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김인국 신부의 기습적인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100만 원이요? 10만 원이요?"
"모두 틀렸습니다. 1만 원입니다. 그만큼 1조 원대로 올라가면 돈의 개념이 우리와 다릅니다. 1조 원을 가진 사람에게 1억 원은 1억 원을 가진 사람의 1만 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강 기자에게 1억 원이 있는데, 내가 '1만 원만 달라'고 하면 기꺼이 내주겠습니까?"
"네."
"그렇죠. 1억 원을 가진 사람이 남에게 1만 원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로 1조 원 가진 사람이 남에게 1억 원 주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1조 원 가진 사람에게 1억 원 받은 사람들은 1만 원에 영혼을 판 사람들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사태'에서 김 변호사 못지않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 지난 22일 오후 충북 청주시 금천동 성당에서 그를 만났다.
김 신부는 "예를 들어, 검찰에서 일반 검사는 500만 원, 간부급 검사는 1000만 원, 총장급은 2000만 원의 뇌물을 삼성에서 받고 있다고 해보자. 설과 추석, 여름휴가까지 1년에 세 번의 뇌물이 간다. 그럼 총장은 1년에 6000만 원, 임기가 2년이니까 1억 2000만 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을 꺼냈다.
김 신부는 이어 "그럼 그걸 받는 사람은 1억2000만 원을 받은 것이지만, 1조 원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 기준으로 볼 때 1만2000원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만2000원 받고 자기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고 질타했다.
김 신부는 "부끄럽기는커녕 자기가 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됐다는 안도감을 가진다고 한다"며 "돈은 마귀다. 돈은 제일 먼저 부끄러움이라는 장치를 제거해 버린다"고 강조했다.
"양심선언 줄을 잇는데…"
김 신부는 제2, 제3, 제4의 '김용철'이 많이 있다고 했다. 제2의 김용철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용철 변호사였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고백을 이끌어내기는 너무 어렵다고 한다.
김 신부는 "우리가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먼저 전화를 해온다"며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꼭 증언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가족이 웁니다"라며 선뜻 나서지 못한다고 한다. 김 신부는 "삼성이 걸어 놓은 안전장치가 3중, 4중"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삼성에서 또 누가 나와 김 변호사처럼 하겠는가. 이번 기회를 살려 모두가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고백을 들은 김 신부는 "가위눌림을 느낄 정도로 무서웠다"고 한다. 김 신부는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이런 것인지 알게 됐을 때 몸서리가 쳐졌다"며 "성경을 다시 읽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재물을 하느님과 맞서는 유일한 강적이라고 했는데, 우상은 힘이고 그 힘의 원천은 돈"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일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회를 망가뜨리고 오염시키는 악행을 보면 그가 절대로 하느님의 나라에 못 들어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부패에 둔감하지는 않나"
사제단이 이번 양심선언에 주도적으로 나선데 대한 부담은 없는지 물었다. 김 신부는 "기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 '김용철 변호사를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인데, 이제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삼성에 맞서는 김 변호사와 사제단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 신부는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김 신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사제단까지 찾아온 사람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느냐"고 말했다.
다만 "사회 부패에 둔감한 사회적 분위기를 염려하는 목소리는 있었다"고 한다. 김 신부는 "김 변호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삼성이라는 힘이 어떻게 보면 독재권력보다 막강한 힘이 돼버렸기 때문에 그 힘에 거스르는 싸움을 벌일 때 국민들이 이것을 얼마나 이해해주고 얼마나 알아주느냐가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삼성이 그런 거 몰랐나'와 같은 냉소와 몰이해가 걱정됐다"며 "하지만 이번 일은 '당위'이기 때문에 사제단 만장일치로 결정해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고백'을 통해 정화의 길 나서야"
이번 사태를 풀어내기 위해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이 택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었다. 김 신부는 '삼성 광고'에 해답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삼성전자 '또 하나의 가족' 애니메이션 광고. 학원을 빠지고 친구와 놀던 아이가 "학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이 사실을 아는 부모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광고는 아버지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생략하고 "어떻게 했을까요?"라고 물음을 던진다.
