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일 전국노동자대회와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모두 원천봉쇄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3만여 명의 노동자들은 이날 오후 서울 남대문로를 기습 점거하고 노동자대회를 강행했다. 경찰이 전국 곳곳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집회 참석자들의 상경 차량을 막고 충돌이 벌어져 상당수가 올라오지 못한 가운데 열린 노동자대회였다.
당초 서울 여의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노동자대회는 9일 오후 경찰이 갑작스럽게 금지를 통보해 옴에 따라 긴급히 장소를 바꾸게 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1시 20분 경 남대문로 인근에 모여 있던 조합원들이 기습적으로 도로로 뛰어들어 남대문에서 서울 시청 앞까지 왕복 12개 차선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노무현 정부, 자신들의 약속을 스스로 내팽겨쳤다"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막자 경찰은 헬기와 살수차를 동원해 해산을 종용했다. 이 인근에는 경찰 231개 중대 2만3000여 명이 배치됐지만 큰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서는 이날 예정된 모든 집회를 불허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규탄 발언이 주를 이뤘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대회사에서 "오늘 이 자리는 12년 전 민주노총이 건설된 우리의 생일 날"이라며 "그런 날을 노무현은 군사독재 정권과 똑같이 가로 막으려 했다"고 정부의 집회 금지 방침을 비판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역사적인 대회를 유례 없이 원천봉쇄하겠다며 공동담화문까지 발표한 4개 부처 장관과 노무현 대통령은 그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이 이토록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대회 개최 장소와 관련해 사전에 경찰 등 정부당국과 합의가 이뤄졌던 것을 정부가 뒤집었기 때문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경찰과의 사전 조율 끝에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고 서울 여의도에서 대회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협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자신들의 약속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일방적으로 집회불허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내년에 크게 한 번 붙자"
이 위원장은 "그동안 투쟁을 그렇게 해 왔는데 아직도 거리에서 투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 해법으로 '확실한 총파업'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웠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에 12번이나 총파업을 했지만 국가근본을 흔들지 못하니 우리 생일날 집회까지 못하게 됐다"며 "내년에는 가스도 끊고 철도도 세우고 물류도 멈추고 비행기도 묶고 한 판 붙어보자"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했다.
또 이 위원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 이 위원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며 "자기 이름을 버리고 '내가 권영길이다'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태일노동상 받은 김성환 위원장 "김용철 변호사 응원해달라" 이 자리에서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몸이 불편해 불참한 가운데 제16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현재 감옥에 있는 관계로 부인인 임경옥 씨가 김 위원장을 대신해 상을 받았다. 임 씨는 사전에 김 위원장에게 받은 수상소감을 대신 낭독했다. 김 위원장은 수상 소감에서 "교도 밖에서는 죽음을 넘어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 분들이 많은데 감옥에 있다고 전태일노동상을 받게 돼 부끄럽고 염치가 없다"며 "이 영광을 기륭전자, KTX여승무원 등 장기투쟁 사업장의 조합원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 상은 그동안 삼성 재벌에 맞서 싸워 온 수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삼성에 맞선 지난 10년의 세월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태일 열사가 외치고 있는 것"이라고 수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최근 삼성의 각종 비리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를 언급하며 "김 변호사를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
전야제 대신 '이랜드 규탄' 홈에버 월드컵점 봉쇄
하루 전날인 10일 저녁 민주노총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매장을 봉쇄하고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문화제'를 열었다. 매년 열리던 노동자대회 전야제를 대신하는 자리였다. 5000여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저녁 7시부터 월드컵경기장 앞 왕복 12개 차선을 점거했다.
이들은 매장 영업 중단을 목표로 출입구를 막고 경찰과 2시간 가까이 대치했다. "비정규직 철폐, 박성수 회장 구속" 등을 외치던 이들은 밤 9시 경 홈에버가 영업을 중단하자 월드컵경기장 북문 방향으로 이동해 밤 늦도록 문화제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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