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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탓',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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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조탓', 이제 그만하자"

[일과 희망·22] 노사관계, 사용자가 먼저 변해야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갈등적, 불균형적 노사관계의 책임은 언제나 노동조합에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노조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쯤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많은 노사관계 전문가들조차 민주노총 산하의 일부 노동조합이 조용해지기만 하면, 우리의 노사관계 문제는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이 글에서는 한국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와 사용자단체의 위상, 전략, 책임성을 따져 보고자 한다.

고용관계에서 1차적인 주체는 사용자이다. 고용관계에서 근로자들의 채용, 보상, 근로조건, 승진, 해고 등을 결정하는 것은 사용자이다. 사용자들이 이와 같이 고용관계에서 갖는 결정권을 인사권이라고 하기도 한다. 인사권이라고 해서 사용자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근로기준법 등 각종 노동법, 취업규칙, 현장의 관행, 단체협약) 등에 기초해서 행사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용자는 큰 방향이나 기준에서 고용관계의 기본규칙과 시스템을 형성하는데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일본식 노사관계 모델'에서 사용자의 '노력'은 왜 안 가져오나?
▲ 고용관계에서 1차적인 주체는 사용자다. 우리 정부와 사용자는 그동안 일본식 노사관계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려해 왔지만 정작 일본 사용자들이 들이는 노력을 배우려고하지는 않았다. ⓒ프레시안

노동조합은 우리 노사관계시스템의 산물이자, 정부와 사용자들의 노사관계 정책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현재 노조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 일부노조 전투적 성향, 단기적 실리주의,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는 노동조합의 문제인 동시에 정부와 사용자들의 정책의 산물이며 노사정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태된 것이기도 하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의 이기주의는 노조운동의 경향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기업별 노사관계의 결과물이다. 노조가 기업별로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1990년대까지도 정부나 사용자측은 기업 외부의 문제에 노조가 참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주장을 펴 왔다. 우리의 기업별 노사관계는 기업 내부에서 파트너십을 형성하기에는 유리한 시스템이지만, 우리 사용자들이 일본과 같이 기업 내부에서 노사파트너십을 구축하여 진정한 노사협력을 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와 사용자측이 노사관계에서는 일본식 노사관계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수입하여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 신뢰와 협력의 일본식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을 우리 현장에 이식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인력조정을 해야 하는 경우 일본에서와 같이 기업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기업경영자가 물러가는 관행은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노사 간의 신뢰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근로자들을 아끼는데 들이는 노력 그리고 인력조정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 하청기업 등에 출향 등 다양한 방법의 사용 등에 대해 우리 사용자들은 배우려는 노력을 그다지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많은 대기업에서 기업별 노사관계는 노조들로 하여금 현장권력을 강화하여 기업 내 노동력 활용의 유연성을 제약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측과 갈등을 벌여 노사갈등의 기업 내부화를 하는데 기여한 측면이 강하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노조들은 실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할 수 있었다.

독자적인 재벌의 움직임 속에 공동전략과 정책은 없었다

우리의 기업별 노사관계가 안고 있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사용자들은 자기 기업이나 자기 그룹 소속 기업의 노사관계 안정화에만 집착했다. 자기 기업 수준을 벗어난 거시적 노사관계의 정책과 전략의 조율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국가가 알아서 해야 할 영역으로 여겨 왔다. 대기업 그룹 마다 무노조주의, 기업별 노사 무분규실현, 노사협력관계 형성, 대립적 노사관계 등으로 기업 노사관계의 정책과 특징이 크게 달라 공동의 노사관계 전략이나 정책을 세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재벌 기업들이 노사관계에서 그룹별 혹은 기업별로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룹 이기주의 혹은 기업 이기주의적 행동이 지배적인 것이 된다. 대기업 사용자들이 공동전략과 정책을 세우고 펴기 위한 단결과 조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사용자들을 대표하여 거시적 노사관계 정책, 전략을 세우도록 되어 있으나 재벌의 소유주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 상태에서 힘을 쓰기 어려운 구조이다. 더구나 재벌 기업의 소유주들이 자기 계열 기업들의 노사문제에 대해 경총이 일정하게 개입하고 조율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대기업 사용자들 내부에서 노사관계가 조율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총이 거시적 노사관계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지고 조율에 필요한 발언과 행동을 하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경총은 소속 회원사들의 단결된 행동을 담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요 정책을 외부적으로 발표하면서 노동계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는 사이에 개별 기업들은 노사관계에서 경총의 방침이나 정책과는 다른 정책이나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7월 주 40시간 노동제였다. 당시 주40시간제 입법화를 둘러싸고 경영계는 정부의 입법안의 일부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부의 주40시간제 법안에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민주노총 금속노사와 현대자동차에서 노사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조정도 없고 기존의 월차휴가일수를 줄이지 않는 주40시간제를 합의하자, 서둘러 주40시간제 입법화에 합의하였다.

당시에 금속사용자와 현대자동차가 단체교섭에서 주 40시간제를 다루면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는데, 실제 교섭과정에서는 금속사용자와 현대자동차 사용자측를 도와주지 않다가 이들 노사가 합의를 하자 이를 비난하는데서 사용자들의 조율능력 부재가 단적으로 드러났다. 결국 상당수 기업에서 주40시간제는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에서 합의한 내용이 선례가 되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조정, 월차휴가일수 축소 없이 주40시간제가 도입되었다.

