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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못 사는 나라, 대한민국

[프레시안-참여연대 공동기획] 대선, 대선 이후를 준비하자①

올해 초부터 '민주화 20년'과 'IMF 10년'을 맞아 2007년 대선은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어느덧 대선을 불과 두달 앞둔 현 시점에 현실 정치 세력은 '한국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논의의 단초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정치적 함의도 찾기 힘든 이전투구식의 권력투쟁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거나, 상대편의 지리멸렬 덕에 독주하고 있는 쪽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묻지마 공약'을 내놓고도 각종 검증 요구에는 응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대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기대는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이번 대선에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공론의 장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과 참여연대가 공동기획을 준비하게 된 것은 이같은 문제의식 때문이다. 9회에 걸쳐 연재될 이 기획이 독자들의 고민과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민주국가의 주권자는 누구인가

10월이 되니 시나브로 더운 기운은 가시고 날씨가 사뭇 쌀쌀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지구온난화라고 해도 계절의 변화는 여전한 것인가? 그러나 위기는 본래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다. 약간의 변화에 우리가 안심하며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는 가운데 위기는 계속 진행된다. 그 결과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위기는 마침내 파국으로 폭발하고 만다.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파국을 맞고 말 것인가? 우리는 지금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2007년의 대통령 선거는 '민주화 20년'과 'IMF 10년'을 결산하고 '진정한 선진화'를 향해 나아가는 정치적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87년 체제'와 'IMF 체제'를 모두 넘어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 서게 되었다. 노무현 정권과 참여정부,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여러 '실정'으로 말미암아 지난 20년 동안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던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불신과 우려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렇다면 '반민주반개혁세력'이 앞으로 한국 정치를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분명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와 개혁은 그 자체로 '선'에 속하는 개념이므로 사실 스스로 민주와 개혁을 부정하는 정치세력은 없다. 심지어 전두환 일당조차도 민주와 개혁을 전면에 내걸고 폭력과 부패를 일삼았다. 그러므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민주와 개혁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 과연 민주와 개혁에 부합하는가의 여부이다. 이런 점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진정한 선진화'의 과제를 충실히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대통령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연합뉴스

이제 대통령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두 달여의 시간이 지나면 이 나라를 5년 동안 이끌고 갈 새로운 대표자가 뽑힐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결코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자일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가장 커다란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는 대표자이다. 대통령은 군을 비롯해서 경찰, 국가정보원 등의 권력기구를 통솔하며, 국무위원을 비롯해서 수천 개가 넘는 각종 직위에 대한 인사권을 직접 행사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이 나라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이 나라의 발전에 대해 올바른 의식을 갖는 것이다. 시민들은 올바른 사람을 대표자로 뽑을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뽑힌 대표자가 올바른 정책을 추구하도록 만들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 시민의 권리와 의무는 투표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민주국가의 주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시민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시민답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문제를 바로잡고 '좋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늘 좋은 결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노력을 포기한다면, 이 세상은 강시와 승냥이의 놀이터가 되고 말 것이다. 시민의 관심과 참여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을 위한 궁극적 동력이다.

독재적 산업화 대 민주적 산업화, 수구적 선진화 대 민주적 선진화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들 중에서 고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다. 고성장은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고, 민주화는 고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지형에서는 여전히 수구보수세력 대 민주개혁세력의 대립이 두드러진다. 독재세력을 모태로 하는 수구보수세력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취약한 민주화'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취약한 민주화'를 넘어선 민주화의 심화 없이 '진정한 선진화'를 향한 '한국의 희망'은 없다.

수구보수세력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외치고 다닌다. 지난 10년이 분명히 수구보수세력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에게는 'IMF 사태'를 딛고 경제의 성장을 이룩한 '회생과 성장의 10년'이었다. 사실 수구보수세력의 가장 큰 문제는 무능과 부패이다. 그런데 제도정치 민주개혁세력의 실정을 계기로 이러한 수구보수세력이 대거 돌아오고 있다. 그들은 지난 10년을 '굶주린 10년'으로 보내야 했다. 10년 만에 돌아온 수구보수세력은 또 얼마나 거대한 무능과 부패의 문제를 일으킬 것인가?

수구보수세력은 민주개혁세력을 공공연히 '좌파개혁세력'이라고 부른다. 잘 알다시피 이 '색깔론' 용어는 민주개혁세력에게 '좌파'라는 낙인을 찍어서 국민들이 민주개혁세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민주개혁세력은 사실 좌파와 우파를 망라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좌파를 대표한다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중도에서 시작해서 우파의 성격을 강화하는 쪽으로 옮아갔다. 양극화와 FTA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관된 강화가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수구보수세력의 색깔론은 그 후진성을 새삼스레 입증해 줄뿐이다.

수구보수세력은 개혁이 아니라 경제가 핵심이라는 주장을 요란하게 외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수구보수세력의 주장 중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일 것이다. '뭘 잘 먹여야지'라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주장은 마치 민주개혁세력이 경제를 무시하고 쇠락시킨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용론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수구보수세력이 IMF 사태를 초래한 주범이라면, 민주개혁세력은 그것을 극복한 주체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서 마침내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수구보수세력은 산업화세력이 이룩한 것을 민주화세력이 망쳤고, 이제 선진화세력인 자신들이 다시 이 나라를 일으키겠다고 주장한다. 너무나 널리 퍼져 있는 이 주장은 마치 민주화세력이 경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악성 데마고그에 해당한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실제로 대립했던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아니라 '독재적 산업화'와 '민주적 산업화'였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민주화와 선진화의 대립이 아니라 '민주개혁적 선진화'와 '수구보수적 선진화'이다.

