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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태어나 한 번은 싸워야 한다

코스콤 비정규직 정인열 씨의 수기

부당노동행위, 비정규직 등의 표현 자체가 낯설었다. 컴퓨터 서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단어들이라고 여겼다.

서버에 문제가 생겼을 때면 함께 머리를 맞대다 저녁이면 술잔을 나누던 동료들과 월급 봉투의 두께가 확연히 달랐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일을 배우고, 인간 관계를 다지는 게 월급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둔 올해 5월이었다.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 부지부장 정인열 씨의 사연이다. 정 씨는 증권거래소의 전산망 관리 자회사인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에서 7년째 일해 왔다. 코스콤 관리자의 면접을 거쳐 채용됐고, 코스콤 사무실로 출근했다. 코스콤 직원들과 같은 일을 했고, 업무 관련 회의에도 당연히 참석했다. 그런데 정 씨의 월급봉투가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얇았던 것은 그가 '아이티네이드'라는 파견업체 소속이기 때문.

그런데 올해 5월 정 씨가 겪었던 관행이 불법 파견, 위장도급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코스콤 측은 코스콤 정규직이 아닌 직원들의 전자결제시스템 접속을 막았다. 파견업체 소속의 많은 직원들이 기존의 계약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가 생겼다. 그리고 노조 설립은 더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던 정규직 직원들이 등을 돌렸다. 사무실 배치도 바뀌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벽이 세워졌다.


동고동락하던 정규직들이 "힘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 한마디쯤은 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외로왔고, 외로운 시간은 깨우침을 낳았다.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그간의 관행 중 상당 부분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정인열 씨 역시 이런 깨달음을 얻은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노동운동은 아직 먼 단어였다. 그래서 그냥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할 곳은 많은데, 굳이 '더러운 꼴' 보며 남아 있을 필요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갑자기 변화가 생겼다. 코스콤 측이 협박을 가했다.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협력업체에 피해를 입히겠다는 것.

이런 협박이 정 씨의 사표를 접게 만들었다. '그래 남아서 싸우자'라고 결심했다. "노동법 따위를 알아서 무엇하냐"던 그는 이제 투사가 됐다.

그리고 비정규직법 시행 100일째, 코스콤 비정규직 파업 27일째였던 지난 8일, 경찰은 코스콤 비정규직의 농성장을 강제철거하고, 70여 명의 조합원을 연행했다. 9일에는 코스콤 비정규직 조합원인 전모 씨가 서울 여의도동 원효대교 남단 CCTV 탑 위에서 "정규직 착취 선두주자 코스콤 규탄한다", "용역 깡패 비호하는 폭력 경찰 규탄한다"는 두 개의 플랭카드를 내걸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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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강제로 연행된 조합원들이나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속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조합원이나 모두 정인열 씨처럼 노동운동 자체가 낯설었던 이들이다.

다음은 스스로가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던 정 씨가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기록한 글이다. 학창시절 운동권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그래서 농성, 강제 연행 등의 단어 자체가 낯설었던 대부분의 코스콤 비정규직이 정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따라서 정 씨의 글은 코스콤 비정규직 일반의 정서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월간 <작은책> 2007년 9월호에 실린 정 씨의 글을 <작은책> 편집부의 허락을 얻어 소개한다. 이 글은 전적으로 정 씨의 글이다. 정 씨의 글에 대해 사측이 반론을 제기한다면 그 반론도 실을 예정이다.<편집자>

"경력 쌓고 월급만 받으면 됐지…."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비정규직'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몰랐다! 물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급업체의 정직원'이라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래 왔으니까 말이다.

2000년 10월 30일, 대학 졸업 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주)코스콤'이라는(당시에는 '한국증권전산(주)') 공기업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기업명을 가지고 있던 이 회사와 이렇게 질긴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입사 당시에는 아이티네이드(구 피에스엠코리아)와 6개월 계약직으로 서면 계약을 하였다. 그 이후에 정규직화해 준다는 조건으로. 그래, '정규직'이라는 문구 때문에 나는 이 직장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입사 당시부터 그랬지만 1년이 지나도 '아이티네이드'라는 회사의 정체와 코스콤과의 관계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안타까운 것이 그때는 도급이고 파견이고 그런 개념도 없었던 것이다. 코스콤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좋은 기업인가 보다 하고 지원했고, 면접도 코스콤 관리자들이 보았고 코스콤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이상한 건 아이티네이드에서 월급이 나왔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경력도 쌓고 월급만 잘 나오면 됐지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전산업무를 담당하는 코스콤에서 7년 째 비정규직으로 일해 왔던 정인열 씨는 8일 오후 마이크를 잡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프레시안

휴가때면 왜 그리 시스템 장애가 잦던지….