김인국 신부는 이 광고에서 아이가 용서를 받는 방법으로 "삼성이 국민들에게 용서를 받는 유일한 길은 고백이라는 자기 정화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국민들이 삼성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우리도 원하지 않는다"며 "'오랜 관행이어서 익숙하게 저지른 잘못이다. 관행이라서 부끄러운지도 몰랐다. 그러나 용서를 청한다.' 이렇게 개과천선해서 용서 받고 사태가 해결되면 삼성이 건강해지고 국가 신인도가 높아지며 정부 기능의 신뢰도 되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또 "지난번처럼 8000억 원이다 뭐다 하는 것은 필요 없다. 국민들이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며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 일가는 갖고 있는 지분만큼만 권리를 행사하고, 이재용 씨도 불법적으로 증식한 재산에 대해 모두 세금을 내고 제자리로 돌려놔야 하며, 차명계좌에 존재하는 비자금도 모두 세금을 내고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인국 신부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프레시안 : '삼성 특검'과는 별도로 검찰이 특별수사.특별감찰 본부를 만들었다. 수사를 잘 하리라 생각하나?
김인국 : 특별수사본부장인 박한철 검사가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의 대학동기라고 하지 않나. 또 수사본부 검사로 거명되는 세 명의 검사들도 면모가 걱정스럽기는 하다. 항상 수사를 잘 하셔야 한다는 기대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반반이다.
이번 기회는 검찰의 독립 기회이자 자정의 기회이기도 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다. 기회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대충 무마하고 몇몇 소수를 위해 다수 검사들의 권위를 회복시킬 기회를 버리는 것은 아닌가 염려된다.
프레시안 : 특별수사본부에서 곧 고발인 조사를 요구하지 않겠나.
김인국 : 일단 소환을 하면 응해야 한다고 본다. 김용철 변호사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그런데 정말 수사 의지가 있어서 소환을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검찰 조직을 보호하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기 위해 그런 것인지는 금방 드러날 것이다. 그 점을 유심히 지켜보겠다.
프레시안 : '삼성 특검'에는 기대를 걸 수 있겠는가?
김인국 : 검찰은 검찰대로, 특검은 특검대로 열심히 해야겠지.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는 사실 특검으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특검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검찰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다. 그래서 결국 특검까지 가는 상황이 됐다. 김 변호사는 검찰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검찰에 대한 애정이 크다. 검찰이 자기 허물도 정리해주고 우리 사회의 부패상도 척결하는 기회를 살렸으면 좋았었겠다는 아쉬움을 많이 피력한다.
프레시안 : 이번 사태에 대해 삼성그룹 측이 대응하는 방식이 바뀐 것 같다.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다가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김인국 :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방법이 없지 않겠나. 그들이 어떻게 하겠나. 거짓말 하나를 하려면 스무가지의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하다. 할 수가 없는 상황일 것이다.
프레시안 : 삼성에 대해 충고 한 마디 하자면?
김인국 : 이 문제는 간단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입법, 사법, 행정이 불능 상태 아닌가. 청와대도 검찰도 못 건드리고 있다. 국회도 특검을 한다고 하지만 국회의원들도 걸려 있다. 여기서 비리를 캐내고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나라가 망하게 돼 있다. 그래서 삼성이 국민들에게 용서를 받는 방법은 고백뿐이다. 국민들이 삼성 망하는 것을 원하겠는가. 우리도 원하지 않는다. 국정기능이 마비돼 무정부 상태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용서를 받는 유일한 길은 고백이라는 자기 정화의 길을 걷는 것이다. 삼성이 변명하고 핑계 대더라도 국민 여론은 김용철 변호사의 말에 더 신뢰가 간다는 것이다. 다 알지 않나. 그러니 용서를 구하면 된다.
삼성 광고 중에 학원을 빼먹은 아이가 집에 들어와 거짓말을 했다가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중간에 어떻게 용서를 받는지는 나오지 않는데, 이 아이가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는 유일한 방법은 거짓말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오랜 관행이어서 익숙하게 저지른 잘못이다. 관행이라서 부끄러운지도 몰랐다. 그러나 용서를 청한다.' 이렇게 개과천선해서 용서 받고 사태가 해결되면 삼성이 건강해지고 국가 신인도가 높아지며 정부 기능의 신뢰도 되찾는 것이다. 이게 모두가 승리하는 윈윈(win-win)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프레시안 :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는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나.
