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1시 30분께.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정문 앞에서는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으로 구성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이 공장에서 일하다 지난 3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의 발병 원인이 작업 과정에서의 화학약품 노출이라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방송기자와 사진기자, 취재기자 등 10여 명의 기자들이 취재 중이었다.
이 때 대책위 관계자의 눈에 한 사진기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년 남성인 그는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방한 점퍼의 모자를 덧쓰고 있었다. 이 남자의 정체를 의심한 대책위 관계자는 그에게 소속을 물었고 그는 "<뉴시스> 기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마침 현장에는 실제 <뉴시스> 기자가 취재 중이었다. <뉴시스> 기자를 비롯해 대책위 관계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정체를 캐묻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을 "알바(아르바이트) 사진기자"라며 "김 부장이 보내서 왔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뉴시스> 기자가 "김 부장이 누군지 김 부장의 전화번호를 대보라"며 계속 정체를 추궁했고, 대책위 관계자들이 카메라를 빼앗으려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대책위는 그를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계속 자신의 정체를 숨긴채 "사진을 지우면 되지 않냐"며 카메라를 보여주며 사진을 삭제했다. 그러나 주변 사진기자들이 "나중에 복구할 수 있다"고 말하자, 대책위 관계자는 카메라의 메모리카드를 빼앗았다.
그런데 메모리카드에 그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었다. 메모리카드에 삼성 소속임을 알 수 있는 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
신원이 확인되자 대책위 관계자들은 분노했다. 민노당 경기도당 김용환 위원장은 "기자회견 참석한 인사들 얼굴 사진 다 찍어서 나중에 위협하려는 것 아니냐"며 흥분했다.
결국 박 씨는 자신을 삼성전자 기흥공장 총무부 소속이라고 실토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출동한 경찰에 의해 파출소로 이동한 박 씨는 "본의 아니게 <뉴시스> 기자임을 사칭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나 "회사에서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사진촬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파출소를 찾아온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일은 제가 시킨 것"이라며 "시민단체가 찾아와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는 일이 처음이라 경황이 없고 당황스러워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됐다"면서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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