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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미, 아니 의미없는 대선을 어찌하랴"

[기고] '경제대통령 대망론'의 함정

이번 대통령 선거는 참 재미가 없다. 그 이유는,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든 세상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대선은 우리 사회의 향방에 막중한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계기가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지난 몇 차례 대선들과는 달리 사회적인 흥분이나 감동, 설렘이나 긴장감 같은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설사 나중에 그 실제 내용과 결과가 애초 기대와는 달리 엉망진창이 되었을망정, 이를테면 지난 1997년 대선에서는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확고한 시대적 대의가 있었고, 2002년 대선에서는 '노사모' 열풍이 잘 보여 주었던바 낡은 정치 청산, 세대교체, 기득권 타파 등과 같은 이슈들을 둘러싸고 한바탕 신바람과 열정의 파도가 출렁거렸었다. 이런 과거의 경험에 견준다면 이번 대선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따분하고 무미건조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대선에서 '먹고사는 문제'로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김대중 '국민의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지배 사회가 전면화했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이번 대선을 둘러싼 지배적인 담론과 여론과 정책 공약과 대중의 관심사 전반이 오로지 경제 쪽으로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껍데기'가 아닌 '고갱이'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제기, 오늘의 세상이 직면하고 근원적인 위기에 대한 성찰,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과 비전을 둘러싼 불꽃 튀는 논쟁, 국민들의 관심과 활기와 행동을 촉발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쟁점이나 역동적인 이슈 등은 태부족인 채, 그저 '먹고사는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가의 문제로 대선의 중심적인 흐름이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고충을 듣는 이명박 후보. 노무현 정부들어 더욱 심화된 양극화는 '경제대통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만들었고, 그 정치적 혜택을 이명박 후보가 독식하고 있다. ⓒ뉴시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현실의 배경에는 ― 보수 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냉소하는 데서도 잘 드러나듯이 ―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잇따라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사회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양산, 실업난 가속화, 중소기업·자영업자·농촌의 몰락 등으로 나타난 민생 경제과 민중 삶의 파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 대통령 대망론'이 대세로 굳어졌고, 그 연장선에서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샐러리맨의 신화', '현대건설의 성공한 CEO이자 경제 전문가',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청계천 복원을 이루어낸 강력한 리더십의 지도자' 따위로 선전되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압도적인 차이로 지지율 1위를 독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뭔가를 해내지 않겠느냐, 그래서 그 열매가 우리 서민들에게도 돌아오지 않겠느냐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진보적 가치와 대안이 대중적 흡인력이나 설득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최근의 조건에서, 이처럼 대체로 민주화 편에 섰던 개혁 세력들이 정권을 담당하고 운용했음에도 정작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감내하기 힘든 삶의 고통이었기에 그 반대급부로 보수 세력에게 훨씬 유리한 정치지형이 만들어졌고, 그 정치적 혜택을 이명박이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대선을 앞두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대한민국처럼 '역동적(?)'인 곳이 드물고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러니 앞으로 대선 때까지 남아 있는 기간 동안 판과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언제 어디서 무슨 돌발변수가 터져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어찌됐건 지금의 조건과 상황에서 볼 때, 이명박이 다음 대통령 자리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명박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 대부분의 문제들, 가령 양극화 문제, 복지 문제, 실업난, 노사 갈등, 사회 통합, 심지어는 남북 관계의 해법마저도 경제 성장에서 찾고자 하는 성장 지상주의자가 아닌가? 온 국토를 치명적이고도 전면적으로 유린할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제일의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를 끊임없는 막개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 파괴적인 토건주의와 개발 이데올로기의 신봉자가 아닌가? 가난한 자와 약자와 소수자를 따스하게 감싸 안고 자연과 생명을 겸허하게 존중하는 모습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가?

'능력'만 있으면 '도덕성'은 문제 없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처럼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운위되고 강력한 추진력과 전문성을 갖춘 경제대통령을 희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정서가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예컨대 재산 형성 과정 등과 관련해 이명박에게 쏟아지고 있는 숱한 의혹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일만 야무지게 잘하면 됐지 그게 그리 큰 문제인가, 세상 살면서 그 정도 흠결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개혁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들이 밥 먹여 주나?' 등과 같은 냉소적이고 퇴행적인 언설들이 횡행하게 된 것도 이런 대중의 정서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이 오늘날 이 땅의 민중과 서민들이 처한 곤고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경제 성장, 물질의 풍요, 출세와 성공의 외길만을 직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뒤틀린 욕망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는 이러한 집단적 욕망에는 기본적으로 도덕성과 윤리의식, 공동체에 대한 배려, 자연과 생명과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것들이 결락되어 있거나 희박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가시적·전시적 업적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열광도 짚어볼 대목이다.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람들이 이명박을 지지하게 된 결정적인 연유 중 하나가 청계천 복원 사업에서 그가 보여주었다고 운위되는 과감한 추진력, 돌파력과 결단력 따위들이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허나 지금의 청계천은 진정한 생태·역사·문화의 복원이 아니라, 허구적인 판타지와 조작된 이미지로 덧칠된, 인공의 에너지로 한강물을 끌어와 흘러내려 보내는 도심 조경 공원에 가까운 것이다.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무시한 채 진정한 생태·문화의 논리와는 어긋나는 방식과 내용으로 만들어진 청계천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열광하고, 나아가 그런 식의 터무니없는 청계천 복원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사람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의 근원적인 소중함을 무시하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거기에는 비판적인 사유와 입체적인 성찰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삶이, 생명이, 자연이, 또한 문화가, 역사가, 정치가 꼭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로만 빚어지고 이루어지는가? 가시적인 성과는 그것대로 정확하게 평가하되, 그보다는 그것의 이면과 배경과 맥락,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 전체를 면밀하게 두루 통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나는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일하는 법을 안다. 국가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 최고 경영자가 되고자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이명박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일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생각하는 사람부터 되라고, 일하는 법을 알기 이전에 성찰과 사유의 능력부터 갖추라고.