김인국 : 삼성에서 빠져야 한다. 지난번처럼 8000억 원이다 뭐다 하는 것은 필요 없다. 국민들이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프레시안 : 이번 사태의 궁극적 해결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인국 : 다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 풍경은 모두가 제자리에 돌아간 풍경이다. 이 회장 일가는 자기 지분 갖고 있는 만큼만의 권리만 행사하면 된다. 이재용 씨도 불법적으로 증식한 재산에 대해서는 모두 세금을 내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차명계좌에 존재하는 비자금도 모두 세금을 내고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프레시안 : 주변에서는 또 다른 문건들은 언제 공개하느냐에 관심이 많다. 일각에서는 '언론 플레이', 혹은 '게임'이라고도 지적하는데.
김인국 : 우리도 '폭로쇼냐'는 비판에 괴롭다. 사실 김용철 변호사가 내놓을게 얼마나 많이 있겠나. 김 변호사가 패륜적 배신을 위해 사전에 준비를 해서 오늘날 다 폭로하고 있는 분이 아니다. 김 변호사가 갖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증거를 내놔도 삼성은 모르쇠 하면 된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뇌물이 그렇지 않나. 뇌물은 준 사람과 받은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증거가 어디 있나. 하지만 준 사람이 알고 있다고 하지 않나. 자료의 한계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증언만 있고 증거가 없다'고들 하면서 '증거'만 강조하는데, 이건 틀린 얘기다. 증언이 가장 훌륭한 증거다. 피 묻은 칼보다 목격자의 증언이 더 확실한 증거다. 피 묻은 칼은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 그런데 증언의 증거적 가치를 언론이 주목하지 않고, 자꾸 자료를 내놓으라는 말만 한다. 그들의 '답답하다'는 반응은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왜 찔끔찔끔 내 놓느냐'고 하는데, 우리가 다 내놔야 하나? 다 내 내놓으면 삼성 측에서 수사기관에 말할 거짓말을 다 만들어 놓을 텐데.
그리고 사제단이 알고 있는 것을 다 얘기하면 세상이 절망할지도 모른다. 너무 큰 어둠이기 때문에 다 얘기하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관리대상 인물 리스트 다 내놓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짜 내놓기를 원하는 것인가. 우리가 리스트를 전부 공개하면 당사자들은 엄청나게 창피해 할텐데, 그리는 그런 모욕은 주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자료의 공개를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폭로전 양상으로 갔다.
또 우리는 가급적이면 공개를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검찰이 안 움직이고 있다. 차명계좌 하나만 갖고도 시작할 수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자료 공개를 통한 압박 형식이 된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압박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선에서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우리의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신기자들이 나한테 인터뷰 요청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응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이런 자료 막 퍼뜨리면 우리나라는 뭐가 되겠나. 나라를 진정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자료 내놓으라고 하지 않아야 한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사제단에게 '무슨 짓이냐'고 했다고 하는데, 그 말씀은 새기겠다. 하지만 그 전에 '그렇게 묻는 당신은 무슨 짓이냐'부터 새겼으면 한다. 검찰은 신속하고 은밀하게 수사에 착수했어야 했다.
프레시안 : 김용철 변호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어디인가?
김인국 : 함세웅 신부를 찾아갔다. 함 신부는 김 변호사가 찾아왔으니 얘기를 들었고, 혼내고 달랬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면서 살다가 이제 와서 뭘 어쩌라는 것이냐'며 혼을 냈고, '개인적으로 너무 불행한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달랬다고 한다. 혼자서 그 큰 진실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달랬다.
그 뒤에 사제단 원로 신부들과 모여 희의를 했고, 그 자리에서 '식별'을 했다. 우리가 쓰는 용어인데 그의 말이나 영혼이 참인지 거짓인지 가려내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 함께 가야 하나를 상의했다. 결정된 이후에는 바로 행동(기자회견)에 돌입했다.
김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이나 정관계에서 전방위 로비가 시작됐다. 삼성 측 사장급 인사들이 개인적 인연을 통해 신부들을 만나러 다녔다.
프레시안 :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기로 한 이유는?
김인국 : 김용철 변호사는 "이번이야 말로 내가 이 사회에 보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하더라. 자기가 그동안 살면서 맺었던 인간관계를 끊고 자기를 지탱했던 사회적 기반을 허무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나선 행동을 우리가 공론화 시키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삼성이라는 덫에 걸려 장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 변호사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통해 속죄 받는 길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사제단 내부에서 폭로를 반대하는 의견은 없었나?
김인국 : 반대라기보다는 염려가 있었긴 하다. 그동안 사제단이 쌓아온 사회적 신뢰가 있는데, 위험부담이 크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김 변호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삼성이라는 힘이 어떻게 보면 독재권력보다 막강한 힘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 힘에 거스르는 싸움을 벌일 때 국민들이 이것을 얼마나 이해해주고 얼마나 알아주느냐가 걱정이었다.
