의 인도적 심성 혹은 종교적 자비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서 요구하는 것'이 차마 눈꼴 시어 봐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혹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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