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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미국ㆍ일본 비해 80년 뒤쳐진 한국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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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정우 "미국ㆍ일본 비해 80년 뒤쳐진 한국 재벌"

[토론회]"한국경제, 삼성과 살얼음판 걷다 고사할텐가"

"부와 지위가 세습된다는 사실은 정치적 민주주의 원칙과도 조화될 수가 없다. 절대왕정을 타파한지 오래인 21세기에 아직도 권력과 부가 세습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까?"

비자금 의혹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낸 '삼성 왕국'의 부패를 이제는 잘라내자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는 3일 오후 서울 종로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삼성공화국을 넘어 민주공화국으로'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는 이미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며 "삼성이 왕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는 것이 삼성이 사는 길이고, 그래야 대한민국도 삼성왕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국 6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삼성 이건희 불법규명 국민운동'이 주최하고 경제개혁연대(소장 한성대 김상조 교수)와 참여사회연구소(소장 강원대 이병천 교수)가 주관한 이 토론회에는 이정우 교수를 비롯해 상지대 홍성태 교수,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진형 간사 등이 발제에 나섰으며 방송통신대학교 김기원 교수, 한성대 김상조 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석연 변호사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가족은 절대 경영에 참여하지 말라' 명시한 일본 미쯔이가

이정우 교수는 미국과 일본의 역사 속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삼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도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 이름 붙인 '대기업 시대'가 있었다. 당시 노조는 대기업이 고용한 사설 탐정(Pinkertons)의 감시와 폭력에 시달렸고 대기업들은 독점화(trust)를 위해 관료와 정치인, 사법부까지 돈으로 매수했다.

발명왕으로 알려진 토마스 에디슨은 유리한 법을 만들어주는 댓가로 뉴저지의 정치인들에게 각각 1000달러씩 주겠다고 약속했고, 다니엘 드류(Daniel Drew)와 제이 굴드(Jay Gould)는 이리(Erie) 철도회사 주식 발행을 합법화해달라며 뉴욕 주의회에 100만 달러를 뇌물로 바치기도 했다.

이정우 교수는 "이들 졸부를 가리켜 강도귀족(robber barons)이라고 부를만큼 당시 미국의 반기업가 정서는 대단히 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곧 이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동운동, 농민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며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도 대기업 반대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1912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1914년 통과된 독점금지법은 미국의 경제민주주의에 공헌했다.

일본 역시 재벌가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넘겨준 지 오래다. 미쯔이가에서는 '가족은 절대로 기업경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미쯔이가헌'에 명시할 정도였다. 미쯔비시가도 1925년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정우 교수는 "현재 한국의 경제발전수준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마 20년, 많아봤자 30년 정도 뒤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대기업의 소유규조에서는 적어도 80년 이상 뒤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속세 폐지 반대하고 최저임금 인상 주장한 미국 기업가들

이정우 교수는 사유재산에 대한 한국 재벌가의 천박한 인식 또한 경제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결정적 계기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기업가의 거액기부 뉴스가 이따금씩 화제의 뉴스로 떠오른다. 100여년 전 강철왕 카네기는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수치"라고 하면서 거의 모든 재산을 도서관 짓는 데 기부했는가 하면 인텔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와 헤지 펀드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도 거액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또 미국에서는 부시 정부에서 추진중인 상속세 폐지에 앞장서서 반대하는 부자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 게이츠 시니어와 워렌 버핏, CNN의 창업자 테드 터너, 배우 폴 뉴먼 등이 결성한 '책임지는 부자'(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는 상속세 및 주식배당소득세 폐지 반대, 공평과세, 최저임금 인상, 최고경영자 봉급 축소 등 마치 '좌파'가 주장할 듯한 강령을 내걸었다.

일본의 대기업 사장 중에서도 검소하고 모범적 생활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기업가가 적지 않다. 재계의 신으로 추앙받는 도고 도시오의 경우 작은 주택에 살면서 마당에 꽃 가꾸는 게 취미였고 퇴근 후에는 술자리를 멀리 하고 책 읽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한다. 또 이발소에 가지 않고 부인이 머리를 깎아 주었는가 하면 밥을 먹을 때 반찬이 두 가지를 넘지 않는 생활로 유명하다.

이정우 교수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재벌들은 거의 모두가 호화주택과 고급승용차, 외제사치품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재벌들을 존경하기는 커녕 매도하는 우리의 사회풍조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 이유를 단순히 못사는 사람들의 시기심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노동자들이 신뢰하고 모범으로 삼을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는 존경할만한 상류층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우리나라의 임금인상의 행진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을 자제하도록 호소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밝혔다.

