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선작 50가자 필패(先作 五十家者 必敗)'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쫒아가는 것보다 쫒기는 쪽이 더 급하기 마련이고 실수가 나와도 더 크게 나오는 법이니, '이명박 대세론'은 곧'이명박 위기론'이기도 할 터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회창 대세론'이 두 번에 걸쳐 이회창의 패배로 귀결된 바로 얼마 전의 사례가 있지 않은가.
위기가 그냥 오는 법은 없다. 눈 열린 자 보고 귀 뚫린 자 들을 수 있도록 어떤 형태로든 징후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이명박 캠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명박 대세론'이 '이명박 위기론'으로 전화될 수 있는 '위기의 징후들'을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이명박의 '기능주의'에서 비롯된 위기의 징후들
모든 비극이 성격적 특성에서 비롯되듯이 위기, 특히 정치적 위기는 리더의 성격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명박 위기론'의 징후 역시 '실적 중심주의, 기능중심주의'라는 이명박 후보의 성격적 특성에서 시작된다.
'이명박 위기론'의 징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박근혜 전 대표와의 어정쩡한 기능적 관계 설정에 따른 분열 요인 잠복
둘째, 박근혜 측 인사들에 대한 기능적 관리로 인한 화학적 결합 실패
셋째, 대선실적과 공천 연계원칙에 따른 당과 선거캠프와의 이원화
넷째, 그로 인해 당 중심과 따로 가는 듯한 선거캠프의 분위기
다섯째, 현안 중심의 일정 배치와 행보로 인한 거대 담론과 대국민 메시지의 실종
여섯째, 한반도 대운하 등의 문제제기에 대한 기능적, 기술적 대응에서 드러난 소통 부재
일곱째, 그때그때 기능적 필요에 따른 후보의 언행이 결과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정치적 혼선
이 일곱 가지 징후는 원인과 결과처럼 물고 물리면서 일종의 경향성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실적 중심, 기능 중심'이라는 이명박 리더십의 성격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명박이 바뀌기 전에는 좀체 고쳐지기 어렵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이명박 후보에게서는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감정적 이격 현상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인간적 포용력도, 박근혜 측 인사들을 화학적으로 결합.융합시킬 정치력도, 지지자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고 당과 캠프와 지지자들을 하나로 묶어낼 통합력도, 차이를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시켜 낼 관용과 소통의 리더십도, 국가의 중장기 미래 비전과 발전 방향에 대한 거대 담론도, 나름의 국정 철학에 근거한 일관성 있고 체계화된 대국민 메시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 되겠다.
'이명박의 위기'는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에게 이중의 의미에서 위기다. 한나라당이야 천금 같은 정권교체의 기회가 날아가는 것이니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다. 문제는 보수세력인데, 이들 또한 정권교체를 열망하기는 하지만, '이명박의 위기'가 이들에게는 정권교체보다 더욱 절박한 세력교체가 무산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충격이 한나라당보다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이른바 87년체제는 보수세력에게는 '모래시계와 386'으로 표상되는 '젊고 급진적인 좌파세력'에게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넘겨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87년체제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무능한 급진 좌파세력의 정권'으로 몰락한 지금이야말로 역세력교체를 단행할 역사적 전환기인 셈이다. 2~3년 전부터 낡고 부패한 수구세력 대신에 도덕적으로 건강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줄 아는 '밝고 따뜻한 보수'를 표방하고 범 보수 진영이 재결집해 온 것도 2007 대선의 역사국면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보수세력이 주도할 이른바 '수동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 온 것이다.
'위기론'이 '위기'로 전화될 때 이명박의 운명은?
문제는 '이명박 리더십'이 범보수진영이 추진할 '수동혁명'과 결을 달리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사회 요소요소에 구축되어 있는 보수진영 진지들의 자발적 동의에 근거해 보수 헤게보니를 행사함으로써 사회를 보수적으로 재구조화하고자 하는 '젊고 건강한 보수세력'의 동태성과 이명박 후보의 '실적 중심, 기능 중심' 리더십이 보여주고 있는 정태성 간에는 시너지를 만들어낼 접점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이명박 위기론'의 징후는 이명박 리더십의 정태성이 범보수진영이 요구하는 정치적 동태성을 구현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명박 위기론'이 '이명박의 위기'에 그치지 않고 '범보수 진영의 위기'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점이 범보수진영이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여전히 강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동혁명'의 관점에 설 때 이명박이냐, 박근혜냐 또는 제3의 누구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명박 위기론'의 징후들이 '이명박의 위기'로 가시화되는 순간 '후보교체론'으로 자동연결 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도 마냥 낭설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수동혁명'이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읍참마속적 속성은 당사자에게는 실존적 생존의 문제지만, 관중들에게는 영웅적 서사이고 이점에서 매력적 대안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