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안에 관한 한국방송통신대학 곽노현 교수의 글이다. 이 글은 "정치개입 근절을 넘어 정보활동 전반에 대한 통제강화로!"라는 제목으로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도 실렸다. <편집자>
- 대선에 묻힌 인권법안 ①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안] "7개월 전 여수 참사, 벌써 잊었나" ②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 "'죽어 마땅한 자'는 어디에도 없다" ③ [학생인권법]억압의 교육을 넘어 인권의 교육으로 ④ [사회복지사업법]사회복지시설은 복지재벌의 사유재산? |
싱글벙글 국정원, 실종상태의 구조개혁안
요즘 국정원은 싱글벙글 표정관리에 바쁘다. 아프가니스탄 인질극 해결과정에서 한몫 단단히 한데다 남북정상회담의 준비밀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덕에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심지어 명백한 국정원법 위반으로 판단되는 국정원의 부패척결TFT운영에 대해서도 안보개념의 확대에 따라 당연한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두둔했다.
외부환경도 국정원에 유리하다. 국정원은 테러리즘의 시대, 경제자원외교의 시대, 자국기술보호의 시대를 맞아 부쩍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TV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느새 일반국민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 결과 국정원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말하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국정원이 정상화된 듯한 착각마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업무의 다변화와 친근성이 정보기관에 고유한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에 대한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더욱이 선진국의 정보기관과 비교할 때 국정원에 대한 통제수준은 너무나 미약하다. 현재 국정원은 형식적 수준의 국회통제와 사건성에 의존하는 법원통제 외에는 외부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렇듯 외부통제의 무풍지대에서 불법스캔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05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안기부 엑스파일 사안 덕분에 국정원법 개정안 발의가 봇물을 이뤘다. 현재 5개의 일부개정안과 2개의 전부개정안이 국회정보위에 상정돼 심의를 기다린다. 특히 06년 3월에 정형근 의원(한나라당)이 대표발의한 전부개정법안과 06년 4월에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이 대표발의한 전부개정법안은 한국정치권이 지금까지 도달한 비밀정보기관에 대한 문제의식과 제도 대안의 수준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국정원의 이중통합적 지위: 수사권을 가진 국내외 종합정보기관
현행 국정원법에 따른 국정원은 이중적으로 통합적인 비밀정보기관이다. 첫째, 국정원은 국내보안정보와 해외정보를 모두 아우른다는 점에서 통합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양자를 분리한다.
둘째, 국정원은 공안정보 수집권한뿐 아니라 공안범죄 수사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적이다. 선진국에서는 정보기관의 수사권보유 역시 나치독일의 게슈타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금기로 여긴다. 따라서 국정원에 대한 구조개혁의 초점은 언제나 이중적 통합성의 유지 필요성 여부로 모아졌다.
노회찬 법안: 공안정보기관 폐지 및 해외정보처 전환법안
노회찬 법안은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없애고 미국의 CIA처럼 순수 해외정보기관('해외정보처')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혁신법안이다. 노회찬 법안은 따라서 해외정보처의 조직 및 직무범위, 그리고 국외정보 수집/작성/배포업무의 효율적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노회찬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까지 국정원이 담당해온 국내보안정보 수집, 보안업무 수행, 정보/보안업무 기획조정, 공안범죄 수사 업무 등을 대체법안 없이, 즉 대체기구를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폐기하는 데 있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공안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본령인 공안정보기관은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아래 공안정보기관을 없애되 검경조직의 기존 공안/정보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는 입장인 듯하다. 물론 공개조직의 속성상 검경은 같은 업무를 수행해도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겠지만 이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개인인권의 관점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모든 선진국들이 국내 주민을 대상으로 공안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노회찬 법안이 예정하는 것처럼 공안정보기관을 없앨 경우 국가안보나 중대국익에 중대한 악영향이 초래되지 않을지에 대해 깊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범죄단속과 정보수집의 차이, 일반범죄와 공안범죄의 차이, 경찰조직과 정보기관의 차이에 대해 종합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공안정보기관을 없애자는 것은 무리한 주장일 수 있다.
