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모은 재산 있으니 나가라고? 그럼 공무원도 재산 1억 원 넘으면 나와야지 왜 있는거예요, 왜?"
"언제는 노점이 미관상 안 좋다며 가판하라더니, 이제 또 미관에 안 좋다고 나가라? 지금 우리를 갖고 노는 거냐."
이야기를 시작한지 5분도 채 안돼 '고함'으로 변한 세 사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급기야 갈라진 목소리를 추스리더니 "요즘 이 생각만 하면 답답해진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이들은 구로, 강남 등 서울 일대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동안 가판대를 운영해온 상인들이었다.
지난 16일 서울시의회는 2009년 말까지 가로판매대, 구두수선대, 교통카드판매대 등 서울시내 3600여 개 가판대를 철거한다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중 보유재산 합계가 2억 원이 넘는 600여 명은 영업 허가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2억 원 미만인 상인도 허가기한이 만료되는 2010년부터 영업을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가판대 상인들은 말그대로 '눈 뜨고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가판점총연합'을 구성한 이들은 지난 9월 서울시가 '재산 1억 원 미만인 자'에 한해 2년 연장을 해주겠다는 개정안을 제출하기 이전부터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라"며 거세게 반발해 왔다. 가판대 상인들과 공동대응팀을 구성해 논의하고 자활기간을 충분히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재산기준이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바뀐 것 외에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앞 집회 현장에서 만난 세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서울시의 행정을 지켜보며 가판대 상인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노점이 미관 상 나쁘다며, 가판 하라더니"
"구로공단 지하철 생길 때부터 노점상을 했다. 그땐 단속반이 리어카 다 때려 엎었지. 하루에 네다섯번도 더 그랬어. 그러다가 1988년 올림픽 하면서 노점이 보기 좋지 않다고 정부에서 가판을 하게 해줬어. 몇십 원짜리 신문, 토큰 팔아오면서 돈 번거야.
그때 가판 받은 사람들 중 판 사람도 있지만 나는 사고 팔지도 않고 계속 해 왔다. 그런데 이제 다시 내놓으라고?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는 이거 내놓으라고 하면 내 평생 생활비 대라면서 시청 앞에 누워버릴거야."
일명 '토큰박스'라 불리는 교통카드판매대를 운영하고 있는 전해남(71) 씨는 40년 넘게 구로에서 장사를 해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는 불법 노점상을 없앤다는 대책의 일환으로 가판대를 지어 장사를 허용했다. 노점을 하던 전해남 씨가 가판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애당초 서울시는 가판대를 설치하며 재산 등 운영에 대한 자격기준을 특별히 정하지 않았다. '도시 미관'을 위한 도로 정비에 나섰던 이들은 노점상에게 융자까지 주선하며 가판대 운영을 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또 당시 서울시는 가판대를 운영자의 배우자뿐 아니라 직계가족도 승계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방침은 2001년 제정된 가판대 조례(서울특별시보도상영업시설물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서 승계 대상을 '배우자'로 제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공무원 시험보려던 아들을 가판 때문에 말렸다니까. 늙은 우리가 어떻게 장사하냐고 하면서 시험 못 보게 했어. 그런데 이제 이것도 아들이 이어 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그냥 나가라니. 이런 손해는 어디 가서 보상받아야 해?"
"겁이 나니까. 뭔지도 모르고 동의해준거예요"
"남편은 IMF 때 명퇴했어요. 그리고 1999년에 퇴직금 털어서 8000만원 주고 가판대 산거예요. 그런데 2001년에 명의변경 해주면서 서울시가 '화해조서'(제소전 화해조서)에 서명하래요. 그땐 그게 뭔지도 몰랐죠. 알고보니 2007년 12월에 가판을 시에 반납하라는 거였는데, 어떻게 돈 주고 샀는데 아무 보상 없이 반납을 해요?
우리가 법원에 몇번이나 가서 기각해달라고 했죠. 도저히 우리 재산을 서울시에 줄 수 없다고... 그런데 구청에서 '화해조서'에 동의 안하면 전기, 전화 끊겠다, 담배소매허가 취소시키겠다, 도로점용허가 갱신 안해주겠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겁나니까 어떡해.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 수두룩한 노인들이 화해조서가 뭔지도 모르고 해준거예요."
평균연령이 65세인 가판대 상인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는 박기명(47) 씨. 그는 인터뷰 내내 "이것이 민주공화국이고 법치국가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2001년 조례 제정 이전 서울시는 상인들이 전매계약서를 제출하면 명의변경이 가능하게 했다. 그전까지 암암리에 이뤄져 오던 가판대 매매를 사실상 인정했던 셈이다. 박기명 씨는 "IMF 이후 우리 가족처럼 실직해서 퇴직금을 들고 가판에 뛰어든 사람이 꽤 된다"며 "그때 가판을 산 재산권을 서울시가 인정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조례 제정 이후 받아든 '화해조서'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즉 당시 조례는 "(모든 가판대의 도로) 점용허가의 갱신 만료기한을 2007년 12월 31일까지 한다"고 규정하면서 "이후 도로는 원상회복한다"고 규정했다. 또 같은 법에서 가판상인들이 이 내용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제소전 화해조서'를 제출하게 했으며(3조 4항) 제출하지 않으면 점용허가는 자동적으로 취소됐다.(4조 2항)
당시 화해조서에 서명한 것을 두고 이들은 "절대 자발적인 동의가 아니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결코 동의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서명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곧 장사를 그만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단속을 맡은 구청직원들이 "지금 이래도 그때 가서 또 바뀌니까(연장되니까) 염려하지 마라"며 회유했던 사실도 똑똑히 기억난다고 말했다.
