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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노트북의 이메일 맘대로 열어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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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정아 노트북의 이메일 맘대로 열어봐도 될까?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다시 떠올리다

지난주, 대부분의 매체가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신정아 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고받은 메일에 성(性)적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이 담겨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가 대중의 관음증을 자극한 것은 당연했다.

이 과정에서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은 사안을 언론에 흘리는 검찰,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적은 언론의 행태가 과연 옳은 일인지를 따지는 질문은 설 자리가 없었다. 마땅히 던졌어야 할 이런 질문을 건너뛴 채, 언론은 좀 더 자극적인 기삿거리를 찾는데만 골몰했다. 그 결과가 <문화일보>의 신정아 씨 누드 사진 게재 사건이다.

문화계 인사들의 전언을 모아보면, <문화일보>에 실린 누드 사진이 합성된 것일 가능성도 무시하기 힘들다. 또 실제 신 씨의 누드 사진이 맞다고 해도, 누드 사진을 찍었다는 것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명백히 별개다. 누드 모델과 사진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그리고 신 씨와 변 전 실장이 성관계를 가졌다해도, 그것은 사사로운 일일 뿐이다. 그들 역시 대중의 관음증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런 권리는 명백히 '인권'의 영역에 속한다. <문화일보>는 설령 범죄자라해도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명백히 짓밟았다.

언론이 관심을 집중해야 할 대목은 신 씨와 변 전 실장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둘 사이에 일정 수준 이상의 친분이 있다는 게 밝혀진 이상, 이런 친분을 이용해 신 씨가 부당한 이익을 취했는지만 밝혀내면 된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대해 짚어야 했다. 굳이 이번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의 오만과 왜곡된 자기 확신이 위험 수위에 달했음을 드러낸 징후는 흔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 핵심에 있는 이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우리라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엉뚱한 문제에 더 관심을 쏟았다. 그 결과로 불거진 극단적인 반(反)인권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 전체의 반성과 아울러,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 신 씨와 변 전 실장이 주고받은 이메일로 돌아가자. 그리고 일주일 전, 언론이 건너뛰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자.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의 사생활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행위를 용납해야 하는가? 또 수사 목적을 위해 개인의 이메일을 열람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 역시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이번 사건을 보며, 장 씨가 떠올린 단어는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었다. 인터넷의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개인 사이의 통신을 함부로 감청할 수 없도록 규제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역시 맹점을 드러냈다. 유·무선전화에 대한 감청 규제는 이뤄지고 있으나, 수사기관·정보기관 등의 이메일 및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열람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정아 씨의 사생활이 담긴 이메일을 아무런 제재 없이 수사기관이 열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맹점 탓이다.

그런데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는 커녕, 오히려 수사기관의 통신 감청을 더 쉽게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정보원이 오래 전부터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국정원은 산업 기밀 유출 방지 등의 이유를 내세운다.

하지만 '무차별 감청'이 허용된 국정원과 수사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섬세한 인권 감수성까지 겸비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통신 감청 허용이 과연 산업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인지도 불분명하다. 다음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갖고 있는 문제를 오래 전부터 지적해 왔던 장여경 씨가 신정아 씨 사건을 지켜보고 쓴 글이다. <편집자>

신정아 씨의 누드 사진은 정신이 번쩍 나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신정아 사건에 대해 어떤 추악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권력형 비리는 그 자체로 고약한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이 사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관심은 그 이상이다. 가부장적 언론이 젊은 미혼 여성의 추문을 둘러싸고 조장한 것. 그것은 관음증이었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은 흉악한 호기심 말이다.

수사 중인 사안, 언론에 흘려 관음증 부추긴 검찰

그런데 이번에 대한민국 수사기관은 온 사회의 관음증을 부추기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애초 신정아 사건은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은 유력인사의 학력 위조 사건이라는 개인적인 스캔들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권력형 비리를 넘어 권력형 성 추문으로 번지게 된 것은 이메일 때문이다.
▲ 지난 11일자 <중앙일보> 인터넷판 머릿기사 부분. 변양균 전 실장과 신정아 씨가 사사로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에 대해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고려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중앙일보>만이 아니었다. 다른 매체들의 보도행태도 이와 비슷했다. ⓒ중앙일보

지난 10일 신정아 씨와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과의 사이에 오고간 '연서'가 발견되었다. 연서가 발견된 위치는 검찰이 압수한 신정아씨의 노트북 내부다.

