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작년 내내 사회를 흔들었던 한미 FTA가 국회 비준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국정감사도 시작됐다. 그런데도 누구도 한미 FTA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손으로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이 국회 비준 논의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일군의 문화예술인들이 한미 FTA 반대 목소리를 알리는 행동에 나섰다. '한미 FTA 저지 문화예술공동대책위원회'는 '한미 FTA 졸속체결을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와 함께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미 FTA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풍자와 해학전 <개에게 묻다>' 전시회를 개최한 데 이어 오는 11월 11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2007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시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민족미술인협회, 우리만화연대, 민족서예인협회, 작가회의 등 15개 단체 소속 50여 명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 시서예, 만평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지금 국회에 도착한 한미 FTA 체결문은 수많은 시민의 눈물과 분노를 짓밟고 온 것"이라며 "국회가 해야 할 일은 한미 FTA 체결 비준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행된 정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국회에 대한 기만, 국민에 대한 폭력을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비상식적인 한미 FTA의 시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며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적 상상력과 공동체를 통해 한미 FTA라는 죽음의 시간을 되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전시 제목 <개에게 묻다>는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이를 추진한 주체들은 역사 속에서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인 동시에 국회의원과 공문원들이 집을 지키는 '개'와 같은 본분을 다하길 바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을 지면을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 이 사이버 전시는 매일 2편씩 이어진다. <편집자> |
벼꽃
- 박일환
벼는 패고 벼꽃은 피었는데
논틀에 누워 잠든 저 사내
일어날 줄 모르네
허연 눈자위
널브러진 농약병
신음마저 잦아든 풍경을
뜨거운 해의 혓바닥이 핥고 가네
나라마저 포기한 땅에서
논물이 마르듯
희망은 갈수록 오그라들고
껍데기만 남은 육신
이제사 훌쩍 벗고 가셨는가
상엿소리
논두렁을 타고 넘는 동안
희망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벼꽃들만
안쓰럽게 흔들려쌓고
상여꾼들 중에
누가 또 논틀을 베고 누우려는지……
돈 줄 테니 농사짓지 말라는
저 망발의 혓바닥을 뽑아
염천 하늘 아래 패대기치고픈,
목울음을
목울음만
쉬어터지는
질긴 여름날
작가소개 1961년 출생. 제4회 전태일문학상 수상.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푸른 삼각뿔>이 있다. 교사이며, <삶이 보이는 창>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작가노트 이 나라의 농업 죽이기 정책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그 성과(?)가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숨통을 끊어놓는 일만 남다시피 했는데, 그 역할을 한미FTA가 하게 될 것이다. 한미FTA의 혜택을 입어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누가 얼마나 잘살게 될지 도통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영광이 농민들의 죽음을 대가로 해서 얻어지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 앞에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한미 FTA 타결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덧붙이랴. 그들의 당당함과 태연함이 한없이 두려울 뿐이다. |
다시 쓰는 편지
- 문동만
반쯤 깍여 붉은 속살 드러낸 산자락에게
하수구를 빠져나가는
기름기 많은 세젯물에게도 미안해하자
종일 마늘을 까서 3천원을 버는 부모님께
돈 몇 만원 술값을 가당찮게 써대며 미안해하자
몇 년 째 들어가는 직장마다 임금이 체불되는
장가 못간 친구에게 안녕한 월급봉투를 받으며
미안해하자
하천 건너 아직도 연탄을 때는 블럭집 골목길
폐지를 싣고 오르는 힘겨운 삶 뒤에서 클랙션을 울리며
갈 길을 비키라던 그 경망한 소음에게
움찔하던 몸짓에게 미안해하자
누군가에게는 아팠을 상처의 말들을 돌이키며
지키지 못한 몇 가지 약속과 변이 된 맹서 앞에
미안해하자
당신이 전한 순수의 목소리가 내 안에선 왜 탁음이 되는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함이
저항의 이유가 될 때까지
연대의 구실이, 심연을 끓이는 노래가 될 때까지
미안하지 않을 때까지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하자
작가소개 1969년 충남 보령 생. 시집으로 <나는 작은 행복도 두렵다>를 펴냈다. <삶이 보이는 창> 편집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작가노트 미안해서 떠나지 못할 삶이 있고 길이 있으리라. 시간의 더께가 쌓이면 싸움도 흐지부지 되거나 어느새 관조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상이 많아지리라. 그럴 때 나는 미안해하는 습관을 갖기로 하였으나, 아니 아니, 나는 이 습관을 자주 잊는다. 남들보다 잘 먹는 밥에 대하여, 더 남는 시간에 대하여, 더 행복한 찰라에 대하여, 마침내 나도 모르게 포기한 싸움에 대하여, 말이다. 어떤 변혁적 용어에도 미안함, 이란 것이 저항과 연대의 단초가 될 것임을 쉬이 일러주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연민이 나를 당신께 닿게 한다. |
귀원(歸園) 송인도 청주대학교 법학과 졸업 대전대학교 서예과 졸업,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묵지회, 해동연서회, 한국전각학회, 한국서예학회, 한국서예치료학회 회원 대덕구종합사회복지관 서예강사 한국민족서예인협회 대전충남지회장 |
◈ 이번 전시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한미FTA 저지 문화예술공동대책위원회는 출품작 판매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 제작 경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공대위 측은 "전시의 뜻에 동의하는 작가들이 참가비 없이 기꺼이 참가했다"며 "출품작 판매금은 제작에 소요된 최소한의 경비를 지급하는데 쓰여질 것"이라고 밝혔다. 작품 구입 구입 문의는 문화예술공대위 전시팀장 한유진(1jin@hanmail.net /010-7661-0005)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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