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원 하던 송아지가 200만 원으로 떨어졌는데 비료 값은 4800원에서 7500원으로 크게 올랐어요."
그저 타결되었을 뿐, 아직 국회비준도 발효도 되지 않았으나 벌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농촌을 휩쓸고 있다.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직장을 잃고 고향에 정착한 후 착실히 소를 늘려온 서상원(45) 씨도 요즘 눈앞이 캄캄하다.
"사람들이 다들 '미국산 쇠고기가 더욱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더 나빠질 거'라고…. 그러니 값이 자꾸 내려가는 거예요."
피할 길도 도망할 곳도 없다.
"규모가 작은 농가는 망하거나 그 전에 알아서 정리할 겁니다. 대규모 농가만 남는 거지요."
'규모를 늘리고 고급육을 생산해야 한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정부 정책에 맞게 농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고급육은 당연히 가격이 비쌉니다. 이것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지요. 대다수는 값싼 쇠고기, 즉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먹을거리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해지는 거예요. 극소수 부자들은 맛좋고 안전한 한우를 먹고 대다수 국민들은 광우병 위험에 떨며 미국산 쇠고기를 씹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첫 번째. 유럽이나 일본은 도축하는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한다. 그러나 미국은 1000마리 중 겨우 1마리만 검사한다. 시늉만 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2003년, 2004년에 이어 2006년에도 광우병이 공식 보고되었다. 미국은 광우병 천국이다.
상식 두 번째. 영국에서 총리가 텔레비전에 나와 딸과 더불어 쇠고기를 먹었다. "안전하니 모두 안심하고 드세요." 얼마 후 광우병이 돌아 수백 명이 죽었다. 잠복기간이 10년. 미국과 정부가 원하는 대로 뼈있는 미국산 쇠고기까지 다 개방되면, 언제, 누구에게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세 번째 상식. "미국 사람들도 다 먹는데 우리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미국은 우리와 쇠고기 먹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20개 월 미만의 소만 골라서 먹는데 살코기만 발라 먹고 나머지는 거의 버린다. 우리는? 뼈를 너무 좋아한다. 물에 담가 푹푹 고아서 마시고, 또 마시고, 뼈 속 골수까지 쭉쭉 빨아 삼킨다. 우리는 내장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만 골라 먹는 셈이다.
마지막 상식. 나만 안 먹으면 된다고? 식당, 병원, 군대, 학교 등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한다. 왜? 싸니까. 한 끼도 사먹지 않고 병원에 절대 입원하지 않으며 자녀들을 학교나 군대에 보내지 않아야만 피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을까?
"농민은 망하고 국민은 죽는 거야. 10년 안에 그렇게 되는 거야."
서상원 씨의 마지막 말끝에 깊은 한숨이 묻어 나온다.
#2.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삼룡리 425번지 서형탁 씨 인삼밭 앞
"4-5년 생 수삼이 750그램 한 채에 1만5000원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1만 원까지 내려갔어요."
4000평 벼농사에 4000평 인삼농사를 같이 하는 서형탁(47) 씨.
"중국, 미국 인삼에 70~80% 관세가 붙는 지금도 값싼 외국 인삼이 쫙 깔렸어요. 그런데 관세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고려인삼 씨가 마를 거예요."
벼농사, 인삼농사 다 합쳐서 1년 수입을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빚이 1억2000만 원이예요. 수입이 어디 있어요."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계산한 2007년 쌀 생산비는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20만1500원. 그러나 정부는 2007년 목표가격을 가마니 당 16만1265원으로 정했다. 작년 목표가격 17만0083원에서 또다시 강제로 끌어내린 것이다.
먹고 남을 만큼 쌀 생산이 든든한데도 외국 쌀을 대대적으로 수입하여 국내 쌀 가격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은 결국 국내 쌀농사를 없애겠다는 것 아닌가.
"국제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어요? 국제투기자본이 기름을 투기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잖아요. 그 놈들이 국제 곡물가격을 그냥 두겠어요? 지금이야 우리 쌀 생산이 뒷받침 되니까 가만있는 거지. 국내 쌀 생산기반이 무너져 봐요. 수입쌀 없으면 굶어죽게 생겨 봐요. 한 가마니에 100만원을 못 부를 거 같아요?"
#3.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소사2리 마을회관
"시중금리는 8-9%인데 농협 영농자금은 3%지요? 농협이 인심 좋아서 그런 거냐? 아니에요. 정부가 그만큼 지원을 해준다, 이겁니다. 그런데 미국 은행들이 이런 것 주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들 돈놀이 하는 데 불리하다는 거지요.
농민은 망해도 도시에 나간 우리 자식들, 수출 잘 되서 살기 좋아지면 또 모르겠어요. 그것도 다 사기예요.
우리가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는 50만 원 싸져요. 그러면 미국에서 우리에게 팔아먹는 차는 얼마 싸지냐? 최고 1000만원! 가장 잘했다는 자동차협상이 이 지경이예요."
전농 부여군 농민회 회원인 이근혁(38) 씨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간담회를 하고 있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냐? 첫째 한미FTA 국회비준 하려면 국민에게 물어봐라. 둘째 한미FTA를 찬성하는 후보에게 한 표도 주지 않겠다. 이 두 가지 서명용지에 서명 하시고 11월 11일 서울에 꼭 같이 가셔야 된다, 이겁니다."
이근혁 씨의 말이 끝나자 마을회관 곳곳에서 이런저런 가슴 속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울에 데모하러 가는 것도 이제 힘들어서 못하겠어."
"아. 아무리 힘들어도 가야지. 안 가면 어디 가서 쌀값을 받아?"
"요새 물 사먹지? 이런 세상 상상이나 했어? 상수도가 민영화되면 꼴이 어떻게 되겠어? 무조건 막아야 돼."
"11일이 음력으로 10월 초 이틀이야. 우리 동네 시제 있는 날이잖아. 이걸 어쩌나?"
"아 어쩌긴 뭘 어째. 시제 할 사람만 남고 다 버스 타는 거지."
"전경들도 우리 자식인데 맨날 서울만 가면 이 녀석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싸움 붙이는 거야. 이런 죽일 놈들…."
"대통령 후보 나오는 놈들치고 나라 생각하는 놈들이 있나. 쳐다보면 속이 뒤집혀."
"그러니 우리가 확 뒤집어야지."
술은 냄새도 없는데 사람들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이야기는 더욱 커진다.
"아침 8시에 마을회관 앞에 버스 대 드립니다. 꼭 타세요."
"연락처 주고 가시게. 의논할 게 있을 테니까."
어둠 속으로, 아니 어둠을 헤치고 그들은 가고 있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