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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를 꿈꾸는 산보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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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를 꿈꾸는 산보자가 되어

[기고] 동대문운동장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면?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문을 닫았다.

현재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디자인센터를 짓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8년 4월로 예정돼 있는 본공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축구장 내 풍물시장 이전과 대체 야구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갈수록 반대 여론은 스포츠인, 노점상, 문화계를 아우르며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박찬숙, 장재근 전 선수를 비롯한 스포츠인 100인은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반대하는 선언을 했고, 동대문운동장 주변 600여 명의 노점상들은 생존권을 빼앗길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획상으로는 이달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7개의 대체 야구장 중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추진되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근대문화재인 구의정수장을 모래로 덮고 그 위에 400석 규모의 성인야구장을 짓겠다는 입장이지만 문화유산 전문가들과 스포츠인 모두 말도 안되는 계획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난지한강공원에 짓고 있는 동호인 야구장은 지난 10월 29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공사를 중단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신월정수장 역시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는 이달로 예정했던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일시적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난 8일 한국야구위원회, 대한야구협회(KBO)와 가진 면담에서 서울시는 "대체 야구장이 50~60% 이상 건설된 뒤 철거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간이야구장 건설이 2~3개월이면 가능하다는 서울시의 관측에 따르면 철거 시기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잡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 같은 서울시의 '졸속 행정'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와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전국빈민연합, 체육시민연대 등은 지난 12일부터 한주간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재를 생매장시키고 시한부 야구장으로 스포츠인들을 기만하며 국가기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려는 반문화·반역사 시장, 오세훈 시장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동대책위 소속 단체인 문화연대의 전규찬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이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전규찬 소장은 "동대문운동장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낡은 곳과 새 곳, 못난 계급과 잘난 계급, 자연과 인공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생태적 조건을 위해 존재하기에 사회적으로 가치가 더욱 크다"며 "도시 미화는 부동산 재개발의 일방주의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편집자>

생태도시 서울을 꿈꾸는 동대문운동장의 산보자

'다큐멘터리와 문화연구'라는 대학원 수업을 하고 있다. 도시라는 역사·지리적 문맥 속에서 다양한 삶의 기록, 즉 다큐멘터리의 작업을 어떻게 해 낼 수 있을지 논의와 고민이 모아진다. 도시와 공간은 더 이상 문화연구와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아니다. 이 양자적 작업의 전면적 대상이자 핵심적 주제다.

도시/공간의 기억을 기록적 실물로 표현해내고, 그럼으로써 삶의 구체적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데 문화연구의 공력, 다큐멘터리의 실력이 모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문화연구실천/다큐멘터리작업이 현실과 철저하게 결부되고 '현실적'일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다중과 의미 있게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답은 '의식'에 있지 않다…몸을 동원하라

이런 발상으로 출발해, 막상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동대문운동장에 관해 물어보곤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청계천에서 쫓겨나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내몰린, 도시 미화와 도심 재개발의 프로젝트를 위해 또 다시 철거 명령을 전달 받은 이들(과)의 삶에 관해서다.

학생들은 이렇게들 답한다. '애당초 동대문운동장에 가 본 적이 없다.' '근처 쇼핑몰에는 가봤지만 길 건너 운동장 쪽으로는 못 가봤다.' '괜히 서글퍼질 것 같아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방적 지자체, 폭력적 개발 권력에 맞서기 위해 '그들'과 '연대'를 모색하는 게 '우리'들에게 맡겨진 중대한 의무라고 제법 시민적 의식을 발휘해 말한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사태를 지켜보겠다고 사뭇 지적인 결의를 다진다.

아니다. 답은 그러한 '의식'에 있지 않다. '그들'에 대한 연대의 책임감이나 연대의 의지, 관심의 표식에 있지 않다. 그렇게 '그들'을 멀리 두고서는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싼 당장의 사태에 주체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 동대문운동장의 상황은 바로 '내'가 그 속으로 뛰어들어 내부 현실을 체험해야 멀리 있는 '그들'의 문제가 아닌 가까이 있는 '우리'의 문제가 된다.

의식이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게 동대문운동장을 우리 것으로 끌어들이는 길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동대문운동장의 사태는 여전히 남의 일이다. '그들'의 불행이다. 이렇듯 현 사태에 관여하는 일에는 의식에 앞선 몸의 동원이 필요하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의식을 새로이 하는 게 동대문운동장을 제대로 찾아보는 방법이다.