재산에서 경영권으로 이어지는 재벌의 '천박한 인식'
▲ 지난 11월 20일 청와대 근처 서울 종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삼성 비자금 특검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이건희 회장 얼굴을 본뜬 탈을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

재산에 대한 천박한 인식은 '경영권'으로 이어졌다. 삼성의 각종 비리는 결국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가 핵심 목표였다. 1994년 이재용 씨는 60억 원을 증여받고 16억 원의 세금을 냈다. 이후 나머지 44억 원으로 비상장회사의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28차례에 걸쳐 헐값에 인수한 이재용 씨는 삼성그룹의 조직적 도움을 받아 땅 짚고 헤엄치듯 불과 몇 년만에 1조 7000억 원의 재산가이자 삼성 그룹의 차기 총수로 실질적 등극을 마쳤다. 빌 게이츠의 자녀보다 100배 이상 많은 재산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정우 교수는 "아버지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회사의 경영권은 그렇지 않다"며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관점에서는 주주가 주인이지만 참여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관점에서는 주주, 경영자 뿐만 아니라 노동자, 협력업체, 고객, 주민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다"며 "백보 양보해 주주자본주의가 옳다고 치더라도 삼성의 총 주식 중 이건희 일가가 소유하는 지분은 4%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경영능력 면에서 보더라도 세습은 훌륭한 경영자를 발견하기에 좋지 않은 제도"라며 "삼성 내부에 유능한 인재가 숲을 이루고 있을 텐데, 그 중에서 능력이 검증된 인재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에서 1994~2000년 508개 가족 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2세에게 경영권이 세습됐을 때 기업의 가치는 오히려 파괴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진보 정당 없고, 전근대적 기업가 있는 한 '스웨덴 모델'은 머나먼 길"

그렇다면 한국 경제가 민주적으로 나가기 위한 길은 무엇일까? 이정우 교수는 수출이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우리나라 못지않게 재벌집중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스웨덴 모델이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복지자본주의국가인 스웨덴은 노사화합, 노사쌍방의 자제가 정착돼 있어 각국에서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스웨덴의 모델을 수입하기에는 한국의 토양은 너무나 척박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우선 한국에 진보 정당이 들어서는 것이 요원하고, 한국의 기업가들이 아직도 산업민주주의란 개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경영권, 인사권에 대한 노동자들의 약간의 간섭조차 크나큰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전근대적 사고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삼성은 노조를 혐오한 이병철 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노조 상태"라며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고수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노조 결성 방해 비용·노조를 예방하기 위한 고임금, 고복지 비용)이 이미 과다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정우 교수는 특히 '전근대적'인 삼성 경영의 한 예로 채용 절차 중 하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의 출제문제를 들었다.

여기에는 '시민단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삼성맨이라 불려지길 원한다', '오너경영은 좋지 않다', '삼성은 깨끗한 기업이다', '노조는 있어야 한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것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였다'라는 문항이 들어가 있다.

이정우 교수는 "삼성은 이런 문항에 예, 아니오로 답하게 한다"며 "이 문제에 대한 지원자의 답이 당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노조의 싹을 아예 자르겠다는 것은 아닌지, 오너 경영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하자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와 삼성, 살얼음 위를 걷다 '고사'할텐가"

이정우 교수는 "진정한 경제민주주의에 기초하지 않는 한국경제는 늘상 노동탄압, 노사갈등, 임금인상, 물가상승, 수출부진, 경제위기의 악순환을 잠재한 채 살얼음 위를 걸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그 과정에서 노사쌍방의 끝없는 소모적 투쟁은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계속 잠식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의 비정규직의 팽창은 세계적으로 봐도 드문 일"이라며 "이 현상도 결국은 노사 불신과 대립에서 온 결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진정한 노사화합과 협조 위에서 지속적 경제발전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기업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개혁하여 다양한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며 "삼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아 심기일전하여 기업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조직은 얼핏 보면 일사불란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건강을 잃고 서서히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포츈지 500대 기업의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정우 교수는 경제민주주의 달성을 위해서는 사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선언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기자회견 이후 검찰은 한 달여가 지나서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다른 사건 같으면 벌써 발빠르게 움직였을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왜 이리 느린가"라고 물은 뒤 미국 엔론사의 예를 들어 사법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역사상 최대의 회계 부정으로 6억 달러를 챙긴 에너지 기업 엔론(Enron)의 경영진은 미국 법원에서 엄청난 처벌을 받았다. 1985년 텍사스에서 설립된 엔론사는 케네스 레이(Kenneth Lay) 회장이 부시 대통령 부자와 체니 부통령과 가까운 친구였기 때문에 정계의 탄탄한 인맥을 활용하여 이런저런 이권을 얻으면서 미국-유럽 에너지 거래의 20%까지 차지했다.

석유, 천연가스, 물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였고, 전 세계에 2만 1000명의 사원을 거느렸다. 2001년 파산하기 직전까지 포츈(Fortune)지로부터 6년 연속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이 회사의 경영진이 분식회계를 통해 주가를 올리고, 스톡 옵션을 통해서 경영진이 6억 달러를 챙긴 것이 드러났다. 주가는 폭락했고, 엔론사는 결국 130억 달러라는 사상 최고의 부채를 남긴 채 파산했다.

분식회계와 사기 혐의로 이 회사의 레이 회장과 CEO였던 제프리 스킬링(Jefffrey Skilling)이 재판에 회부되어 각각 징역 45년, 185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을 맡았던 검찰차장 폴 맥널티(Paul McNulty)는 선고가 나던 날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포츈지 500대 기업의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언론은 이 판결을 미국 검찰의 승리라고 불렀다. 이 사건과 그 다음해 일어난 월드콤(Worldcom) 사건의 여파로 회계 부정을 막기 위한 사베인-옥슬리 법이 제정됐고, 한때 유행하던 스톡 옵션 제도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드러나 인기가 식어버렸다. 종기는 도려내야 새 살이 나지 그냥 덮고 지나가면 속에서 썩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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