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통령"은 누구인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한 후보가 돋보인다. <프레시안>이 던진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통해 볼 때 가장 준비된 후보는 문국현 후보라 생각한다. 다른 네 후보에 비해 문 후보의 경우 문제 인식의 깊이나 해법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비전과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선순환의 길(High-Road)로 갈 것인가, 악순환의 길(Low-Road)로 갈 것인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와 그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 분노가 조직적 형태로 표출될 커지고 있다. 비정규 노동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감안할 때 국가가 어떠한 정책을 통해 노동시장을 조정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대부분의 개별 기업이 단기간의 가시적인 이익/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특히 경영 성과를 단기간에 가시화시켜야 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개별 기업의 CEO들은 비정규 고용의 장기적인 효과나 국민 경제 차원의 부정적 효과 또는 사회전체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직접적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정부가 개별 기업, 또는 기업체 집단의 이해와 분리된 상태에서, 국가 정책 차원에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동영, 이명박, 이인제 후보의 답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의 위기나 그 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참여정부의 정책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참여정부가 해 왔던 방식대로라면 저임금-저생산성-저부가가치-저임금의 악순환의 길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들 세 후보에 비해 권영길 후보는 보다 적극적이고 선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현실적 실행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문국현 후보에게서는 다른 후보들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본다. 이명박, 정동영, 이인제 후보들은 비용절감을 위한 노동의 수량적 유연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경제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해법을 찾고 있다면, 문국현 후보는 노동자의 평생학습과 숙련의 형성을 통한 노동의 기능적 유연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제안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고임금-고생산성-고부가가치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보는 문 후보의 모델은 어떠한 현실적 가능성이 있을까.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 경제,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고임금의 효율성 효과(efficiency effect of high wage)'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존의 생각에서 자유로운 발상의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비정규직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OECD 국가들에서 최근 비정규직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한 비정규직 고용은 오히려 저임금-저효율-고비용의 악순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단위에서의 생산성 측정을 통해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은 저임금 비정규 노동력의 활용이 반드시 노동비용의 절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위 노동비용의 측정을 위해서는 임금뿐 아니라 훈련비용, 이직에 따른 비용, 양적 생산성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들을 종합적으로 계산할 때 파견직이나 임시직 사용, 외주화가 오히려 단위 노동비용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에 따라 그 영향을 다를 수 있겠으나 노동 유연성 전략의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비용절감이나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제품과 생산 과정 혁신 능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노동생산성의 증진을 위해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동의를 산출해내도록 하는 것이다. 숙련직에서 저숙련직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동기와 의욕에 따라 생산의 양과 질 현저하게 차이나게 된다. 문국현 후보는 이러한 현실을 가장 잘 읽고 있는 듯 하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중시하고, 사람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러한 인식과 구체적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해법의 구체성과 실효성
현실에 대한 인식, 문제의식의 차이는 구체적인 대안 있어서 후보들 간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사회의 상시적 고용불안의 원인과 해법을 보자.
권영길 후보는 정리해고 요건의 강화, 정리해고 사전 합의제를, 이명박 후보는 평생직업 능력개발 체제 구축을, 정동영 후보는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직무급 확대, 전직 훈련 강화를, 그리고 이인제 후보는 경제성장을 가속화하여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 직업훈련, 일자리 정보제공, 직업보도"에 힘쓰겠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동영, 이명박, 이인제 후보가 제시한 해법은 지금까지 참여정부가 시도해 온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상시적 고용불안이 정리해고의 요건 강화로 해결될 것이라는 권영길 후보의 대안도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들 네 후보와는 대조적으로 문국현 후보는 문제의 원인을 새로운 눈으로 진단하고 있다. 문 후보는 상시적 고용불안 증대 원인으로 "설비, 부동산, 금융에 의존한 기업성장 방식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평생학습을 통한 고부가가치화, 기업을 일으키는 동력으로서의 고용,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답변 자체만으로는 대안의 현실적 가능성을 측정하기 어려우나 실제 문 후보가 구체적으로 이러한 해법을 실천해오고 경험해 왔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섯 후보의 답변들 가운데서 획기적이고 독창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 가능성큰 방안을 문국현 후보가 제시한 몇가지 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공시족 및 젊은 층의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문 후보가 제안한 방안은 가운데 하나는 공무원 임용 방법을 바꾸는 것. 즉 "책을 보고 시험을 치루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경험과 해외봉사, 시민사회 봉사 등의 다양한 경험"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젊은 층의 실업난과 중소기업의 인력난, 그리고 공무원의 업무 수행 능력 향상 문제 모두의 해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해법은 이익집단 간의 큰 갈등이나 예산 없이 즉각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정규직 해법의 하나로 문국현 후보가 제시한 "정부가 유사한 노조가 단체교섭으로 얻은 평균임금을 가이드라인으로 사실상의 단체 교섭 효력을 확장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방안 또한 획기적이다. 현재 노조 조직율이 10% 수준인 현실에서, 그리고 연공급적 임금체계로 인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현실화가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의 빈곤화,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대안이라 생각한다.
