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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의 오래된 작전명 '바른생활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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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의 오래된 작전명 '바른생활 USA'

[화제의 책]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우리의 임무가 완수됐고 여러분의 공로로 독재자가 쓰러졌다. 이라크는 해방됐다."

2003년 5월 미국 부시 대통령은 침공 43일 만에 이라크전이 '끝났다'고 발표하며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그러나 4년6개월이 지난 2007년 10월, 이들에게 남은 것은 천문학적인 전쟁경비와 늘어나는 희생자, 거짓말쟁이라는 딱지,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또 끝나지 않을 전쟁터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이 미국의 행보에 분노했다. 매년 3월 세계적으로 열리는 반전집회에서는 미국과 부시 대통령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같은 비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이란, 시리아 등 '다음 공격목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학자들은 오래전 이 '저력'에 '신보수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체 이 '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일군의 문화연구가들이 미국의 신보수주의를 더 정확히 알려면 그것의 '모태'이자 '결과'로써 나타난 대중문화를 주목해야 한다며 나섰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서현석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등 5명의 문화연구가가 모여 쓴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책세상 펴냄)가 최근 출간됐다. 필자들은 영화, 스포츠, 음악, TV, 미술 등 각 분야에 깔린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신보수주의를 설명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타와 프로그램을 조목조목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인정한 스타는 흑인 조든이 아닌 미국인 조든"
▲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정희준, 서현석, 이동연, L.S 김, 민병직 지음, 책세상 펴냄) ⓒ프레시안

"맛있는 볼파크와 함께 가정의 가치를 맛보세요." - 마이클 조든이 가족과 함께 등장한 볼파크 소시지 TV광고 중


정희준 교수는 "신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추진력을 얻었고, 서구 자본은 국가와 민족으로 구분 지어지던 가치관, 의식, 태도에서 생활양식, 취향, 입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미국적으로 통합해버렸다"며 "거의 모든 대중문화 영역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에 기여했지만 스포츠는 그 선두에 서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86년 미국 프로농구(NBA)를 매주 시청하는 나라는 35개국이었지만 10년 뒤 1996년에는 175개국으로 증가했다. NBA 선수들이 신는 나이키 운동화는 운동을 좋아하는 전 세계 청소년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물건 1순위에 올랐다.

이 같은 NBA와 미국 상업 스포츠의 세계화에 기여한 인물은? 정희준 교수는 "바로 NBA 선수이자 역사상 최고의 인간 상품인 조든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든의 인기 뒤에는 후원사 나이키의 철저한 관리가 존재했다. 흑인이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조든은 '사려 깊고 다정다감한 아들,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조든은 기자회견과 인터뷰, TV 광고에서 그의 부모나 아내와 함께 자주 출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가족 전체를 공략 대상으로 삼은 NBA의 홍보 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

정 교수는 "조든은 그 신사적인 모습 때문에 대다수 백인의 불편함이나 언짢음 또는 우려 없이 미국 주류 사회에 파고들 수 있었다"며 "'흑인' 조든이 아닌 '미국인' 조든이 되면서 그는 미국의 정치, 사회적 문화를 대표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마이클 조든의 성공, 또는 철저한 상품화는 레이건 정부 이후 미국 신보수주의가 중시했던 가치인 '올바른 남자다움', '이성애', '가족'의 메시지를 세계 곳곳에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언론은 동성애자임을 밝힌 올림픽 다이빙 5관왕 그렉 루가니스의 에이즈 감염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이성애자이면서 에이즈에 감염된' 매직 존슨이나 토미 모리슨에 대한 동정적인 보도로 이 같은 메시지 확산에 기여했다.

정 교수는 "이는 전통적 도덕과 책임, 의무를 우선하는 중산층 와스프(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적 틀에 맞춰진 '바른생활 USA'를 건설하고 또 그 가치를 세계에 확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종차별, 남자다움, 가족주의…그리고 '깔끔한 봉합'
▲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코스비 가족>. ⓒ프레시안

"레이건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코스비 가족>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선한 흑인'으로서 헉스터블 가족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누구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단일화된 핵가족을 구성함으로써, 아름다운 집을 갖고 첨단 유행의 옷을 입고 대학 교육을 받으며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른생활 USA'를 지향하는 가치관은 스포츠뿐 아니라 TV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유포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산타크루즈 캠퍼스의 L.S. 김(L.S. Kim) 교수는 "레이거니즘은 능력 위주의 사회라는 신화에 기반을 둔 사회"라며 "이는 드라마나 시트콤 같은 픽션과 뉴스 프로그램 같은 논픽션 양쪽 모두에서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1984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시트콤 <코스비 가족>은 흑인 가족을 다뤘지만 내용상으로 인종차별이 문제로 제기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분석한 한 보고서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백인 같은 흑인', 교외에 사는 명백한 중산층으로 백인과 다르지 않은 경우에만 해당하는 관용이었다"며 "인종차별을 그럴듯한 형태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영화와 음악 역시 미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 더 정확히 신보수주의 확산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서현석 교수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각각 미국 영화와 음악을 분석하며 람보와 슈퍼맨,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등 상징적인 문화 아이콘들이 어떻게 이 같은 가치관 확산에 대내외적으로 이바지했는지 설명했다.

"슈퍼맨은 미국 시민도 아닌 이주민이지만, 미국 사회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가장 모범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 사례가 된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 내에서 유럽이민족의 위치와 위상을 확인하는 현대의 전설이자 1980년대 팽창주의를 예견하는 징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에 나타난 코난, 터미네이터, 배트맨 등 기형적 철인들 역시 직접 성조기를 휘날리지는 않더라도, 공화당 정부의 기세를 타고 역사와 국경을 초월해 남성적 힘을 과시한다."

"단적으로 말해 1980년대는 잭슨의 시대였다. 1960년대 비틀스,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 등은 시대의 우상이면서도 주류의 흐름에 나름대로 도전했던 반면, 잭슨은 1980년대 레이건 시대 미국의 모습과 딱 맞아떨어졌다. (…) 잭슨의 음악적 메시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랑, 평화, 화합 같은 단어는 현실에서 목도되는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 가장 적합한 소재로 활용됐다."


한미 FTA, 그것은 '자신감'일까 '충직함'일까

저자들은 이처럼 생생한 사례를 통해 각각 분야에 은밀하게 깔려있던 신보수주의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신보수주의가 단순히 정치적 외교적 개념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문화 제국주의 등 전지구적인 공간과 시간, 그리고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눈앞에 둔 한국 사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스크린쿼터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나서 주말이면 10개 중 8~9개를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 내주는 극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보여준다. FTA 협정문에 포함된 방송 쿼터 축소, 통신 시장 개방은 앞으로 다가올 '폭풍'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 FTA가 문화다양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문화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라는 일관된 구호로 대응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 대중문화 속에 꿈틀거리는 이데올로기까지 '역경을 헤쳐온 한국인의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아니면 이미 미국 대중문화 속 이데올로기와 혼연일체가 된 관료들의 '충직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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