진실일지언정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일도 있지 않나. 사회부패라는 것에 대해 둔감하다.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삼성 그런거 몰랐나'와 같은 냉소와 몰이해가 걱정됐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당위'이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프레시안 : 이전에도 사제단이나 김 신부 개인적으로 삼성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이 있나?
김인국 : 일반적 수준에서의 고민이었다. X파일 사건 때 "검찰이 연루된 문제이니 경찰이 나서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 정도였을 뿐 내 개인적으로는 삼성 하면 '기술의 삼성,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와 같은 광고 카피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프레시안 : 사제단 신부로서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기분이 어땠는가?
김인국 : 무서웠다. 그 다음에 영혼의 가위눌림을 느꼈다. 굉장히 괴로웠다.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이런 것인지 알게 됐을 때는 몸서리가 쳐졌다. 성경을 다시 읽게 됐다. 성경에는 재물을 하느님과 맞서는 유일한 강적이라고 했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게 아니다. 우상은 힘이다. 힘의 원천은 돈이다. 하느님을 섬길 것이냐, 돈을 섬길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그랬다. 부자는 하느님의 나라에 못 간다고 그랬다. 그런데 이건희 씨 사는 모습을 보라. 오늘의 일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회를 망가뜨리고 오염시키는 악행을 하고 있지 않나. 절대로 하느님의 나라에 못 들어갈 것 같더라.
이건희 씨가 저지른 악행은 다른 것이 아니다. 좋은 인재들을 모아놓고 무뇌아로 만든 것이다. 돈에 홀려서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피눈물 나게 만들었다. 돈은 아름다운 노동을 통해서 거룩한 소비 과정을 거쳐야만 건강한 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름답게 일하도록 허락하지도 않고 거룩하게 소비하도록 허락하지도 않았다. 비자금이라는 검은 돈을 만들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해고했다. 재투자나 사회복지에 돌아가야 할 이윤에다 빨대를 대서 개인이 착복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착복의 부스러기를 갖고 국가의 인재를 포섭하고 오염시킨 것이다. 그럼 국가 경쟁력은 어디로 가겠나.
1조 원을 가진 사람에게 1억은 1억을 가진 사람에게는 얼마이겠나? 1만 원이다. 당신에게 1억 원이 있다고 할 때, 내가 "1만 원만 줘"하면 1만 원 기꺼이 꺼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검찰총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일반 검사는 500만 원, 고위급은 1000만 원, 총장급은 2000만 원의 뇌물이 설과 추석, 여름휴가 3번 간다. 그럼 1년에 6000만 원 가는 것이다. 총장 임기가 2년이나 총 1억2000만 원이 간다. 그럼 그걸 받은 사람은 1억2000만 원을 받았지만, 1조 원을 가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1억 원을 가진 사람의 입장을 기준으로 할 때 1만2000원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는 것이다. 1만2000원에 자기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부끄럽기는커녕 자기가 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됐다는 안도감을 가진다고 한다. 돈에 자존심을 팔아서 되겠나. 1억2000만 원은 1조 원 가진 사람에게 1만2000원이지, 10조 원 가진 사람에게는 1200원이다. 자기 입장에서 1억2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준 사람 입장에서 1만2000원에 영혼을 팔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은 마귀다. 마귀는 제일 먼저 부끄러움이라는 장치를 제거해 버린다.
프레시안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양심고백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하던데
김인국 : 있다. 그런데 왔다가 도망갔다. 이게 대단히 어려운거다. 우리가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먼저 전화를 해왔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뒷받침해줄만한 충분한 사례들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립무원에 놓은 김 변호사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한다. 이용철 변호사도 그런 경우 아닌가. 또 다른 이용철 변호사들이 많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 삼성에서 일하고 나온 사람들은 다 병이 걸린다고 한다. 김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렇게 찾아온 이들에게 "꼭 증언해주셔야 한다"고 하면, "가족이 웁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삼성이 걸어 놓은 안전장치가 3중, 4중이다. 자기만 털고 나갈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당사자 하나 결단해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 결단을 하려면 인간관계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반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우리도 증언해달라고 사정하지만 한두 번 이상 요구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분은 자료는 없지만 증언만 해줄 수 있다고도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 정말 두려운 문제다. 자기 숨기고서 할 수 있으니 그런 분들이라도 나섰으면 좋겠다. 이번에 못 바꾸면 힘들다.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좋아질 것이다. 이번 기회 놓치면 삼성에서 누가 나와 또 김 변호사처럼 하겠는가.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 높아졌는데 이번에 기회를 살려서 국민 전체가 거듭났으면 좋겠다.