사용자여, 궂은 일에 손 때 묻혀야 산다
▲ 아직 우리나라의 대다수 대기업의 소유주들은 기업 수준에서도 노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그룹, 산업, 전국 수준에서의 진정한 노사대화는 말할 것도 없다. ⓒ프레시안

한국에서 노사정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요인이 노동계의 비타협성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사용자측 요인도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 대기업의 소유주들이 기업 수준에서도 노사가 대등한 위치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그룹, 산업, 전국 수준에서 진정한 노사대화나 파트너십 형성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1982년 네덜란드가 경제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당시 네덜란드 사용자대표가 바세나르에 있는 자기 별장에 네덜란드 노조대표들을 초청하여 흉금을 떨어놓고 위기극복방안을 논의한 끝에 바세나르협약이라는 역사적 노사정타협을 이룬 것은 시사적이다.

우리의 경우 과거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노사분규 현장을 방문하여 타협을 성사시킨 것 말고는 대기업 소유주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대기업의 소유주나 책임 있는 의사결정자가 노사관계에서 요구되는 '궂은 일에 손 때를 묻히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상당수 기업에서 사용자들은 노사관계에 대한 일관된 전략이나 원칙이 없이 단기주의나 성과주의에 급급하거나 노조 활동에 대한 직간접 개입, 노조와의 물리적 대결에 익숙하여 노사관계에서 필요한 규칙과 신뢰형성 작업에 소홀히 해 온 면이 있다.

사용자가 먼저 바뀌면 노사관계 변화 가능성도 높아진다

외부 경제환경의 변화, 국내외적 분업구조의 재편, 양극화를 포함한 노동시장의 구조변화로 우리 노사관계에서는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이 동시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또한 기존의 기업별 노사관계가 기업 내부의 노사관계 안정화에 그다지 성공적이지도 못했고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시장의 양극화, 유연성 부족 등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잉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2000년대 들어 기존 기업별 노조의 산별노조화와 산별교섭 시도로 기존의 기업별 노사관계틀이 변화할 수 있는 과도기를 맞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대기업 사용자들은 기업별 노사관계시스템의 장단점과 새로운 산별노사관계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와 위험을 냉정하게 짚어 보고 대응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대기업 사용자들은 기업별 노사관계에 대한 기존의 선호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노사관계의 문제는 비타협적 투쟁과 실리주의를 추구해 온 노동조합만큼 사용자들의 노조에 대한 완강한 태도, 이기주의, 일관성과 원칙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본주의 노사관계에서 1차적 행위주체는 사용자측이다. 노조는 주로 사용자측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조직이다. 사용자와 사용자 조직은 앞에서 내외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대기업 사용자들이 기업별, 그룹별 이기주의의 틀을 벗어나 경총 참여, 권한 부여, 단결을 통한 사용자 조직의 강화와 사용자들 내부의 이해 조율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기업 사용자와 사용자 조직이 노조에 대한 인식과 전략을 일정하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사용자들의 노조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노조의 전투성을 강화시키는 동전의 다른 면이 된다. 기업 수준에서는 물론 산업, 전국 수준에서 대기업 사용자들이 중심이 된 사용자단체가 사회적 대화에 적극 나서서 노조를 새로운 기업환경에서 요구되는 파트너로 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힘이 약한 노조도 사용자가 하려는 일에 대해 소극적인 비토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노조의 소극적 비토권 행사만으로도 사용자는 하려는 일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노조가 사용자단체와 신뢰를 쌓고 사회적 대화에 응하기 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사관계가 개선되어 노사가 일정한 신뢰 위에 규칙 속에서 노사관계를 영위할 수 있을 때, 노사관계가 줄 수 있는 기업 내외부의 유연성은 매우 클 수 있다.

셋째, 기업 수준에서 사용자들이 할 수 없으나 국가가 수행하기 어려운 거시적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이슈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의사결정을 하며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사용자 조직은 비정규직 이슈, 산별교섭, 각종 노동관련법의 개정, 임금인상, 각종 노사관계 제도의 개선과 운용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중요한 타협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고 위기를 돌파할 계기를 주고,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동안 사용자들은 우리 노사관계의 잦은 노사분규와 불신가 모두 노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 노조를 탓하고 원망해 왔으며 정부로 하여금 법과 원칙을 통해 현장의 질서를 잡도록 요구해 왔다. 사용자측이 우리 노사관계 문제의 발생책임을 노조에 두는 한 그리고 사용자나 국가가 노조를 변화시킬 수 없는 한 우리 노사관계를 개혁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 노사관계 문제 발생의 일정한 책임을 사용자들 스스로에게서 찾을 경우 사용자나 사용자 조직이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노사관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노사관계의 틀, 주체들의 인식과 전략,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 사용자와 사용자 단체가 변화된 환경 속에서 중장기적인 전략에 기초하여 노사가 함께 공존하고 중국과 차별화된 생산과 고용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공은 사용자 쪽에도 있었다. 다만 사용자들이 공이 언제나 상대방 진영에 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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