언론이 일제히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발언의 출처는 검찰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변 실장이 신 씨와 100통 가까운 수십통의 이 메일을 주고받았으며 거의 대부분이 연정(戀情)의 내용"이고 "그 중에는 노골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발표는 서울서부지검 구본민 차장검사가 언론과의 브리핑에서 '가까운 사이'라는 말로 공식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사생활 담긴 이메일, 함부로 열어봐도 되나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검찰이 수사중인 내용에 대하여 언론의 추측성 보도를 부추기는 것이 정당했을까?

무엇보다, 수사기관이라고 하여 압수된 노트북의 이메일을 마음대로 열어보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수사상 필요하다면 법적인 절차에 따라 압수하거나 수색할 수 있다. 아마도 이번에 이루어진 노트북의 압수 역시 적법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메일이 노트북 압수와 같은 수준에서 다루어져도 되는 것일까?

노트북이 아니라 노트북에 담긴 전자적 데이터가 유체물로서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는지는 법률적 논란의 대상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메일'이 단순 데이터가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에 관계된 통신 내용이라는 점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의 맹점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는 보호 못해"

대한민국 헌법 제18조에서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수사상 필요하다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1993년 '통신비밀보호법'이 특별히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통신의 내용을 감청할 때는 일반 압수수색 영장보다 엄격한 법원 허가가 필요하다. 통신제한조치에 대한 법원의 허가서, 소위 '감청 영장'에는 그 종류·목적·대상·범위·기간 및 집행장소와 방법을 특정하여 기재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 중인 내용, 즉 수신이 완료되지 않은 통신의 경우에만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맹점을 가지고 있다. 수신이 완료된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속속들이 추적한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법률적 미비점을 이용하여 압수한 노트북에서 이메일을 열람하는 일을 관행처럼 해 왔다. 압수한 휴대폰에서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열람하는 것도 물론이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 디지털 통신매체와 과거의 통신 수단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일정하게 기인한다.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유선전화와 가장 다른 점은 '저장성'이다. 보고 듣는 현장을 벗어나면 사라지고 마는 '휘발성'을 가지고 있던 대화가, 이제는 대화 당시 주고 받았던 내용 그대로 저장된다. 저장된 정보는 인위적으로 삭제하지 않으면 계속 보관된다. (검찰의 이메일 복구 기술에서 볼 수 있다시피 삭제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보호받을 수 있는 통신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은 법률적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통신 내용이 보관되는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과거보다 더욱 철저한 감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지나간 과거의 행적까지 소급해서 철두철미하게 추적당할 수 있다면 어느 누가 두렵지 않겠는가?

'무제한 감청 시대' 여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수사기관의 감청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14일 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 상반기에 전기통신사업자가 국정원,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에 수사 또는 국가안보 목적으로 협조한 감청 문서건수는 2006년 상반기 528건에 비해 18% 증가한 623건이다. 특히 전자우편 등 인터넷 상의 감청은 320건으로 전년 상반기 203건보다 57.6% 증가하였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법사위 대안)이 통과되면 감청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에서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휴대전화, 인터넷 대화 뿐 아니라 앞으로 도입될 영상 전화, 인터넷 전화 등 일체의 통신 수단에 대한 감청설비를 통신사업자가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관련 기사 : 국정원은 '무제한 감청'의 길 열려 한다)

통신사업자가 통신 사업을 하기 위해 반드시 수사기관의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감청에 필요한 설비를 통신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다는 말은 이용자에 대한 상시적 감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안그래도 통신사 내외부에서 잦은 개인정보 유출로 사생활 침해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당신도 '제2의 신정아'가 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법안에서는 모든 통신사업자가 모든 통신 이용자의 통신사실확인자료, 즉 통신이용기록을 최대 1년간 보관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인터넷에서는 언제, 어디서 접속했고, 어떤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았는지에 대한 로그기록이 보관된다. 순전히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해서이다. (☞관련 기사 : "통화 엿듣고 인터넷 엿보고…우리가 범죄자냐", "그 많던 검은리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메일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이번 개정으로 아예 통신비밀보관법으로 변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제2의 신정아가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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