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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원론적 답변, 실효성이 의문"

[프레시안이 묻습니다]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

1. 이명박 후보
  
  이명박 후보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노동정책의 기조를 밝힌 바 있다. 크게 보면 노동시장 정책은 '규제완화 및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고 노사관계 정책은 '법과 원칙의 확립'이다. 이번 답변에서도 이런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보수를 표방하는 한나라당 후보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답변 내용을 보면 이명박 후보는 과거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추진했던 것과 같은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추진할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제시된 정책들이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 이명박 후보의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이명박 후보가 가장 자신있게 제시하는 공약은 일자리 창출이며 그 해법을 기업살리기에서 찾고 있다. 과연 7% 성장이 가능한 것인지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고용없는 성장 시대에 일자리가 생각만큼 대폭 늘어날 것인가가 의문이지만, 더 중요한 의문은 설사 고용창출이 되더라도 비정규직 일자리, 나쁜 일자리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의문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이다. 답변서를 보면 이명박 후보는 경영계처럼 '비정규직이라도 고용창출에 기여하니 문제가 아니다'라거나 '비정규직도 하나의 정당한 고용형태로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명박 후보는 비정규직 고용이 '기업에게는 단기적으로 유리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했고, 비정규직 문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의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도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비정규직 법의 비교대상 근로자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언급들은 대개 막연하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미묘한 문제는 대부분 피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법 재개정 또는 보완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법의 효과를 더 조사를 한 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그렇다보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진짜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명박 후보는 정규직 고용경직성이 비정규직 증가의 중요 원인이라고 보는 경영계의 진단에 동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비정규직 증가 원인을 주로 여성 경제활동참여 증가로 돌리는 점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덜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이명박 후보는 일자리 창출을 시장에 맡기지만 정부의 역할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런 입장이 진정한 것인지 립 서비스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정부의 역할로 강조하는 것이 시장에 대한 법적 규제보다는 고용인프라 확충, 직업능력개발 지원 등인데, 이것은 기존 여러 정부 보고서에서도 늘 제시되던 정책이다. 구체적인 예산확충, 제도개선 계획이 제시되지 않는 한 공허하다.
  
  이와 함께 이번 답변서에서 일자리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자주 제시되고 있는 것이 노사타협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노사신뢰와 타협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는 '법과 원칙 준수'라는 기조를 가지고 노사타협을 끌어낼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노사타협이나 노사신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전망이 없는 채 그것들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책임회피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2. 정동영 후보
  
  정동영 후보는 일자리 문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다양한 역할을 하겠음을 밝히고 있으며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 대안들도 제시하고 있다. 노사의 역할도 포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들이 충실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 후보다운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정책들이 백화점식으로 제시되어 있는 가운데 실제 중점적 정책 방향이 무엇인가가 모호하다.
  
  일자리 창출 문제를 보자. 정동영 후보가 제시한 수요 측 정책만 보아도 중소기업 지원,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육성, 사회서비스산업 육성, 기업에 대한 특별 세제 감면, 사회적 일자리, 일자리 나누기 등 다양하다. 고용인프라 확충, 학습기회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 공급 측 정책도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일자리 관련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책이 나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부가 가용한 모든 정책을 동원하다는 것은 그만큼 적극적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정책에 필요한 비용 및 정책의 실제적 효과가 면밀히 검증된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실효성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동영 후보는 여당 후보인만큼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답변서를 보면 세부적 항목에서는 차이들이 발견되나 전체 기조가 어떻게 다른지 또는 같은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보니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정동영 후보의 고유한 입장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부분은 비정규직 보호법 문제이다. 정 후보는 기존 법의 전면 재개정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면서도 보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개방적이다. 특수형태 근로자에 대한 보호 입법이 필요하며,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며, 노동조합을 차별구제신청 주체로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특수형태 근로자 보호나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 것인가이다. 이미 특수형태 근로자 보호 방안에 대해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시안이 제시되어 있고 노사 모두 반대하는 상황이다. 간접고용 규제에 대해서도 격렬한 사회적 논쟁이 예상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 입장이 없다면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입장에서도 나름대로 고유한 입장이 드러난다. 정동영 후보는 노사관계에서 법과 원칙이 중요하지만 공권력이 교섭에 우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체적 폭력이 없는 한 파업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현재의 노동정책보다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산별노조 법제화에는 반대하지만 단체교섭 효력 확장을 위한 법 개정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띤다. 그런데 이런 법 개정은 우리나라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것이 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의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정동영 후보가 야심차게 제시하는 정책 중 하나가 차별없는 성장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용형태, 기업규모, 성별 등 다양한 차별이 확대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정 후보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뿐 아니라 기업규모간 임금격차 축소, 취약 근로자 보호, 최저임금 현실화 등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구체적 방안들이 제시되지 않아 구호에 머물고 있다.
  
