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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에 몰린 인간, '자살'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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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막다른 길에 몰린 인간, '자살'을 하더라"

[기자의 눈] '직권중재' 칼 빼든 이철 사장, 노동자의 죽음 원하는가

1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이철 사장이 철도노조의 파업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대국민호소문을 낭독한 뒤 기자들과의 문답 시간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기자는 이철 사장에게 질문을 했다.

"현행 직권중재 제도 하에서 철도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이철 사장은 기자의 질문에 "아마 비판적 입장을 갖고 질문하시는 것 같다"면서 "직권중재 제도가 옳은지 그른 지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이나 노동관계 학자들이 답변 드려야 할 일인 것 같다"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항상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 현행 직권중재 제도 하에서는 직권중재에 회부되면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권중재 제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철도파업 공식 '직권중재→파업 불법 규정→공권력투입→손해배상청구'
▲ 오는 16일로 예정된 철도노조의 총파업을 이틀 앞둔 14일 이철 코레일 사장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 사장은 이날 철도노조의 파업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막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직권중재 제도는 수명이 45일 밖에 남지 않은 '곧 죽을' 법이다. 지난해 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며 올해까지만 직권중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직권중재는 철도, 가스, 발전소 등 파업을 하면 국민생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업장의 파업을 제한하는 제도로, 직권중재 결정이 내려지면 파업이 금지된다. 만약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을 하면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 중재조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행정소송만이 가능하다.

'노동3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직권중재 제도는 이중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것이어서 국제노동기구(ILO) 등으로부터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렇게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노사 관계 제도로 인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10여 년간 노사관계 모니터링을 받기도 했다.

이철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누누히 강조한 '불법 파업'이라는 규정의 근거도 모두 이 직권중재 제도에 근거하고 있다. 철도나 발전과 같은 공공부문 사업장의 파업은 거의 매번 '쟁의조정 신청→직권중재 회부→불법 파업→공권력투입→파업 종료→손해배상청구→손해배상판결'로 이어진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직권중재 제도가 폐지되는 내년부터는 필수공익사업장 업무유지 제도가 실시된다. 철도와 병원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도 노조가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지만 차량운전이나 발전설비 가동 등의 업무에는 필요인원을 반드시 유지해야 하고, 파업 인원의 50%까지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해진다.

노동계 쪽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사실상 파업권을 무력화 시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으나, 최소한 합법적 파업은 가능해진다. 따라서 철도노조의 파업은 직권중재 제도 하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불법 파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철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노조가 사측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협상에서 노조에 밀린다는 의미이다. 코레일 내부 사정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파업권'을 빼앗긴 노조에 비해, 파업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해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고, 노조 간부를 형사고소할 수 있으며 나중에 노조로부터 수십억 원대의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받아낼 수 있는 사측이 '노조에 비해 약자'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침과 법원 판결은 '개인에 대한 손배소 최소화'

노조원 개개인에게 '손배소송'을 하겠다고 강조한 점도 유감이다. <매일노동뉴스> 기자는 이철 사장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참여정부 초기 노조원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문제가 됐다. 그래서 노조원 개개인에 대해 손배 책임을 묻는 것은 자제하자고 참여정부는 지침을 내렸고, 법원도 그런 판결을 내리고 있다."

기자의 질문에 이철 사장은 "참여정부에서 그런 지침이 있었는지 확인 하지 못 했다"면서 "판례에 대해서도 그런 판례가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넘어갔다. 다만 "노조원이 불법 파업에 가담한다면 개인적으로 판단해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2003년 손배·가압류의 반인권성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고, 정부차원에서의 대응도 이뤄졌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프레시안

지난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가 분신 자살을 했다. 유서 등을 통해 본 자살의 주원인은 노조활동과 관련해 자신에게 내려진 손배.가압류 부담이었다. 배 씨의 죽음을 계기로 노조와 노조원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신종 노동탄압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 해 6월 철도노조는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며 파업을 했었다. 당시는 공사화 되기 전인 '철도청' 시절이었다. 공권력이 투입됐고 파업은 5일만에 끝이 났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보면 조합에 손해배상청구를 하거나 간부에게, 때로는 보증인 한테도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며 "노동 조합비만 압류해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니 정부와 공기업의 경우 일정한 기준이 필요할 것이므로 노동부와 법무부가 상의해보라."(2003년 7월 1일 국무회의)

