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태안반도를 여행하고 싶었다. 아내가 오래 전부터 태안을 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 저런 일에 치이다가 결국 못 가고 말았다. 얼마 뒤 가로림만을 막고 조력발전을 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긴장하고 분노했다. 조력발전을 명분으로 가로림만을 방조제로 막아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개발업자들과 지주들은 한몫 단단히 챙기겠지만 가로림만은 크게 훼손되고 말 것이다. 가로림만 조력발전계획은 시화호 조력발전계획, 강화도 조력발전계획 등과 함께 반드시 막아야 할 신개발주의의 개발계획이다. 자연과 문화를 내세우며 자연과 문화를 대대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서 신개발주의는 구개발주의보다 더 교활하고 위험한 개발주의이다. 복원을 내세워서 개발을 강행한 '청계천 복원 사업'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고가 태안반도를 덮쳤다. 2007년 12월 7일 아침 7시 15분에 인천대교 공사에 사용되고는 거제로 이끌려가던 거대한 크레인이 유조선을 들이받아 유조선에 구멍이 나서 무려 1만500kl의 원유가 바다로 흘러든 것이다. 이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나흘째인 12월 10일 밤 현재, 태안반도의 바다 8000여ha가 기름으로 뒤덮였고, 양식장이 밀집한 가로림만도 위험하다고 한다.
8000ha는 무려 8000만㎡이고, 평수로는 무려 2420만 평이다. 여의도의 27배를 넘는 넓이의 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인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기름으로 뒤덮이는 순간, 생명의 바다는 삽시간에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만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기름에 뒤덮여 고통스럽게 허덕이다가 죽는다.
1990년 8월에 발발한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의 유정들을 파괴했고, 이 때문에 많은 원유가 바다로 흘러들어 많은 생명체들이 죽었다. 영문도 모른 채 기름에 뒤덮여 허덕이며 죽어가던 가마우지의 모습은 걸프전의 끔찍한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아름다운 태안반도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머나먼 아라비아해에서 벌어졌던 무서운 일이 지금 여기의 생생한 현실이 된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대참사가 2차 오염, 3차 오염으로 이어지고, 결국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제대로 복원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뿌린 유화제도 바다에 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기름오염은 곧 유화제 오염으로 이어진다. 유화제는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바다를 깊이 죽인다. 기름과 유화제는 공기 중으로 날아오르면서 공기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이미 태안반도 일대의 공기는 크게 오염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위험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서 대단히 편리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문명의 이기는 자연을 파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연 속의 존재인 우리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아예 '위험사회'라고 부른다. 실로 우리는 편리하고 풍족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위험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위험사회'는 서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의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나라의 현실이다. 그런데 같은 '위험사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한국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잘 드러났듯이 아주 심한 위험사회에 속한다. 극히 위험한 과학기술을 관리하는 사회체계가 너무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위험을 가중시키는 부패의 문제도 포함된다. 이런 상태를 개선하고자 정부는 소방방재청을 설립하고, 대대적인 위험대책을 수립했다.
정부의 정책이 크게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시 이런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흔히 '인재'로 표현되는 '위험한 과학기술을 다루는 부실한 사회체계'의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이제까지 제시된 주민의 증언이나 수사내용으로 봤을 때, 그렇게 보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다음과 같이 주민들은 '표박지'가 아닌 곳에 대형선박들을 무단정박했던 사실을 지적하며 '인재'라고 주장했다.
사고 지점에 가장 인접해 큰 피해를 입은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주민들은 피해가 확산된 것이 어설픈 대처에 따른 '인재'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배의 주차장과 같은 표박지가 아닌 곳에 유조선과 화물선을 정박해 이 곳을 지나는 배들과 충돌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사고 지점은 대산지방해양수산청에서 고시한 표박지와 3마일 떨어진 지역으로 기름유출 대재앙을 불러온 주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태안군 어선 조합원인 이모(60)씨는 "태안화력에 들어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유조선 등이 이번 사고 지점에서 며칠 머물렀다"며 "표박지로 고시한 곳이 아닌 곳에 며칠 동안 정박해 있어 단속을 건의해도 대산해수청은 이를 외면해왔다"고 말했다.('분통을 터뜨리는 주민들', <국민일보>, 2007년 12월 10일)
또한 대산해양수산청과 크레인의 예인선 사이에 규정대로 소통이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양자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다 했는가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사고를 막아야 할 당사자들이 제대로 할 일을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수사를 통해 더욱 명확히 밝혀지겠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이 너무나 엉터리 같은 것이어서 믿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해경 조사에서 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들은 "예인선이 호출에 응답하지 않았고, 크레인을 실은 부선과 예인선을 잇는 와이어가 끊어진 상황도 전혀 보고 받지 못했다"며 예인선 측에 책임을 미뤘다. 이에 대해 예인선 관계자들은 "관제실에서 VHF 16번으로 호출해야 하는데 12번으로 호출하는 바람에 교신이 안됐다"고 주장했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선박들은 항상 VHF 통신 16번 채널을 켜놓고 항만 당국의 비상호출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의혹이 쏠리는 부분은 휴대폰 통화 이후다. 관제실과 예인선 선장간 통화가 있은 뒤 1시간 정도면 예인선이 유조선을 충분히 피해 갈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만약 이미 예인선과 부선을 잇는 와이어가 끊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관제실과의 통화 때 이를 보고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충돌 때까지 와이어가 끊어졌다는 보고는 관제실에 접수되지 않았다.
대산해양수산청도 안이한 대처로 의혹을 사고 있다. 항로 이탈과 충돌 위험을 인지한 뒤 예인선을 VHF로 두 차례나 호출하고, 휴대폰으로 경고까지 했지만 이후로는 충돌 시까지 별다른 확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크레인은 대산해양수산청의 경고에도 불구, 항로를 크게 벗어나 유조선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지만 관제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죽음의 바다' 책임회피만 둥둥', <한국일보>, 2007년 12월 9일)
삼풍백화점은 왜 붕괴했는가? 붕괴를 막기 위한 여러 제도와 절차가 있었으나 부패로 말미암아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의 사고에서도 제도와 절차가 멀쩡히 있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이 부패 때문인지, 단순한 태만 때문인지, 혹은 그저 실수였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기구를 설립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를 마련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분명하게 밝혀졌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전체론적 이해를 추구했던 미국의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츤은 <정신의 생태학>에서 오늘날 겸손은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과학의 요청이라고 지적했다. 핵발전소를 비롯한 현대 과학기술의 위험을 연구한 미국의 조직사회학자 찰스 페로우는 조직적 복잡성 때문에 현대 과학기술의 위험을 완전히 안전하게 관리할 방도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연구의 성과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태안반도의 대참사는 위험사회 한국의 무서운 실상을 확연히 입증하는 생생한 증거로 남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우리는 지구 자체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의 위험, 이러한 위험을 결코 안전하게 관리할 수 없는 현대 사회체계의 위험에 전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핵발전정책의 중단, 대형 송전선로 건설의 중단, 그리고 '경부운하' 구상의 폐기 등은 그 구체적 과제의 예이다.
낙동강과 한강에서 비슷한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라. 이미 1991년 봄에 낙동강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한 달 새 두 차례나 일어나기도 했다. 위험사회 한국은 파멸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무조건 경제, 무조건 성장이 아니다. 파멸을 향해 치달리는 위험사회 한국의 무서운 실상을 바로잡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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