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박근혜 전 대표의 지위와 역할을 둘러싼 물밑 협상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겠지만, 이명박 후보의 장고형 인사 스타일이나 기존의 정치권 중심 선대위와는 다른 이른바 기업경영형 선대위 구성이라는 새로운 기획과 구상에도 시간이 적지 않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선대위 구성과 인선은 이명박 리더십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후보 중심 방사형 조직의 경제성
이번 구상에서 눈에 띠는 것은 후보 중심의 '방사형'조직과 외부 인사들의 대거 발탁, 이 두 가지다.
기존의 비대한 중앙 선대위를 지양하고 기동성 있게 일하는, "후보와 직접 연결된 조직"으로 꾸리겠다는 의욕은 그것대로 잘 살려나가야 할 문제의식일 터이다. 그러나 정치가 어디 의욕과 의도만으로 되는 것인가. 의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결과이니 만큼, 과연 이명박 선대위의 '방사형'조직이 기동성 있게 일하는 조직으로 잘 작동할지는 따져보아야 할 대목이다.
후보와 직접 연결된 방사형 조직이 계서적 피라미드 조직에 비해 결정과 집행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크게 이론이 없을 듯하다. 더 나아가 그 결정이 제대로 집행되었는지를 체크하는 피드백에도 효과적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책임소재가 분명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방사형 조직은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부분이 크게 영향 받지 않고 작동된다는 강점이 있다. 모든 부분이 후보와 직접 연결돼 있고 후보한테 직접 책임을 지므로. 예컨대, 홍보 쪽에서 문제가 생겨도 정책이나 조직은 그것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언뜻 대단히 효과적인 조직 운영 방식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후보만 건재하다면 어떤 돌발 상황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고 '이가 상하면 잇몸으로 대처'하는 임기응변까지 가능하니 말이다. 전체의 조화는 "보이지 않는 손"(이번 경우에는 이명박 후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인데)에 맡기고 각자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면 되는, 일종의 "시장경제적 조직 운영"방식인 셈이다.
위기 상황에는 취약한 방사형 조직
그러나 강점이 곧 약점이 되는 것이 세상이치.
모든 권한이 후보에게 집중되는 방사형 조직의 강점은 작은 사고나 위기 상황에서도 곧바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결정권자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정보가 입력될 경우 구조적으로 바로잡기 어려운 것이다.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결정들이 여타 부분과의 조율이나 협의 없이 이루어지고 집행된다는데 있다. 따라서 각 부분들은 정신없이 움직이지만 후보 외의 누구도 그 전모를 알 수 없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사후 조치를 할 수도 없다.
'방사형' 조직의 이와 같은 치명적 약점 때문에 어떤 조직이든 조직이 커질수록 본능적으로 '방사형 조직'을 피하는 것이다. 다소 기동성이 떨어지더라도 전체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피라미드형 계서조직이 위기관리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방사형 조직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선대위라는 정치조직을 방사형으로 운영할 경우 후보 중심성이 극단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한나라당 권력의 원천이 되어 있는 이명박 후보에게는 안 그래도 '사진 한 장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텐데 '방사형 조직 운영은 이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한 건'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꼴이니 이래가지고서야 최소한의 질서 유지 조차 될른지 의문이다. 일단 '한건주의'가 발호하기 시작하면 어떤 전략도 온전하게 구현될 수 없다는 것은 크건 작건 권력을 운영해 본 사람이면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명박선대위를 작은 조직으로 볼 것이냐 큰 조직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는 한번쯤은 원점에서 검토해 볼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아마 백번을 검토해도 확고부동한 1위 후보의 선대위를 작은 조직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이명박 선대위가 선택한 방사형 조직은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괴리로 볼 수밖에 없다.
'탈여의도' 위해 안산에서 선대위 발족식?
'여의도 정치' 탈피라는 기치아래 이루어진 비정치인들의 대거 발탁도 문제의식만큼은 높이 살 수 있겠다. '여의도 정치'라는 말 속에는 소모적 정쟁과 지역주의정치 등 우리 정치의 온갖 비효율에 대한 냉소와 비판이 담겨있다고 봐야 되겠다. 그 '여의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이 어찌 신선하고 통쾌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각계의 비정치적인 전문가"들을 선대위원장에 발탁하는 것은 탈 여의도를 한다고 선대위 발족식을 안산에서 치루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 발탁한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듯이 "여의도 정치인"들 또한 정치 영역의 전문가들이다. 더구나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전문가들의 통찰력과 창의력과 추진력이 필요한 때 아닌가. 국민 성공 캠프를 꾸리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업으로 하는 정치 전문가들을 제끼고 비정치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하는 아마추어리즘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이번 선대위 구성에서 나타난 방사형 조직 운영과 비정치인들의 대거 발탁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불원간 이른바 '6인회의'로의 권력집중을 가져오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6인회의는 이 후보, 이상득 국회부의장, 최시중 전 갤럽 회장, 이재오 최고위원, 박희태 의원, 김덕룡 의원이 참여하는 비공식 최고의결기구다.) 선대위에 최소한의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비정치 전문가들의 정치영역에서의 비전문성을 어떤 형태로든 보완하기 위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게 될 권력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와 그로 인한 갈등과 위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이번 실험에서 주목해 봐야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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