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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법 "한미FTA에 절박한 노동자·농민 탓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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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법 "한미FTA에 절박한 노동자·농민 탓할 일 아니다"

판결문에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 마련 안 돼" 인정

'한미FTA 전문 법률가'인 송기호 변호사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한미FTA 반대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증언을 청취했던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통해 송 변호사의 증언을 다수 인용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관련 기사: "저도 돈 되는 일을 하던 변호사였습니다")

대전고법 "한미FTA 체결과정, 폭넓은 의견 반영 안 돼"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폭력행위가 법률이 정한 한도를 벗어났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에 접근해 본다"며 "한미FTA의 체결과정에서 여러 국민 계층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목소리를 보다 폭넓게 수렴하고 반영하는 절차적 효과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미FTA 체결로 인한 농업 손실액을 언급하며 "피고인들이 한미FTA 체결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노동자, 농민의 절박한 의사를 대변하고자 개인적 희생을 아끼지 않고 노력해 온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소수자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지 못한 우리 사회의 역량 크기 때문에 길거리 투쟁으로 내몰린 피고인들만을 탓하기에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에 경청할 이유가 있다"며 "보다 선진화되고 충실한 갈등해결절차가 마련되었다면 애당초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저출산.고령화로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를 상회하는 우리나라가 이런 방향의 개방화 추세에 한시라도 빨리 적극 동참하지 않을 경우 국가 간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는 주장 또한 쉽게 물리치기 어렵다"며 "이 점을 감안하여 피고인들을 포함한 FTA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차선책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음을 첨언하고자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충남도청 앞에서 한미FTA저지 궐기대회를 벌이던 중 향나무를 태우는 등 폭력시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6명의 피고인 중 항소심에서 4명이 단순가담자임이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피고인들이 다른 방도를 통한 비판과 설득의 여지를 성급히 포기한 채 쟁취하거나 관철시키고자 하는 목적에 집착한 나머지 절차적 정의를 외면해 버리고 만 것은 어떤 측면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폭력 시위에 대한 엄단 의지를 강조했다.(☞관련 기사: 대전고법, 반FTA 시위자 2명에 집행유예 선고)

그러나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정부가 노동자나 농민 등 한미FTA의 이해 관계자들의 폭넓은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았음을 비판한 점과 갈등해결을 위한 장치가 미흡한 점을 지적한 점을 높이 사야 한다는 평가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번 판결문은 한미FTA의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지적한 최초의 판결문이다"며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판사(재판부) 개인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각각의 판결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에서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더욱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판결문 중 한미FTA 체결과정의 의견 수렴 절차에 대해 지적한 부분이다.
(전략)
한편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에 접근해 본다. 한미 FTA의 체결과정에서 여러 국민 계층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목소리를 보다 폭넓게 수렴하고 반영하는 절차가 효과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FTA의 체결로 인한 농업분야 피해 예상규모에 대하여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조1552억 원에서 2조 2,830억 원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9,0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고인들이 한미 FTA의 체결로 인하여 사회적.경제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노동자.농민의 절박한 의사를 대변하고자 개인적 희생을 아끼지 않고 노력해 온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한미 FTA의 체결이 국가주권 훼손 등의 점에서 국가 전체로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그들의 입장을 국민 일반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시위에 이른 것 역시 정당하다. 비록 소수자이기는 하나 다수의 대세론에 밀려 일부 소수파의 특별희생이 초래되는 상황에 처하여 소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운동 역시 소중하게 우리 사회는 감싸 안아야 한다.

그 때문에 피고인들이 이건 시위에 이른 동기나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그들의 입장이나 의견 또한 경청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일이다. 이러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지 못한 우리 사회의 역량크기 때문에 길거리 투쟁으로 내몰린 피고인들만을 탓하기에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에 경청할 이유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 동안 꾸준하고 괄목할 만한 민주화를 거치면서 근자에 이르러 사회 각 계층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그들 사이의 대립과 반목이 불거져 나와 특히 이 사건을 위시한 중요한 국가 정책적 결단의 대목대목마다 반복하여 갈등과 반목이 빚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효과적이고 충실한 갈등해결절차의 마련이 시급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미비 된 갈등해결절차가 이 사건 피고인들로 하여금 노동자.농민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면서 거리로 나서게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점에서 보다 선진화되고 충실한 갈등해결절차가 마련되었다면 애당초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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