이후 정부는 철도노조를 상대로 97억5천85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개인에게 소송을 내지는 않았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사측이 노조 간부들에게 수억 원 대의 손배 소송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절이다. 이 판결은 2006년 대법원에서 배상액 24억4000만 원으로 결론이 났다. 2006년 3월 파업관련 손배소송에서도 조합만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 조합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지는 않았다.

또 2003년 가을에는 행자·법무·노동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해 "손배·가압류 제도개선 문제는 사용자의 남용이 발생되지 않도록 조속히 관련 법률의 개정을 추진하다"고 밝혔다. 이후 노동계로부터 미흡하다는 지적을 들었지만 압류 방식이 급여의 50%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급여의 50%로 바뀌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노조원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불법 파업이더라도 일반 조합원에게는…"
▲ ⓒ프레시안

이참에 판례도 하나 소개할까 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내린 판결(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5다30610)이다. 이 판결은 불법쟁의행위의 경우 노동조합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개인 조합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불법 쟁의행위를 기획·지시·지도하는 등으로 주도한 조합간부들이 아닌 일반조합원의 경우, 쟁의행위는 언제나 단체원의 구체적인 집단적 행동을 통하여서만 현실화되는 집단적 성격과 근로자의 단결권은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데, 일반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해칠 수도 있는 점,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관하여 의심이 있다 하여도 일반조합원이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 간부들의 지시에 불응하여 근로제공을 계속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일반조합원이 불법 쟁의행위 시 노동조합 등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노무를 정지한 것만으로는 노동조합 또는 조합 간부들과 함께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의 근로내용 및 공정의 특수성과 관련하여 그 노무를 정지할 때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또는 손해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가 노무를 정지할 때에 준수하여야 할 사항 등이 정하여져 있고, 당해 근로자가 이를 준수함이 없이 노무를 정지함으로써 그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거나 확대되었다면, 그 근로자가 일반조합원이라고 할지라도 그와 상당 인과관계에 있는 손해에 대하여는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라는 단서를 붙였다.

이는 파업시 업무 종료 절차를 준수해 파업 외적인 피해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택시 기사가 파업을 위해 택시를 주차해 놓고 파업에 참가하기 위해 가는데, 불법 주차를 해놓고 가는 바람에 견인이 됐다면 그 비용은 택시기사가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 파업 기간의 영업손실액을 택시 기사 개인이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은 불법 파업에 참가한 개별 조합원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한 최초의 판결로, 올해 5월 서울남부지법의 판결에서도 확인된다. 남부지법은 기륭전자가 비정규직 노조원 개인들을 상대로 낸 18억 여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한 파업이어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불법 파업임을 인정하면서도 "일반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해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2003년의 아픈 기억 벌써 잊었나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3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다. 이는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리이다. 이 세 권리의 공통점은 '단결'이다. 이미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단체행동권'(파업)을 제약 받는 노동자들에게 '개인적 손배소'를 거는 것은 '단결'을 무너뜨리는 '노조 파괴 공작'이 돼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사회적으로 그 폐해가 얼마나 가혹하게 나타나는지 수없이 봐 왔다.

물론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한 법적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코레일 사측에서 건 십수억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KTX 승무원들, 새마을호 승무원들 개개인들이, 또 앞으로 개인적으로 소송을 당하게 될 철도 노동자들이 받아 들 압류 딱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2003년의 아픈 기억들이 재현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배달호 씨, 김주익 씨 등 많은 노동자들이 분신을 하거나 목을 매달거나 하며 쓰러져 갈 때, 한 노조 간부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쥐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요? 역시 인간은 쥐와 다른가 봅니다. 자기 목숨을 끊어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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