정형근 법안: 국정원 권한 및 외부 통제의 동시 강화
정형근 법안은 국정원의 이중통합적 지위를 유지하고 정보수집대상을 확대함으로써 국정원의 역할을 강화하되 동시에 국정원에 대한 법적, 외부적 통제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와 같은 방향으로 국정원법을 개정해야 할 이유로 정형근 법안은 첫째, 지금은 "검경의 안보관련 조직축소 등으로 국가안보 및 정보활동체제의 총체적 위기상황"이라는 점, 둘째, 정권교체시마다 추진된 국정원개혁이 "조직, 인사 등 외형적 변화만 반복"했을 뿐이라는 점을 꼽는다.
다시 말해서 국정원의 통합위상 유지 및 정보기능 강화는 국가정보활동체제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반면 외부통제 강화는 국정원의 외형적 변화를 넘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형근 법안에 따르면 국정원 통제의 핵심은 첫째, 국정원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둘째, 국정원의 불법활동과 정치관여를 방지하는 데 있다. 정형근 법안은 그 수단으로 국정원의 업무를 세분화, 명확화하고 각각에 대한 통제, 감독, 처벌 강화를 제시한다.
예컨대, 국정원의 직무수행 원칙으로 정치적 중립성, 인권 존중, 적법절차 준수, 공정성 유지를 규정한다. 기존의 정치개입과 정치관여 금지조항에 더해 정치적 목적으로는 어떤 정보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관여행위의 유형으로 특정정당 및 정치인에 대한 동향파악과 감시 등 정치적 사찰행위를 추가하고 처벌대상으로 삼는다.
국정원의 수사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국정원유치장 감찰, 수사착수 보고, 수사지휘 강화 등 검찰 통제를 강화하고, 국정원의 예산에 대해서도 예산안 첨부서류 제출의무화, 용도 외 사용금지, 매 분기 회계보고 의무화 등 편성과 사용, 그리고 회계에 대한 국회통제를 강화한다. 그밖에도 국정원이나 그 직원의 정치활동, 불법감청, 위증, 부당한 증언거부 등에 대해서 처벌을 신설하거나 강화한다.
국정원에 대해 실효성 있는 외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기본방향 설정은 옳다. 새롭게 제시된 통제수단들도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통제의 목적을 정치관여 기타 불법활동 방지로 설정한 것은 약하다. 국정원의 업무수행과 조직운영에 대한 법치적, 인권적 통제의 확립을 목표로 삼아야 불법공간이 구석까지 보이고 통제수단도 다양해진다.
국정원 통제를 위해서는 국회통제의 실질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회과정의 정치성 및 시간부족에 따른 고유한계가 수반되기 때문에 미국식 독립 감찰총관제도(Inspector-General) 도입과 캐나다식 독립 전문심사기관(Security Intelligence Review Committee) 설립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정보기관의 생명인 비밀성과 전문성의 요청 때문에 국가기관의 생명인 준법성과 책임성의 요청이 훼손당하지 않으려면 엄격한 비밀유지 의무 아래 국정원의 준법성과 책임성을 상시적으로 감시, 점검, 보완하는 전문적인 독립 국가기관을 둬야 한다는 것이 이 방면 선진국들의 공통교훈이다.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외부감시기관이 없을 경우 국정원에 대한 외부통제는 간담회 수준에 머물기 쉬운 국회정보위원회에 의한 통제와 우발적이고 사후적인 법원통제가 전부다. 이 경우 국회차원의 예산과 정책 심사 외에 정보수집 기타 업무수행에 대한 사전적, 체계적 통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외부통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있는 조직은 내부통제도 등한히 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부실통제의 악순환구조가 들어서면 불법비리는 어느 조직에서건 터지게 돼 있다. 음지에서 일하는 비밀정보기관의 경우 말할 것도 없다. 국정원은 부실통제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형근 법안의 통제기제는 국정원의 막강한 위상과 권한에 비할 때 너무나 미약하다. 무엇보다도 직무수행의 기본원칙으로 인권보장 및 적법절차 존중을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뿌리깊은 '국가 속의 국가' 의식과 관행이 사라질 리 없다.