'선명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넘어서고 있고, 노동조합 조직율을 10% 내외 정도밖에 안되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찾는 것일 것이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력이나 교섭력이 그 어느 때보다 약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안의 '선명성'만으로는 문제 해결을 위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권영길 후보는 그 어느 후보보다 '선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재개정시 포함될 내용으로 파견 철폐, 직접 고용 상시업무의 도급 용역화 엄격 규제 등. 그대로 실현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은 방안들이다.
그러나 그 안들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현실화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파견철폐 주장은 선명성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파견 철폐' 주장을 하는 한 파견법의 개정 방향이나 방법을 고민해서도,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근로자파견법이 통과된 이후 민주노총 등을 포함한 노동계는 폐지를 주장해 왔으나 현재의 노조 조직력이나 교섭력으로 이를 폐지할 수 없다는 것은 권 후보가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선명성'은 오히려 주어진 현실적 조건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진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현재의 파견법을 그나마 개선해 보려는 노력은 파견 폐지 주장 앞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법대로'?
노사갈등, 분쟁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인제, 정동영, 이명박 후보 모두 "노사 자율 해결원칙"과 "법과 원칙"대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분쟁 사례들을 볼 때 정부의 법 해석과 집행이 그 법의 입법취지와 원칙대로 엄격하게 집행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정부가 노사 자율에 의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TX 승무원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노동부가 참여정부 정책보고서로 발간한 [불법파견 형태의 사내하도급 문제 해결을 위한 참여정부의 노력과 과제] 54-55쪽에 따르면, KTX 여승무원 사례의 경우 기존의 노동부 고시 및 지침과는 다른 기준에 의해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부가 노동부 스스로 만든 기준을 어기면서 판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KTX 사례 판정 이후, 노동부의 파견과 도급 판단 기준은 객관적 기준보다는 "종합적 판단"이라는 판단자의 주관과 자의에 맡겨지게 되었다.
만약 노동부가 KTX 사례의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기존의 노동부 기준대로 판단하였다면 여승무원 업무을 외주화한 것은 불법파견으로 판단되었을 것이며 철도 노사간의 분쟁은 지금까지 지속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스스로가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았기에 노사간의 갈등과 불신이 증가하고 갈등이 장기화되고 확대된 것이다.
정부 스스로 법과 정책을 원칙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계속 증대될 수 밖에 없다. 정부 스스로 법과 원칙에 따라 노사 문제를 풀지 않으면서, 노사분규 발생시 '법대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후보들(이명박, 이인제 후보)의 주장은 설득력이 적다.
자기성찰 능력
일본 도요다 자동차의 경쟁력 배경에는 불량을 발견 즉시 수정할 수 있는 '간판 시스템' 이 있었다. '간판 시스템'은 다품종 소량생산과 시장경쟁의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기생산방식(Jus-In-Time)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도요타 자동차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던 이 생산방식의 특징은 불량 발생시 언제든지 생산라인을 멈추고 수정한 뒤에 생산을 지속 한다는 것, 그리고 불량 수정을 위해 누구에게나 생산 라인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정책과 정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책 결정이나 국가 경영상의 '불량'이 발견되었을 경우 즉각적으로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책임성과 용기가 있느냐가 국가통치 최고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적 불량, 정치적 판단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과 성찰성이 있느냐가 대선 후보 평가의 중요한 요소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웨덴의 노동정책 및 복지정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존의 정책이나 제도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수정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근로자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에 관심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비정규법안의 문제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입법의 긍정적 성과 역시 뚜렷하니... 현재 시점의 재개정 논의는 부적절하고... 노/사/정 각 주체는 현재의 법안이 안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정동영 후보)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성찰성은 국민들이 최고통치자에게 요구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이 관여하여왔음에도 잘못이 생겼을 경우 문제의 책임을 늘 밖에서 찾는 한, 책임있는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보호법 법안 제정시 제 1 야당의 핵심인물이었던 이명박 후보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은 정부의 치밀한 대책과 준비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답변을 통해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를 '정부'에 돌리고 있다. 그러나 "치밀한 대책과 준비"가 없는 법안에 동의한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이 법안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책임이 없다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성, 노동 소수자의 관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다. 각 후보들에게 '일하는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노동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집단은 중소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 비정규직, 그 가운데서도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라 할 것이다. 이랜드나 KTX 등 우리사회가 풀고 나가야 할 비정규직 문제의 주 대상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랜드 문제의 원인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어느 후보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안전하고 쾌적한 근로조건"에 대한 질문에 어느 후보도 직장 내 성희롱이나 장애인 편의시설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섯 후보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 정책 결정자 및 정치권에서 노동문제를 성인지적으로 보는 데에 아직도 많은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각 후보들에게 주어진 질문에 여성이나 장애인 등 노동 소수자와 직접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만약 그런 내용이 포함되었다면 당연히 그 문제에 관한 내용들이 답변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장애인을 포함한 노동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노동인권 문제의 해결방안은 전체 노동정책에 녹아들어가는 방식으로 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우려스럽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답변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빠른 증가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와 맞물려 있다고 보는 이명박 후보의 답변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여 증가가 비정규직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성차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의 결과는 다시 여성을 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양자간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규정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로 인해 우리사회 비정규직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억제하는 정책을 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 IMF 직후 실업대책의 하나로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기 위한 정책을 정책결정자들이 고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증가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의 보육정책이나 노동시장 정책을 후퇴시킴으로써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집행의 형평성과 법적 실효성
