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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시정만 잘 되도 '비정규직의 한숨' 한결 덜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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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시정만 잘 되도 '비정규직의 한숨' 한결 덜 텐데…"

[일과 희망·20]비정규법에 대한 반응과 대책의 문제점

홈에버에 입점하고 있던 상인들이 민주노총 등에 대해 100억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랜드사태가 파국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랜드사태는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법에 대한 대표적인 시장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랜드사태에서 문제된 사항은 법 시행 이전에 이미 예상되어 왔던 것으로, 이랜드사태는 법의 문제점을 종합선물세트와 같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법이 시행된 날로부터 불과 2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정규법의 효과를 지금 단계에서 명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론을 통하여 나타난 대체적인 시장의 반응은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계약해지, 완전정규직으로의 전환, 별도직군을 전제로 한 정규직 전환, 외주화가 그것이다.

광범위한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적극적인 법적 대처가 필요하다
▲ 계약해지는 공공부문, 민간부문을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법 시행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사용자의 극단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랜드가 대표적인 예다. ⓒ프레시안

계약해지는 공공부문, 민간부문을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법 시행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사용자의 극단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해지된 부분에 대한 인력수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한 그 일자리가 계속적으로 공백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비정규법이 기간제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제근로자의 고용을 오히려 없애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사태는 결코 간과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집단적으로 기간제근로자의 계약갱신을 거부하는 조치는 정리해고와 다름없다. 개별적인 계약갱신의 거부와 질적으로 상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적인 계약갱신거부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법적 대처가 필요하다.

이와는 별도로 이 기회에 2년이라는 기간제한이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차별시정이라는 제도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그 기간은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간제한의 연장을 허용할 것인지는 차별시정제도의 효과적인 운영을 통하여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위해서는 '차별시정'이 잘 돼야한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비정규직을 일반적인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은행, 하나은행, 신세계, 현대차·기아차, CG투자증권 등 일부 기업에서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비정규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전정규직화가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비정규법에서 정하고 있는 차별시정제도가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기능하여야 한다. 실효성있는 차별시정제도를 통하여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하여 정규직과 동일한 급여 등을 보장하게 되면, 굳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이유, 즉 비용절감의 효과가 없게 되는 것이다.

'차별시정'의 준비와 자세 돼 있나?

문제는 과연 차별시정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위원회나 근로감독을 담당하는 노동부가 내실있는 준비와 적극적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차별판단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는 법원이 이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현단계에서는 '그렇다'라고 답하기가 어렵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확립된 차별시정법리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별시정법은 남녀고용평등법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라는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이 법은 지난 1987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제정된 지 20년을 맞이한 법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그간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적인 고용관행을 상당부분 시정하여 왔다고는 하지만, 남녀고용평등법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극히 적다. 바꾸어 말하면 차별에 관한 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최근에 와서 일부 학자에 의하여 차별에 대하여 법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수 역시 극히 적다. 우리나라에서 차별시정법리는 이제부터 연구가 개시되는 단계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노동위원회나 노동부, 나아가 법원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을 하기 위한 기초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 우리 노동부는 차별시정 문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과감하게 접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법리에 비추어 보면 차별시정에 상당히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프레시안

노동부의 '차별시정제도안내서', 혼란의 시작점 되나?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3일 노동부가 '차별시정제도안내서'를 발표하였다. 차별시정안내서는 현장에서 제도 시행 초기의 혼란을 줄이기 위하여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초연구나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법원에 의한 법적인 판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해석상 논란이 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제시함으로써 노사 양측의 반발대상이 되고 있다. 차별시정제도안내서에서 제시한 내용 중 일부는 오히려 향후 혼란의 불씨가 될 여지조차 있다.

영국에서 2000년, 2002년의 비정규법의 실시와 관련하여 영국 노동부가 발간한 가이드라인이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 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서술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에서는 남녀차별, 장애인차별, 인종차별 등 각종 차별제도의 오랜 운용 역사를 가지고 있고 확립된 차별금지법리가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차별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법적 해석에 대한 판단권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 즉 법원이 가지고 있고, 법원의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법적 쟁점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과감하게 접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법리에 비추어 보면 차별시정에 상당히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차별시정의 1차 판단기관도 우려투성

현행 법에 따르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시정은 일단 노동위원회가 1차적으로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의 차별시정담당 심판위원의 역할이나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선임된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의 구성을 보면 차별시정에 관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상당한 의구심을 낳게 한다.

노동법교수가 대부분 배제되고 회계학이나 경영학 등을 전공한 분이 상대적으로 많이 구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규범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차별판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단지 필자의 소심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구성이 이루어지게 된 이유는 노동위원회의 심판담당 공익위원의 선임방법에 상당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노사당사자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위원후보를 배제할 수 있는 현재의 선임방법으로는 전문가가 오히려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의 선임방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선임된 차별담당 공익위원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훈련으로 대처하는 수밖에는 없다.

결국, 현재로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적극적인 차별시정을 통하여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는 제한적으로만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법의 성패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차별시정제도의 운영에 달려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여,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 기존의 비정규근로자를 파견, 도급, 하청 등 간접고용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은 이랜드사태의 해결방향에 따라 폭발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현재의 비정규직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프레시안

외주화 확대되면 비정규직법은 종이조각될 것


우리은행사례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분리직군을 전제로 한 정규직 전환은 새로운 시도로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제도와의 정합성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특히 성별에 따른 직종분리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나아가 승진이나 다른 직군으로의 이동이 봉쇄된 폐쇄적인 형태의 정규직화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비정규근로자를 파견, 도급, 하청 등 간접고용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은 지금도 여러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랜드사태의 해결방향에 따라 폭발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외주화는 비정규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외주화를 제한없이 허용하면 비정규법의 목적이 유명무실화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외주화를 통한 비정규법의 회피라는 현상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상, 외주화 등 간접고용에 대한 법의 개입은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어떤 방법과 내용으로 간접고용을 규제하는가 하는 것이다. 외주화에 대한 절차적 제한으로부터, 간접고용된 근로자의 근로조건보호, 사용자책임의 확대와 명확화, 외주화의 절대적 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정책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어떤 방법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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