김인국 : 내가 질문하나 하겠다. 이번 사태 이후에 나를 처음 만난 기자들이 내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뭐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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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국 :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 모든 인터뷰의 첫 질문이었다. 그렇게 묻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김 변호사를 어떻게 믿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김 변호사의 말이 거짓말일 수 있는데 왜 믿었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의도가 나쁘다. 진실일까 아닐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 아닌가. 앞으로 이렇게 얘기하려고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
프레시안 : 이번 일을 주도하는 데에서 느끼는 부담은 없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폭로를 시민단체가 아니라 사제단이 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김인국 : 그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부담스럽지는 않나.
김인국 : 신부가 세상의 전면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담스럽다. '쪽 팔린다'는 말뜻이 무엇인지 이번에 배웠다. 여러모로 세상 안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사실 '은둔형'이 사제의 직분에는 맞는 것이다. 원로들에게 걱정 끼쳐드리는 것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프레시안 : 이번 활동과 관련해 불만을 가진 신도들은 없나.
김인국 : 내가 이 성당에 온지 3개월 정도 됐다. 여기 성당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고 부자들도 많다. 한 번은 내가 강론 시간에 '자케오 얘기'를 했다. 자케오는 키가 작은 세관장이었다. 자케오가 어느 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다. 자케로를 본 예수님이 '자케오야 내려오거라'고 한 뒤 자케오의 집에 가서 묵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서 묵는다'고 손각락질을 했다. 그러니까 자케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납하고, 횡령한 재산의 네 배를 갚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케오에게 구원을 내리셨다.
이런 내용을 말하며 자케오가 바로 김용철 변호사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교우들이 불편해 했다. 우리 성당에는 젊은 사람들, 배운 사람들, 부자들도 많이 있는데, 신부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이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너그러이 판단해 달라 그러더라.
맞다. 불편해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 부자라면 그 부탁을 감안하겠지만 그들은 부자가 아니다. 자신이 부자라서 현상유지하고 싶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고, 차선으로 이회창 후보라도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고, 신문은 모름지기 조중동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두 착각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사목은 다른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주고 축하하며 굳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장례식에서는 장지까지 쫓아가 주는 것이다. 그런데 김용철 변호사 일은 궂은 일이기 때문에 간 것이다. 김 변호사가 자신이 털어 놓는 진실을 받아주는 것이 없어서 사제단까지 찾아왔는데, 사제단마저 모르쇠 해버린면 이 사람 버리는 것이다. 불쌍하고 슬픈 영혼 찾아왔는데 어찌 외면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기쁜 일에만 가길 원하면 그렇게 하겠다. 양탄자 깔린 레스토랑에만 가겠다. 힘들거나 억울하거나 눈물날 때 날 찾아오지 말라. 나는 희희낙락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내 사목의 방향을 여러분이 정하라고 했다.
사람이 죽을 때 모두 심판을 받는데, 예수님이 심판의 기준을 사전에 유출해버렸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한 명에게 해준 게 나한테 해준 것'이라고 했다. 보잘것없는 이가 목마르고 굶주리고 춥고 배고프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가지 않은 것은 나를 찾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왜 딴소리를 하나.
프레시안: 사실 사제단은 새만금 간척 반대 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 많은 사회운동을 해오고 있다. 당위성은 확보돼 있지만 모두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김인국 : 우리는 지는데 익숙하다. 외로운데도 익숙하다. 아무리 소리 치고 머리 깎고 굶어도 사회는 꿈쩍도 안 한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하는 게 아니다. 봄이 됐으니 씨 뿌리고 밭을 가는 것이다.
프레시안 : 신부들이 사제단에 가입하기 위한 절차가 있나?
김인국 : 그런 건 없다. 신부면 누가나 사제단에 올 수 있다. 사제단의 기본정신과 가치관을 실천할 수 있으면 사제단 신부다. 한국의 모든 신부들은 사제단이다. 사제단이 몇 명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다. 다만 체계상 각 교구별로 사제단 대표가 있고, 그 대표들이 모여서 상임위원회 구성하고, 상임위에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한다.
프레시안 :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
김인국 : 먼 길 찾아오느라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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