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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일하는 당신…"행복하세요?"

[일과 희망·25] "바쁘다, 바빠"라는 진술의 의미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내가 당시 인생의 기쁨 중의 하나는 12시 40분경에 우리 집을 방문하였던 우체부 아저씨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를 보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정성껏 편지를 보낸 후 가슴 두근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내 편지가 친구 집에 도착하는데 삼일, 그 친구가 내 편지를 읽고서 답장을 보내는데 이틀, 그 편지가 우리 집에 도착하는데 넉넉잡아 삼일. 일주일 후에 내 책상위에 놓여있는 친구의 답장.

설레이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을 때의 기분. 대학시절 집으로 성적표가 도착할 시기면 일주일동안 외출을 자제하고 성적표가 엄마 손으로 먼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12시부터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 지구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24시간 사회로 변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다. 휴대폰과 인터넷 보급률이 전 세계적으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빠른 속도의 이동통신기술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신속한 답변이다.

편지한통 보낸 후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메일에 쓴 편지가 상대방에게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빨리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까지 울려댄다. 이제는 성적표를 확인하기 위하여 집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단축되었다.

이처럼 자칫 시간을 죽이며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된 것은 빨리 하나의 업무를 처리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권리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다준 생산성의 대가로 노동시간도 단축되고 바쁘지 않을 자유를 확보하고 있는가?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생산성'이라는 담론

2003년 8월에 주 40시간으로의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2004년 7월 1일부터 1000명 이상 사업장에서부터 주 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주 5일제 근무'로 의미되는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우리사회에 여가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당시 어느 대기업 광고문구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였다. 마치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이 금요일 저녁이면 5일간의 고된 노동을 벗어나 2박3일 일정의 여행을 떠난다는 환상을 하게 된다.

남성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시간단축담론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거나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우리사회에 여가생활의 중요성에 대한 담론이 확산되는 시기는 직장에의 몰입을 요구하는 일중심의 문화가 확대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주 5일 근무로 표현되는 법정근로시간단축을 통해 실 노동시간은 증가되었다. 현재 주5일 근무제가 적용되는 사업장의 불은 평일 오후 9시 전에 꺼지지 않는다. 법정근로시간단축을 통하여 노동 강도는 몇 배로 강화되었다.

더군다나 한국사회의 노동자에게는 아직까지 아물지 않는 집단적인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대규모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을 경험했던 한국사회는 글로벌 무한 경쟁장으로 변모하고 있고, 생산성에 기반 한 능력주의, 성과주의가 노동시장을 더욱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최근 자격증 혹은 면허증 따기, 각종 연수, 어학공부로 상징되는 자기계발 붐이 보여주듯이 (예비)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생산성, 일명 '몸값'을 높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지식을 익혀 엄혹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 ⓒ연합뉴스

어느덧 권위의 상징이 된 바쁨

경쟁이 치열한 도시일수록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빠르다. 알록달록한 단풍이 흩날리는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시간은 없다. 잠을 줄이고 앞만 바라보며 어학학원으로, 각종 시험대비 학원으로, 독서실로 향하느라 바쁘다. 살아남기 위하여, 좀 더 나아가면 가혹한 경쟁의 덤불숲을 헤쳐 나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돈 많이 벌고 성공하기 위하여 바쁘다.

나는 최근 개인병원에 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 내 순서가 되어서 진료실에 들어서니 여자 원장의 챠트 옆에 초등학교 6학년 수학문제집이 있었고 잠시 환자가 없는 틈을 타서 문제를 풀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예전에는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었던 소위 '사(士)'자가 붙은 직업을 가진 사람(어머니)도 숙련된 전문직으로서 자신의 영역을 갈고닦아야 함과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똑똑이, 생산성을 갖춘 예비 사회인으로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높은 생산성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것은 자신의 모든 일상적인 활동을 노동 능력화하는 활동으로 바꾸어놓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모든 틈새시간도 사회가 인정하는 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하지 않으면, 여유시간을 즐기면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최근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은 주말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고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여가를 즐길 시간조차 없는 자, 즉 바쁜 자이다. 바쁨은 일종의 권위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최근 박사논문 준비를 위하여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기혼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한 여성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에는 시내 빌딩가에서 우유배달을 하고 있고 오후에는 시장에서 미싱을 타고 있다. 하루에 13시간이상을 노동하고 있지만 자신의 일상을 "바쁨"과 연결 지어 말하지 않는다.

하루에 4시간이상 못자고 고된 노동이 일상을 점철하고 있지만 사회에서 그다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는 여성은 감히 자신을 바쁘다고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가사노동자인 전업주부가 여전히 사회일각에서는 '노는 자'로 의미되는 것처럼.

가는 길 멈추고 행복의 의미를 되새길 때

바쁨이 권위의 상징으로 등극하고 있는 요즈음, 사회에서는 바쁜 사회를 성찰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느림과 게으름의 미학에 대한 찬양, 바쁨의 원인을 노동으로 진단하고 일중독에서 벗어나자는 진단, "잘 놀자"라며 여가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빠른 속도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 느림을 실천하는 자는 일의 연속성을 파괴하여 다른 사람을 결국 뚜껑 열게 하여 울화병 나게 만든다. 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아하게 자연으로 돌아간 남성과 살아가는 여성은 자연친화적인 밥상을 차리기 위하여 일중독에 걸린다. '잘 노는 사람이 성공한다'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라는 담론들이 암시하듯이 여가의 중요성도 결국 사회적 성공,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성이라는 담론에 종속되어 있다.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우울감, 불안은 빨리 돌아가는 사회에서 가혹한 경쟁에서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집단적 정서가 되어가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늘 준비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 목표를 이루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성취를 누릴 시간은 없다. 맞벌이 부부간 대화는 저녁 무렵 "사랑해요"가 아니라 "회식 있어 늦음" "퇴근할 때 OO(어린이집에 다지는 자녀) 데리고 올 것""지금 어디야?"라는 문자메시지로 한정되면서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때로 답답함과 고립감을 느끼고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하기도 한다. 가던 길 멈추고 자신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입버릇처럼 "바쁘다"고 말한다면 왜 그렇게 바쁜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지를 통하여 무한 경쟁, 바쁨, 속도전을 내면화하고 있는 사회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낄 때이다.

그나저나 현대사회의 바쁨을 분석하기 위하여 늘 바쁜 내 삶의 모순은 언제쯤 해결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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