처음 6개월은 공인인증서에 관한 고객 문의 전화를 받는 일을 하였고, 이후에는 전산 전공을 살려서 전산 시스템 관리를 하게 되었다.

24시간 가동 시스템이기 때문에, 밤에 자다가도 전화 받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새벽 2시에도 긴급 출동하는 일이 많았다.

여름휴가를 가서도 왜 그리 시스템 장애는 나는지, 휴가 3일 중 2일을 회사에 나와야 했던 적도 있었다. 시간외 근무수당, 뭐 그런거 나는 하나도 몰랐다. 그저 일 열심히 하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혼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규직들도 함께 같이 일하지 않는가. 정규직, 비정규직을 떠나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기에 나는 그저 만족해했다. 같은 일하는 코스콤 정규직 직원들은 나에게 참 잘해 주었다.

회식도 함께하고, 서로의 경조사도 챙겼다. 그런데….

그리고 나 역시 평소에도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솔직하게 대했고 업무적으로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하며 일해 왔다고 자부한다.

자그마치 7년이다. 7년을 매일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 맞대고 밥 먹고, 등산도 가고, 축구도 같이 보고, 회식도 하고, 각자의 경조사(결혼, 돌잔치, 부음 같은)를 꼬박꼬박 챙겨 주었고 정말 마음을 다해서 그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이 회사에 장기간 근속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임금이 말도 안 되게 낮았어도, 4대 보험 외의 복리후생이 없었어도, 나는 '차별'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2007년 5월 초,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나 말고 다른 도급업체와 파견직으로 속해 일했던 동료들이 기존 업체와의 계약을 정리하고 다 아이티네이드 소속으로 계약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전부터 파견업체에 2년 이상 속해 있던 사람들은 파견업체를 계속 바꿔왔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시행 두달 전, 전자결제시스템이 갑자기 멎었다

그때는 그게 정규직 고용의제를 피하기 위한 코스콤의 속셈인 줄을 몰랐다. 그냥, 으레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도급업체 통합이 문제가 아니었다. 원활한 업무를 위해 사내 전자결재시스템인 '나누미'라는 것이 있었는 데, 갑자기 하루 아침에 나누미가 안 되는 것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확인해 보니, 아이티네이드의 PL(Project Leader, 단위 업무의 책임자)로 지정된 사람만이 정규직원까지 포함하여 메일을 주고 받을 수가 있었고 그 밖에 협력 직원들은 같은 도급업체 직원끼리만 사용할 수 있게 바뀐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었다. 계약이 도급업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업무 회의도 같이 하고, 무엇보다 7년이란 세월을 거리낌없이 지내 왔는데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업무가 위장도급, 불법파견에 걸리니까 그걸 막기 위해 길게는 20년 동안 자행하던 것을 감춰 보겠다는 속셈이었다.

'더러우면 내가 나가지'했는데, 노조가 생겼다

게다가, 새로운 도급업체로 옮긴 동료들은 열악한 임금 수준이 조금 나아질 거라는 회사의 말을 듣고 기대를 했건만, 막상 연봉 협상과 근로계약서를 서명할 때의 사측의 태도는 너무나 무성의하고 실망스러웠다.

아이티네이드에서는 코스콤에서 제공하는 도급 비용 자체가 인상되지를 않아서 오히려 많은 협력직원의 계약을 떠안게 되었고, 그나마 있던 경조사비를 50%나 인하하였고, 당장 내일까지 계약을 안 하면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이다라는 통보를 하였다.

그래, 거기까지도 좋다. 더러우면 내가 나가지 뭐. 어차피 갈 데는 많은데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참고 참았던 불만은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2007년 5월 29일, 다른 팀에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놀랄 만한 소식을 들었다. 여의도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코스콤에 근무하는 나와 같은 협력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집회를 했다는 것이었다.