노동자를 구속했으나 사용자도 구속해야 한다는 논리(권영길 후보)는 실질적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단된다. 권영길 후보는 사용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통한 노동자 보호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랜드 노사갈등의 경우 박성수 회장을 구속하라는 요구나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기업에 대해서는 살인죄를 부과하는 '산업재해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 주장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규정을 두는 것이 사용자에 대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은 있으나 노동자 보호의 관점에서는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형사 처벌의 경우 죄형 법정주의에 따라 범죄 구성 요건이 엄격하게 적용되게 되며, '고의성'의 입증 또한 쉽지 않아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부당노동행위로 인하여 사용자가 구속되는 등의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현재의 근로감독 기능으로는 고용 차별과 위법한 비정규 고용을 효율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근로감독관이 담당해야 할 업무의 종류와 업무의 양을 감안할 때 근로감독관의 수를 현재보다 몇 배 더 늘린다 해도 현실적으로 근로감독 행정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나 산업 안전 관련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행정 감독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당사자 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고용차별 피해자로 하여금 사용자를 상대로 민사상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손해가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는 보상적 손해 배상과는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부당행위"(public wrong)에 대한 "공적 치유책"(public remedy)로, 고액의 손해배상을 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처벌을 받은 사용자(또는 기업)가 장래에 그러한 범죄나 부당행위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다른 기업이 그러한 부당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용상 의도적인 차별 발생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손해배상 청구가능액은 기업규모에 따라 다르게 되어 있다. 5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1인당 손해배상 청구가 30만불까지 가능하다.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집단 소송의 형태로 이루어질 경우 그 배상액은 차별 피해자 수만큼 늘어난다.
만약 철도공사가 KTX 여성 승무원 업무만을 외주화한 것이 합리적 사유가 없는, 고의적이고 위법한 성차별이라고 판단되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미국의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한다면 1인당 징벌적 손해배상액 최고 30만불(약 2억8천만 원)이고, 철도공사가 지불해야 할 손해배상액은 그 피해자 수만큼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면, 기업들은 위법한 차별 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차별 예방 프로그램과 조치들을 취하려 할 것이며, 단순히 여성들을 단기 노동력화 하려 하거나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외주화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성별을 이유로 한 비정규직 차별 최소화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제도를 도입학 있는 미국이나 OECD 일부 국가들의 경우 고의적인 차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겨, 그 예방효과로 인해 차별적 성격의 비정규직이 우리 사회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노동관련법에 의해 사용자를 비범죄화시켜 경제적 보상을 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부의 행정 인력을 늘리지 않은 조건에서도 실효성이 크다는 점에서 도입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국현 후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공정거래법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고 있다. 적어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효과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네 후보에 비해 문 후보가 이 제도를 고용 차별 해소의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노사 상생과 사회적 통합, 일자리와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이명박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근로조건 개선을 경제성장을 통해 이루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믿음인 것으로 읽힌다. '최고의 기업환경 조성"을 위해 "무노동 무임금 준수, 불법 노사분규에 대한 법의 지배확립, 무분규 선언 노사에 각종 지원 우선 적용"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 공약은 경총 등 경영자단체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등 선진 각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성장이나 이윤 증대는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 자동화 기술의 도입을 더욱 촉진시킴으로써 일자리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지난 30여년 간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험해 온 것이다.
문국현 후보의 일자리와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은 이명박 후보와 선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평생학습체제의 도입과 장시간 과로체제의 해소 등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임으로써 고부가가치화를 달성하고 그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근로자의 학습을 근로자의 권리로 인정하면서, 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줄이지만 학습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방안은 노동자를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후보와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을 비용으로,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한 노사간의 상생이나 사회적 통합의 조건은 마련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성장 우선주의, 경총 방식의 친기업적 태도를 취하는 한 현재 산적한 우리사회의 노동문제를 풀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사람을 기업과 경제 성장을 위한 주요한 자원으로 보고, 그 자원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문국현 후보는 노동자를 살리는 것이 곧 기업을 살리는 것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상생과 통합을 가져올 수 있는 매우 균형 잡힌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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