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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심판을 봤던 한 몽골인의 돌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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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심판을 봤던 한 몽골인의 돌연사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40> 낯선 땅에서의 외로운 죽음들

어떤 몽골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아니, 갑자기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시신 주위에는 빈 소주병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을 발견한 경찰은 그의 짐을 뒤져보았지만 여권도, 외국인등록증도 없었다. 그가 남긴 소지품에서도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옷가지 몇 개,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는 아무것도 없는 낡은 지갑 등. 그런데 그 지갑에서 작은 쪽지가 하나 나왔는데, 그 쪽지에는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경찰에서는 그 번호로 전화했는데, 그 전화번호는 우리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일을 배우고 있는 아리온톡소라는 몽골아가씨의 번호였다.
  
  경찰에서는 그의 사진을 보낼 테니 신원을 확인해줄 수 있는지 봐달라고 했다. 사망자가 생겼으면 빨리 신원을 확인하여 한국에 있는 친지들이나 본국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시신을 수습하게 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얼른 보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심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난 외국인을 사진만으로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나 싶었다.
  
  사망자의 사진을 이메일로 받았는데, 역시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부어있었고 푸르스름하기까지 했다. 그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아리온톡소에게 보여주었다. 그 참혹한 사진을 본 아리온톡소는 '어머, ○○○아저씨 같아요'라고 소리질렀다. 그리고는 놀라서 얼굴이 하얘졌다.
  
  ○○○아저씨라는 사람은 우리 단체에서 그 전 해 추석에 서울숲 공원에서 몽골씨름대회를 열었을 때 심판을 봐준 사람이었다. 본국에서도 씨름 심판을 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자신도 씨름선수처럼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저씨라는 말에 스태프들이 우르르 다가가서 모니터를 유심히 보았는데, 그래도 한국인인 우리들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얼른 씨름대회 때 찍어놓았던 디지털 사진을 찾아 비교해보았다. 같이 비교해보니까 이목구비가 비슷했다.
  
  마침내 아리온톡소가 ○○○아저씨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리온톡소는 그 ○○○아저씨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갚기로 한 날짜에 갚지 못했고, ○○○아저씨는 조만간 돈을 갚겠다며 연락처를 잃어버렸으니 적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온톡소는 자신의 연락처를 작은 종이쪽에 써주었다고 한다.
  
  아리온톡소는 경찰서로 찾아가 그 쪽지를 보았고, 쪽지에 쓰여진 숫자가 자신의 글씨임을 확인했다. 아리온톡소는 ○○○아저씨의 지인들을 일부 알고 있었기에 급하게 ○○○아저씨의 친지들을 물색하여 연락을 취해주었다. ○○○아저씨의 시신은 그렇게 해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아저씨처럼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외국인들이 간혹 있다. 변사의 형태도 다양해서 ○○○아저씨처럼 방에 틀어박혀 몇날며칠 술을 먹다가 돌연사하기도 하고, 멀쩡하게 일을 잘 하고 있었는데, 자고나니 죽어있기도 하고, 길 가다가 사고를 당해 죽기도 하고, 또는 사고를 당했는데 누군가가 길가에 버려 둔 상태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면서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 같은 신분증이 없는 경우들이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경찰에서야 당연히 주변의 한국인이나 직장, 같은 국적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탐문하지만 뜨내기처럼 사는 외국인의 인적사항을 알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다보면 외국인상담단체로 협조요청이 오기도 한다. 일단은 특정국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단체들로 연락이 온다. 그 곳에서도 단서를 찾지 못하면 상담단체들에게 사발통문이 돌기도 한다. 예전에는 팩스로 사망자 얼굴이 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메일로 온다.
  
  그러니까 ○○○아저씨처럼 시퍼렇거나 시커먼, 때로는 피멍이 들어 불그죽죽한 시체 얼굴들이 이메일로 오는 것이다. 시신은 원래 붓는 건지 그동안 본 시신들만 부어있었던 건지, 혹은 부어보이는 것인지, 하여튼 익사체도 아닌데 부어들 있다. 그런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놓고 보면 정말 참혹하고 끔찍하다.
  
  그러나 그런 시신들의 사진보다 더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좀더 나은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사람들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숨쉬고 있는 이 땅, 어느 구석에선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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