마냥 참고만 있기엔 비정규직 수가 너무 늘었다

'증권산업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오래도 참았지. 그리고 더 이상 참기에는 코스콤에서 일하는 정규 직원이 아닌 협력 직원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정규직 500여 명, 비정규직 550여 명….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동안 비정규직원의 자리는 자꾸만 늘어갔던 것이다.

그 동료는 그 이후로 꾸준히 나에게 소식을 전해 왔고, 나는 충분히 이해를 하였다. 선구자들, 용기 있는 이들, 옳은 길을 가는 이들이라고.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가입은…. 우선 내가 있는 분당 근무지는 여의도 사업장과는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분위기도 많이 달랐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또한, 그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그 팀에 근무하는 사람들만의 이익일 텐데, 괜히 우리가 끼면 그이들도 싫어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노조가 생긴 후, 자리 배치를 새로 했다…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높은 벽

코스콤비정규지부가 작지만 일부 언론에 기사화된 것을 보고 난 뒤, 나는 분당의 정규 직원들도 그 소식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곳에서 도급화를 하기 위해 여의도뿐만 아니라 분당에서도 여러 가지 행정적인 처리를 바꾸기 시작했고, 점점 더 정규 직원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정규 직원들은 PL이라고 지정된 담당자를 통해서 업무지시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내 업무인데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도 이상했고,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일도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나누미가 갑자기 안 되는 날에도 모든 사람들은 침묵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높다란 파티션을 치고 자리 배치를 다시 해도 모든 사람들은 침묵했다.

'함께 웃고 떠들던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고요한 사무실

나는 최소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서 그저 같이 정을 쌓아온 동료로서 '힘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해명의 말만 듣고 싶었다.

여의도에서는 코스콤비정규지부가 활동을 하고 시끄러울 텐데,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나였는데도 날이 갈수록 사무실에는 고요한 적막만 감돌 뿐이었다. 그 침묵을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침묵은 해결이 아니다. 침묵은 위로가 아니다. 침묵은 동료애가 아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웃고 울고 지내며 쌓아온 시간들의 결과란 말인가? 비정규직 시행법 때문에, 회사 방침이라고 해서 그네들도 군말 없이 그 구조에 순응한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당연히 내가 애정을 가졌던 내 업무에 대해서도 진척을 할 수 없었고, 그런 사무실 공간에 몸을 담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역겨웠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노조 가입, 그리고 사표…'당신들의 침묵 때문에 떠난다'

결국, 수많은 고민 끝에 6월 7일 분당에 근무하는 사람들 30여 명과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에 가입 신청서를 정규 직원들 모르게 제출하였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미 마음이 떠난 회사여서 그랬던 것일까. 코스콤을 엿먹이고 싶다는 의지도 접은 채, 6월 11일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만 노조 가입을 철회하고 회사에 '사의'를 표명했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정규직 여러분의 침묵 때문입니다' 하고 알려주고 싶었다. 노동조합이고 뭐고 그저 하루 빨리 이 사무실을 벗어나는 것이 나는 시급했던 것이다.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대신 며칠간 휴가라도 다녀오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는 권유로 나도 마음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노조 탈퇴 않으면, 협력업체와의 관계 끊겠다" 협박

다른 직장을 알아보며 쉬던 6월 14일, 내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의 발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6월 13일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에서 사측에 아이티네이드 소속 30명이 신규가입되었음을 발표하였는데, 바로 다음 날 아이티네이드 인사팀장이 와서 우리 동료들을 협박한 것이다.

내용은 "지금 즉시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코스콤에서 아이티네이드와의 모든 계약을 끊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피해가 간다, 또한 노조 활동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손해에 대해 코스콤에서 아이티네이드에 비용 청구를 할 것이다, 그러니 즉시 노조를 탈퇴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이것은 완전 '동료의 목숨을 담보로 칼만 안 든 강도들'인 것이다. 날강도가 따로 없다더니 바로 코스콤이 그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노조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즉시 증권노조 간부들과 비정규지부 동지들이 분당으로 달려왔다.

난생 처음 접한 말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부당노동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티네이드 인사팀장은 본인의 아이디어였다면서 자필로 '사과서'를 썼고 코스콤 직원 출신인 부사장 역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였다.