정보수집의 방법과 절차에서 개인파일의 생성과 접근, 보관과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그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중층적이고 정교한 통제의 그물망을 짜야 한다.
더욱이 정형근 법안에 따르면 국정원의 정보수집권한, 특히 국내정보수집권한은 대폭 확대된다. 현재 국정원은 북한정보와 해외정보 외에는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에 대한 정보만을 수집할 수 있다.
반면 정형근 법안의 국정원은 외교 국방 대북 통일 정책관련 정보는 물론 '경제정책 관련정보'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국익관련 정보'도 수집할 수 있다. 거의 무제한적인 정보수집권한을 누리는 셈이다.
공안정보기관의 국내정보 수집대상을 중대공익 관련 범죄정보 수집으로 확대하는 것이 범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확대한 경우는 전례가 없다. 이는 정형근 법안이 공안정보기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론: 국정원 활동에 관한 대통령 조사연구 특위의 필요성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국정원 개혁안을 대변하는 두 개의 전면개정법안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은 생각은 국내외 정보기관의 편제 및 통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수준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이 문제가 갖는 중요성에 비춰볼 때 너무나 낮고 체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10년간의 본격적인 민주법치시대에도 북풍, 세풍, X파일사건,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관련정보 유출사건 등 국정원관련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치권은 국정원 항의방문, 정보위 소집 등으로 정치공방을 벌일 뿐이었다.
날선 말들은 무성하게 오갔으나 본격적인 연구조사는 없었다. 몇 번의 국회공청회도 신문스크랩 수준의 발표와 토론으로 채워졌고 그 결과 사회적 계몽에도, 제도적 합의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지나고 보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하다.
물론 이래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에 복무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정보기관을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한 국가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보장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정보기관에 대한 법치적, 인권적 통제의 성숙도와 실효성만큼 좋은 것이 없을 정도다.
금년 상반기 6개월 동안 법원의 감청영장을 받아 실시된 총5,697건의 감청건수 중 국정원은 5605건을 감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감청대상 사람 수로는 총623인 중에 555명을 감청했다. 이는 유선전화와 이메일 감청만을 대상으로 잡은 통계다. 무선이동전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감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컨대 국정원의 감청건수 중 몇 건이 오판으로 판정이 나는지, 잘못 수집된 감청정보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등에 대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점검과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권리침해에 대한 간이진정절차나 간이구제절차도 마땅치 않다. (☞관련 기사 : 국정원은 '무제한 감청'의 길 열려 한다)
분명한 건 국가안보와 중대국익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개인들이 은밀하게 주고받은 이메일과 이동전화의 내용을 엿듣는 게 국정원의 고유업무라는 점이다. 이런 국정원에 대해서는 경계와 감시의 눈길을 한시도 멈춰서는 안 된다.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의 이름으로 국정원의 모든 비밀서류와 장소에 무제한적 접근권을 갖는 전문감시기관의 존재는 그래서 절실하다.
본격적인 국정원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기타 업무수행 관행을 전면조사하고 선진외국의 정보기관 개혁사례를 검토해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개혁방안, 특히 인권적, 법치적 통제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국정원 개혁과 같이 민감한 주제는 대선국면에서 약속되지 않으면 누가 집권하든 힘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은 인권운동진영이 대선후보들에게 집권 즉시 국정원개혁특위를 구성하여 정보기관 본격개혁에 나서겠다는 방침과 확약을 받아내는 것이 바람직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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