"구청에 임대료 내고 가판 운영해 왔는데…."
"공무원은 8시간 일하지? 우리는 24시간 일해. 10년, 20년, 이 장사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한 사람도 있고, 노후에 그거 하나 믿고 하루에 3만원이면 3만원, 만 원이면 만 원 열심히 버는데….
저축하고 돈 모으면서 살라고 하는게 정부 정책 아닌가? 열심히 벌어 돈 좀 있다고 해서 다 내놓으라면 자유국가에서 될 말인가. 그럼 재산 1억 넘는 공무원도 자리 내놔야지, 탈세한 국회의원도 내놓고.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가판대 해온 우리는 평생 거지같이 살란 말이냐."
말을 이어가는 변재순(63) 씨의 울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핫도그, 김밥 등을 팔 수 있는 소위 '신가판'(2000년 이후 설치된 가판)을 운영해오는 변 씨는 "결코 공짜로 영업한게 아니다"라며 몇 번이나 강조했다.
가판대는 각 구청에서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자리에 따라 다르지만 상인들은 연간 10~50만 원의 임대료와 함께 가판 이외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사용할 경우 수십만 원씩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지난 2000년 서울시가 기존의 작은 '구가판' 대신 '신가판'으로 바꾼다고 했을 때 역시 400~5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은 상인들의 몫이었다. 또 구두수선대와 교통카드판매대는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만든 공간이다. 서울시가 쉽게 '다시 반납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게 이들의 항변이다.
"버스 카드 만원 충전하면 70원 남는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열심히 살아온 우리에게 서울시가 하는게 결국 이거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깨끗하고 맑은 명품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도로 정비에 팔걷고 나선 오세훈 시장의 정책은 이들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발상이었다.
"공무원들은 머리 안 쓰고 뭐해. 클린서울 위해서 가판대를 없애? 천만의 말씀이다. 가판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도시 미관을 위한 원칙이지. 가판 없애면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 어디 가서 가게 하나 차릴 돈도 없는데. 도로 노점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
언제나 선거철만 되면 가판과 노점은 정치인들 거리 유세의 '포토존'이 된다. 후보들이 상인에게 안부를 물으며 '서민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한 표를 부탁하는 풍경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그러나 정작 당선된 이들이 그 약속을 지키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어보인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11평짜리 아파트에서 '어떻게 발뻗고 자냐'고 말했던 오세훈 시장. 그는 0.3평(1㎡)~1평(3.5㎡) 안에서 매일 16시간 이상씩 보내는 가판대 상인들의 삶을 정말 알고 있을까.
"껌 팔아서 100원 남고, 버스카드 1만 원 충전하면 남는게 70원이야. 한달을 해도 몇천 원밖에 못 벌어. 버스전용차선이다 뭐다 장사 안되서 한달에 30만 원도 못 벌어서 차비도 안 나온다는 사람도 있어. 그래도 이걸 늙을 때까지 하겠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인데…
하루종일 그 좁은 데 있다보면 관절도 안 좋고, 화장실 한번 제대로 못 갔다와. 밤에 들어가면 새카만 가래가 나오고. 목소리가 안 나와서 길 물어보는 사람들 대답도 잘 못해줘.
지금 가만히 놔둬도 못할 분들이 많다. 버스전용차선 때문에 안 벌려서 떠나고 또 돌아가시는 분도 많고. 제발 하고 싶은 사람들은 좀 하게 놔둬야 하는 거 아냐?"
서울시 "집 줄여서 가게 낼 수 있지 않나" 가판대 상인들의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개정된 조례안 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지난 18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밝힌 서울시 건설행정과 관계자의 답변을 정리한 것이다. - 재산 2억 미만이라는 기준에 반발이 심하다. "법에 따르면 2007년 만료기한이 끝나면 다 처리해야 되는데 저소득층도 많고 해서 파생되는 영향을 고려해서 잡은 기준이다. 2억이라고 해도 공시지가다. 거기에 걸리는 이가 3600여명 중 579명이다. 운영자 가족 전체가 아니라 본인과 배우자 재산만 따진거다. 2억 이상 되는 사람들은 집을 작은 곳으로 옮기는 등 해서 작은 가게 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사람까지 책임진다는게 모순 있지 않나. 더 어려운 사람들이 가판 내달라며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 2001년 전 점용허가 권리 허가 양도 허가한 사람들 불만 많던데. 2001년 조례제정 전 얘기다. 그건 재산권 인정이 아니고 단지 어려운 사람들이 2007년까지 한시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명의변경을 인정한 것이다. 그땐 가만히있다가 2007년이 되니까 계속 요구했다. 한시적으로 명의변경 해준거 가지고… - 2001년 화해조서를 작성할 때 구청에서 상인들에게 강제적으로 동의하도록 했다는데. "조례에 명시돼 있는 사항이었다. 어차피 약속이다. 그 당시 상인들 입장은 '7년이면 멀었으니까'라고 본 것 아니겠나." - 2010년 이후에는 가판대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가? "아니다. 개정된 조례에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2년 뒤 더 연장을 해주는지는 그때 운영위의 판단에 따르게 될 것이다. 단 재산 2억 이상으로 허가가 취소되면, 내년부터 철거 들어간다. 그런데 일단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어서 감축 쪽으로 간다. 사실 지금 너무 많다. 신규허가 문의 많이 들어온다. 600개 없어진다고 신규 모집하는건 아니다. 또 가로판매대가 설치되지 말아야 될 장소에 있고, 밀집돼 있다.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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