범여권 후보는 이명박 후보와 얼마나 다른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볼 때 이명박뿐만 아니라 다른 대선 후보나 정치세력들도 다들 경제 중심주의 사고방식에 포박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 대표하는 보수 세력과 이른바 '범여권'으로 통칭되는 개혁(자유주의) 세력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볼 수 있는가? 이들 개혁 세력과 보수 세력이 소위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이라는 근원적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얼토당토않게도 '좌파 정권'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노무현 정권만 보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장 고약한 결정판이자 압축판이라고 할 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숱한 반대와 우려 속에서도 끝내 강행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지금 시점에서 '범여권' 개혁 세력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 중에 한미FTA를 제대로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는가.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시작됐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사진은 모바일 투표를 격려하기 위한 자원봉사단 '엄지클럽' 출범식 장면. ⓒ뉴시스

냉정하게 볼 때 이러한 현실은, 지난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그 민주화를 추동하고 주도해온 주체들마저도―특히 그 중에서도 권력과 정치권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지배적인 시대 흐름에 투항·굴복해온 과정이었고, 심지어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와 집행자로 변신해온 과정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참여정부 들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이른바 '개발 특별법'들은 또 어떤가. 온 국토와 전국 각지의 지역 공동체를 막개발의 난장판으로 몰아넣을 이 망국적인 광풍에서, 우리는 지금의 집권 세력과 정치 주도 세력이 외눈박이 성장과 개발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포로라는 사실을 여실히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니 보수 세력(대표적으로 대다수의 지방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든 개혁 세력(대표적으로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참여정부와 여권)이든 경제 지상주의와 개발주의를 신주단지처럼 떠받든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한통속이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물론 분배나 복지, 일자리 문제 등을 고민하는 수준과 진정성의 정도,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차별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장 중심 경제 제일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실한 신봉자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무엇보다 이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 산업문명의 파국적 운명에 대한 깊은 인식과 관심이 결여돼 있다는 점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석유 고갈 등으로 상징되는 오늘의 문명적 위기는 단순히 자연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전면적인 삶 자체의 위기, 생존의 위기, 지구 존속의 위기,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총체적 위기로 치닫고 있다.

헌데 이들은 이런 엄연한 현실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어떤 대안을 내놓고 있는가? 가령, 이들이 '성장의 한계'를 수용할 수 있을까? 이미 그 끝이 보이고 있는 석유 문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구상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경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산업주의와 생산력주의, 과학기술주의 따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금의 지배적 구조와 질서와 삶의 방식이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진심으로 절박하게 인정할 수 있을까?

이렇듯 지금 대권에 도전하는 유력 주자들과 정치세력들은 '초록이 동색'이다. 또한 현대 산업문명이 안고 있는 문제와 모순, 그리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그 모든 생태적·사회적·인간적 위기의 뿌리에 대한 투철한 성찰과 실천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급소'를 강타하는 '짜릿함'이 없는 대선

상황이 이러하니 이번 대통령 선거가 참 밋밋하고 건조하게 전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는, 정치공학적인 차원이나 협애한 선거정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흥미진진한 구도와 예측불허의 극적 드라마를 구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대 흐름의 근본적인 물줄기를 바꾸거나 우리 사회의 핵심 '급소'를 강타하는 '짜릿한(?)' 흥분은 아무래도 경험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이야 얼마든지 참고 넘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 중차대한 대선 국면에서 우리 사회 및 우리 시대의 현주소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새롭고도 다른 미래에 대한 모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온통 천지사방에서 소낙비로 쏟아지는 경제 우선 담론의 홍수에 휩쓸려 환경·생명·생태의 '녹색 깃발'을 펄럭일 자리가 너무 비좁다는 것 또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언필칭 6월 항쟁 20주년, 민주화 20년, 민주화가 열린 '87년 체제' 20년이 되는 해이고, 동시에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적인 구조화와 고착화를 불러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이른바 '97년 체제')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 만큼 이번 대선은 한 시기를 매듭지으면서 새로운 전환의 활력을 충전하고 창조적인 미래 기획을 발진시켜야 할 전기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지금까지 논했듯이, 반민주적이고 반인간적이고 반생태적이고 반생명적이고 반평화적인 지금 시대의 주류 지배 질서와 이데올로기가 워낙 두텁고 완강하게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탓이다. 결국 변혁과 전환을 향한 끝없는 과정으로서의 장기전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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