이곳은 담백한 교환공간, 소박한 교통공간이다
▲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장 ⓒ프레시안

주말에 혼자 조용히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 역으로 한번 가 보자. 동대문 역에서 내려 근처 분식집에 앉아 모처럼 비빔밥이나 만두국 한 그릇 먹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으리라. 신동엽 시를 흥얼거려보면서, 차들이 빙글 돌아가는 대문 성곽을 쳐다보면서, 그 싸한 느낌을 한번 느껴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다.

낙산공원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보게 되는 전통과 근대, 탈근대의 기묘한 뒤엉킴 상태. 바로 그와 같은 서울에 대해 갖는 묘한 기분과 너무나 닮지 않은가? 이제 서서히 운동장 쪽으로 나서는 산보자는 길 위에 잔뜩 널린 잡다한 물건들에, 가게 주인들의 달콤한 유혹의 목소리에, 멍하니 그 사이를 배회하는 무수한 물티투도(multitudo·다중)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대중들 속으로 몰래 숨어든다. 그리고 한데 어울려 동대문운동장 쪽으로 이동한다. 물론 도중에 마주치는 피부색 다른 노동자들에게 슬쩍 눈인사라도 보낼 여유는 있다.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잠깐이나마 평안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 볼 수도 있겠다. 이 고된 생활에서 더불어 안녕히 함께 살아남아 있음에 감사를 보내면 또 어떨까?

시끌벅적한 동대문, 그 번잡한 주변에서 '국민'과 그 외부 타자의 경계는 잠시나마 무너진다. 간격이 촘촘히 좁혀진다. 그런 점에서 이 시장은 그 너머 판타스마고리아, 신화의 공간과 한참 거리가 멀다. 착취, 소외가 판치는 자본의 독점공간, 물신의 지배공간과 무관하다. 담백한 물건의 교환공간, 소박한 다중들간의 교통공간이다.

낡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삶의 경기에 참여한 '우리'라면

억지라 생각된다면, 약간의 호기심을 발휘해 풍물시장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시라. 거기서 무엇을 보게 될까? 청계천의 망실된 기억과 마주치게 될 것인가, 스펙터클한 건설을 위해 내몰린 도시 빈민의 상처를 엿보게 될 것인가? '뉴타운', '재개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의 고급주택화 현상) 프로젝트가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의 고약한 냄새를 맡게 될 것인가?

그러나 그 뿐이겠는가? 이태리 구제품이 있다. 중국산 골동품도 많다. 운 좋으면 북조선인민공화국 영웅 군공메달을 구할 수도 있다. 야한 성인 테이프가 팔리고, 그 옆에는 보기 민망한 자위기구들이 얼굴을 내민다. 모든 게 오직 노골적이고 솔직한 방식으로 출현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되)팔린다. 일방 정찰제가 아닌, 상호 흥정이 장터의 일반규칙이다.

양심적으로 사고팔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동대문운동장에 있다. 동대문에서 더 이상 축구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신 훨씬 흥미진진한 물건들의 운동이 있다. 분주한 삶의 연출, 격투하는 생활의 관전이 가능하다. 그 생활의 플레이어들과 한 팀이 될 수 있다.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선택이 이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권력, 즉 '그들'의 선택과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이렇게 동대문운동장, 그 낡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삶의 경기에 몸으로 참여함으로써 나는 바로 '우리'로 변신한다. 동대문운동장이 그들이 아닌 우리의 소유공간이 된다. 그런 공동체험에 기초할 때 비로소 귀중한 공간을 말소하려 하는 반문화·친자본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다.

도시 '미화'는 부동산 재개발의 일방주의로 이룰 수 없다

동대문야구장부터 비우고 밀어낸다고 한다. 자본이 아닌, 시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서울을 살기 좋게 만드는, 미래를 위한 '뷰티피케이션(beautification·미화)' 환경사업이라 선전한다. 그러나 도시의 생태적 미학화는 그런 부동산 재개발의 일방주의로 구성되지 않는다.

낡은 곳과 새 곳, 못난 계급과 잘난 계급, 자연과 인공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설계정치학이 정답이다. 동대문운동장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바로 이 생태적 조건을 위해 존재하기에 사회적으로 가치가 더욱 크다. 동대문운동장을 우리 것으로 점유하는 것과 서울을 인·민 다중의 것으로 전유하는 게 별개일 수 없다. 그러니 서둘러 그 곳으로 산보를 나섬으로써 우리의 공통감각, 보편감수성을 일상적으로 단련함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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