그날의 작은 싸움은 승리로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료들이 "인열 씨, 우리 한번 싸우고는 나갑시다. 어차피 회사 그만 둘 거, 엿이나 한번 먹이고 갑시다. 그리고 만약 잘 안 되었을 때, 우리 동시에 다 사표냅시다" 하고 설득하였다.

결국 그 날 나는 다시 증권노조에 가입을 하였고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자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노조 탈퇴자들만 데리고 점심 식사하러 가는 관리자들

노조 활동이 분당사업장까지 넓혀지자, 관리자들은 우리에게 대놓고 말을 걸지 않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부당노동행위' 사건 이후로 노조에 분위기상 편입하였던 사람들이 대거 탈퇴하고 분당 근무자 35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5명만이 노조에 남게 되는, 숫자상으로 보더라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후로 코스콤 정규직 관리자로 있는 사람은 노골적으로 노조 탈퇴한 사람들만 데리고 점심을 사 주었고, 또한 갑자기 근태 관리나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는지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코스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우리의 현실과 싸움의 정당성을 인식하였고, 각종 교육, 수련회, 총회를 거쳐 더 이상 무지하지 않은 똑똑한 '노동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똑똑해진 우리는 '왕따'가 됐다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조합원들과 시간들을 같이 보내며 동지애를 다졌다. 결국 6박 7일간의 파업 투쟁에서 사측이 우리 지부를 교섭 대상자로 인정하는 '기본 합의서'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파업 투쟁보다 더 힘이 든 현장 투쟁을 하고 있다. 정규 직원들과의 갈등과 오해는 여전히 있고, 중간에 노조를 탈퇴한 동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이야기도 나눠 보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져 있다.

내가 맡은 업무인데도 정규 직원들이 먼저 접수해서 자신들이 처리하며 업무를 빼앗고 있고, 또한 정말 치사하게도 조합원들을 제외하고 자기들끼리 점심 먹고, 대화를 나누는 따위, 한마디로 '왕따'가 사무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러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원망할 수 없다. 다만 같은 노동자로서, 탄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이해는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우리가 이겨야 다른 비정규직도 산다

1차 파업투쟁 이후로도 교섭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코스콤은 계속 20년간 저지른 불법파견, 위장도급에 대해 이제 와서 '법'으로만 판단하겠다며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모든 자본가들의 행태는 다 같은가 보다. 이랜드-뉴코아, 기륭전자, KTX 승무원, 우리투자증권 들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본가는 항상 사람을 '물건'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2차 투쟁을 힘차게 준비하고 있다. 비록 101명밖에 되지 않는 숫자지만, 승패는 우리의 올바른 의식과 의지에 달려 있다. 나는 코스콤비정규지부의 싸움이 우리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본과 노동자 계급간의 싸움이며, 그러기에 노동자가 함께 뭉쳐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업장의 비정규직 싸움이 이겨야 우리가 이기는 것이고, 우리가 이겨야 다른 모든 비정규직 싸움이 이기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노조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인간은 위대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인간의 본질로서 반항하고 일어섰을 때' 그 인간은 한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일어섰을 때 가슴이 벅차다. 그래서 우리나라 모든 기업에는 노동조합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행동 없는 의식'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고, 또한 행동하여야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내 인생이 가치 있어지는 것이다.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다른 사업장 집회에 가서 하는 연대 발언들. 연대 발언, 그거 참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나는 우리 코스콤비정규지부의 투쟁이 반드시 이길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사람이고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자본과 권력이라는 더러운 것들에게 저항할 때, 그리고 그 저항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나는 승리한 것이다.

작은 변화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나긴 역사 속의 왕권 체제도 무너졌고, 일제 해방도 일어났고, 군사정권도 물러나지 않았는가. 그 저항의 중심에는 가장 약한 '민중', 즉 '노동자'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장기투쟁하고 있는 KTX 승무원, 기륭전자분회 노조 동지들은 승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일어나면 또 다른 사업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 아니 모든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저항하는 그 날이 오길 간절히 원한다.

자본의 논리가 강해질수록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 어려워진다. 나는 노동자니까, 자본 논리에 수긍하지 않으련다. 나는 '살아가고' 싶다.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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