부패무능세력인 수구보수세력이 추구하는 선진화는 '부패무능의 선진화'일 수밖에 없다. 제도정치 민주개혁세력의 실정 때문에 민주개혁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민주와 개혁은 여전히 중요하다. 무작정 경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떤 경제인가'이다. 후진적 토건경제를 선진적 지식경제로 바꾸고, 비인간적 양극화 경제를 인간적 복지경제로 바꿔야 한다. 사실 제도정치 민주개혁세력의 잘못은 민주와 개혁을 제대로 추구하지 않은 데 있다. 그런데 이제 수구보수세력은 아예 대놓고 민주와 개혁을 부정하면서 초강력 반생태 양극화 경제정책을 펼치겠다고 한다.
▲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은 진정 '잃어버린 10년'인가. ⓒ연합뉴스

여기서 몇 가지 지표를 통해 우리의 현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는 9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 면적이 세계 109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나라가 실로 엄청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고 있고, 경제의 고도화와 지구화에 따라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질'은 세계 40위 수준밖에 되지 않고, '삶의 질'의 기반인 환경 질은 세계 130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문제는 경제성장 자체에 있지 않다. 여러 지표들이 잘 보여주듯이 우리의 문제는 무엇보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이미 세계 최악 수준인 환경 질에서 찾아야 한다. 반사회적이고 반생태적인 후진적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선진적 경제로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선진화'의 핵심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무조건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특권층과 부유층이 다수의 중산층, 서민층, 빈곤층을 지배하는 탐욕과 파괴의 경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무조건 성장론'으로 진정한 선진화가 가능할까

어느덧 '건국 60년'을 앞두게 되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린 결과로 한국은 그야말로 '선진국' 문턱에 이르게 되었다. 민주화운동은 그 궁극적 동력이었다. 독재정권의 무시무시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진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의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도 오래 전에 무능과 부패로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의 면에서도 이 나라의 근대화를 이끈 진정한 동력이다.

민주화운동은 무엇보다 독재정권에 맞서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민주화는 무엇보다 '반독재 민주화'로 이해되게 되었다. 그러나 '반독재 민주화'로 나타난 정권의 민주화는 사실 민주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사회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정권의 민주화는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하나의 부분이자 수단일 뿐이다. 민주화는 언제나 '민주화의 민주화'라는 영속적 과정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정권의 민주화를 넘어서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민주화, 생태적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민주화는 '좋은 사회'를 향한 방법이자 과정이다.

거대한 토건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무조건 성장론'으로는 결코 '좋은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수구보수세력이 주장하는 '무조건 성장론'은 사실 70년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70년대는 노동자가 끝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연이 무한정 파괴되는 고성장의 시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런 후진적 고성장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은 노동자를 존중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진정한 선진화'의 길이다. 진정으로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진정으로 선진국과 같아지려고 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선진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역사적 모범은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서구 복지사회이다. 그것은 구성원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충실히 보장해서 발전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일본의 생활경제학자 데루오카 이츠코 교수는 일본과 서독을 비교하는 <풍요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일본은 돈이 많기는 해도 결코 풍요로운 사회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구성원의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한 '돈 많은 못 사는 나라'이다.

한국은 돈이 없어서 고통 받는 나라가 아니라 너무 많은 돈을 잘못 쓰고 있어서 고통 받는 나라이다. '진정한 선진화'를 위해 우리는 '6대 문제'의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 토건국가, 학벌사회, 투기사회, 부패사회, 재벌체제, 전쟁체제가 그것이다. 특히 매년 수십조의 혈세를 탕진해서 불필요한 개발사업을 벌이는 토건국가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소중한 국토를 마구잡이로 파괴하며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개혁을 가로막는다. 2006년 5월 현재, '대규모 공공투자사업'만 모두 766개이고, 그 사업비는 무려 223조 원에 이른다.

힘센 젊은이들이 가난한 세입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돈을 버는 경제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또한 소중한 국토를 마구잡이로 파괴해서 성장을 이루는 경제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러나 우리는 이렇듯 비인간적인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적인 경제를 이룩해야 한다. 복지사회의 전망은 인간적인 경제를 통해 비로소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한국의 희망'은 여기에 있다.

또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복지사회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생태위기 시대에 전통적 복지사회는 '생태적 복지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살아 있는 자연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후진적 파괴경제로 '일류국가'를 이룩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거기에는 어떤 희망도 없다. 사람을 존중하고 자연을 돌보는 선진적 공생경제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후진적 정부조직과 재정구조를 크게 개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추상적 사변이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 정책과 실천이다.

정부조직과 재정구조의 개혁은 '생태적 복지사회'라는 '한국의 희망'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이다.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서 불필요한 개발사업을 벌이는 중앙부서와 공공기관을 개혁하지 않고 '생태적 복지사회'를 이룩할 수는 없다. 정부와 재정의 개혁은 산업과 고용의 개혁을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화 60년'의 역사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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