  3. 문국현 후보
  
  문국현 후보가 타 후보와 차별되는 주요 내용이 일자리 공약에 있음은 이미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문국현 후보는 일자리의 질, 일자리 창출, 그리고 기업경쟁력을 통합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답변서에도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문 후보의 비전이 국가 정책으로서 어떻게 사회전체적으로 관철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문후보가 가장 강조하는 정책은 중소기업 육성이다. 현재 65%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을 80%로 끌어올리면 청년 실업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만을 중시하는 것에 비해 참신한 발상이다. 문제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이다. 문 후보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 지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후보들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문 후보의 지원방안은 타 후보보다 좀 더 구체적이며,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학습체계 구축을 지향한다는 점이 드러나 있다. 그렇더라도 정부지원을 통한 중소기업 육성을 제시하려면 어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도 그러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학습체제 구축 및 고용증가의 전제조건이지만 장애물은 근로자의 임금감소 또는 기업의 비용증가이다. 문국현 후보는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지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단 정부지원은 1년 반 정도만 하면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 체제가 자리잡히므로 그 후 정부 지원은 줄여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낙관적 견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국현 후보는 비교적 강력한 노동시장 규제정책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비정규직 법을 재개정하여 사용사유 규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 보호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문국현 후보의 노동시장 정책은 짜임새가 부족하고 빈 구멍이 많다. 비정규직법 문제만 해도 당장의 주요 이슈들, 예를 들어 균등대우의 적용범위 문제, 특수고용 근로자 문제 등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취약근로자에 대한 대안이다. 문 후보가 말하는 55%의 비정규직 중 상당수는 서비스업 중소영세 사업체의 노동자들이며 이들이 우리나라 노동자 중 가장 열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용형태가 불분명하여 비정규직 법으로 보호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이 사업체들의 대부분은 학습체계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 근본적 한계가 있는 곳이다. 이들을 위해 어떤 정책대안이 있는가, 그리고 흔히 제안되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같은 정책의 부작용에 대해 어떤 대안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구에서 이들을 위해 실시되는 대표적인 정책인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전망도 제시되어야 한다. 문국현 후보는 산업차원의 임금수준 조정도 언급하고 있다. 중요한 정책방향이 될 수 있는 사안인데 그 실천방안이 모호하다. '노사정 협의'나 '정부의 노력'과 같은 추상적 방안만이 제안되어 있다.
  
  문국현 후보의 노선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졌던 이유는 정부 재정지원이나 시장규제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적자원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시장친화적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답변서를 보면 정부지원이나 노동시장 규제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이 문 후보의 독특한 노선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4. 권영길 후보
  
  권영길 후보의 일자리 정책은 민주노동당 후보답게 명확하고 혁신적이다. 현재의 노동시장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있으며 그 방향도 분명하고 일관된다. 그런데 이런 입장을 가지고 복합적인 일자리 문제의 실타래를 잘 풀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가장 중요하게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권영길 후보는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모든 일자리를 원칙적으로 정규직화한다면 지금보다 양질의 일자리는 늘겠지만 고용총량은 크게 감소하지 않을까? 기업들은 신규고용은 최소화하고 기존에 고용된 노동자의 생산성이나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에 주력할 공산이 크다. 정규직 전환기금을 통한 유인책 마련 등 유연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그 실효성을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이 사회적 일자리 또는 공공부문 고용창출이다. 권영길 후보는 공공부문 사회서비스를 통해 사회복지도 강화하고 일자리도 늘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유럽 복지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몇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재원은 얼마인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실제 효과를 가늠할 수 없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규모를 아무리 높게 잡는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간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나라의 과제이고 서구 국가의 진보정당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대목이다. 유럽 국가의 경험을 보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더불어 임금안정 또는 적절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고용창출과 임금안정 간의 상호조정 또는 상호교환이 필요한 것이다. 1970년대 이래 유럽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타협의 핵심 내용이 그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권영길 후보의 전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라고 해서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권영길 후보는 산별노조 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도 진보 후보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불평등만이 아니라 기업규모간 불평등 역시 큰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산별질서를 통한 노동시장 공정성 확립은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고 산업별 표준임금율이 설정되면 수많은 중소영세기업이 퇴출되고 실업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이 없는 채 산별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까지 받을 수 있다.
  
  요컨대 권영길 후보는 정부와 사용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많은 제안을 하고 있지만 노동조합 및 그 주요 구성원인 정규직 노동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문제 우선 해결', '아름다운 연대' 이상의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와의 공동 연구를 통한 것이면 직무급을 논의할 수 있다는 등의 유연한 제안을 하고 있기도 하나 이 역시 막연한 선언에 머물고 있다. 이런 약점이 권 후보 정책의 전체적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5. 이인제 후보
  
  이인제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대체로 시장 규제보다는 성장에 의한 일자리 창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후보와도 유사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명박 후보보다 규제에 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인제 후보의 답변서에서 가장 눈에 띠는 점은 현행 비정규법이 너무 강하다는 인식이다. 이 후보는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를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규정을 강행'한 것이 문제라고 보고 대기업 비정규직의 근무연한은 3-5년으로 늘이자고 제안하고 있다. 대신 세제 지원을 통해 비정규직을 20%대로 줄이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줄일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 이인제 후보는 KTX에서와 같은 간접고용 문제도 노사정협의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할 뿐 어떤 법제도 개선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신성장전략으로 4년 내에 일자리를 300만개 창출하겠다는 공약도 눈에 띠는 것이지만 구체성이 없어서 실효성이 의심된다. 노사관계 정책도 법과 원칙을 중시하되 최대한 자율로 풀어야 한다는 정도의 원론적 입장을 내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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