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가 없는 게임은 재미없다. 한쪽이 멀찌감치 앞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승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종의 의무감으로 앉아있는 관중들의 답답함은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없다 해도 이기고 있는 쪽에서 변수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변수의 싹을 원천제거해 최대한 판을 단순하게 정리해 가는 것이 앞선 측의 게임 운영 방식이다.
그렇다면 쫒아가는 측의 게임운영은 어떠해야 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변수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오죽하면 흔들기도 모자라 용패를 쓰기까지 하겠는가.
2007 대선에서 어느 쪽이 판을 간명하게 정리해야 하는 쪽이고 어느 쪽이 최대한 판을 흔들어야 하는 쪽인지는 자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상식에 반하므로 재미있는 게 아닐까.
박근혜, 한반도대운하...이명박에게 쌓인 '집안 문제'
이명박의 지난 2주일을 판을 간명하게 정리하는 과정으로 설명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렵겠다. 쓸데없이 반성을 요구했다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듣지나 않나. 2선 후퇴니 뭐니 해서 자중지란에 빠지지를 않나. 급기야는 '당권, 대권 분리론'에 같은 당 사람하고 '회담'까지 하게 생겼으니 참으로 판을 잔뜩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
사실 전체 판을 관리해야 할 이명박에게 한나라당의 어수선한 상황은 최대한 빨리 소리없이 정리해야 할 '집안문제'다. '대마에 가일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근혜 측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한들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아닌 말로 후보 자리를 내놓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박근혜 측 관리 문제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이번 경선에서 이명박 측에 섰던 사람들에 대한 관리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이명박 후보의 기능주의적 사고방식과 나름대로 "올인" 했다고 생각하는 자칭 타칭 공신들 간에 심각한 정서적, 정치적 이격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원점에서 검토해야 할 '한반도 대운하 공약'문제도 있다. 이한구 신임 정책위의장의 거듭된 언명이 아니더라도 그 동안 대운하 재검토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음은 다 아는 일이다. 공약의 경제성, 타당성도 따져봐야겠지만, 이 공약을 계속 가져가는 게 판을 운영하는 데 어떤 득과 실이 있는지를 전략적으로 따져 봐야 할 시점이 됐다는 뜻이다.
변수를 줄이고 판을 간명하게 만들어 가야 하는 이명박에게 '청와대 고소사건'은 좀 느닷없는 일이긴 하지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내부가 시끄러우면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판을 운영하는 자가 즐겨 써 온 방략이 아니던가. 이쯤되면 "일체의 정치적 계산없이 대처하겠다"는 청와대를 순수하다해야 할지 순진하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흥행 요소 원천제거한 신당의 예비경선
이와는 반대로 판을 흔들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대통합민주신당 쪽을 보면, 판을 흔들기는커녕 간명하게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으니 이 또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후보도 알아서 5명으로 줄이고 뭐가 그리 급한지 한달 안에 모든 걸 끝내겠다고 야단이다. 이러니 응답률 47%에 비공개가 공개로 둔갑하고 4등과 5등이 뒤바뀌는 황당한 실수와 허점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국민들이 경선에 관심을 갖는지, 국민을 감동시킬 이벤트는 준비되고 있는지 아예 관심 밖이고 그저 대충대충 빨리빨리 '나를 후보로 확정시켜달라. 그때부터 시작하겠다'는 기세로 '일로 앞으로'다.
상황이 이러했으므로 신당의 예비경선은 예상대로 참으로 재미없게 끝났다. 드라마도 없었고 이변도 없었다. 조직과 세의 위력만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번 예비 경선을 통해 신당은 어쩌면 국민들이 열광할 드라마의 소재를 원천 제거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대통합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었던 추미애의 탈락과 반(反)FTA를 중심으로 '반한비노(반한나라 비노무현) 전선'을 가시적으로 구축할 수도 있었던 천정배의 탈락을 보는 심정이 편치 않은 이유다. 각설하고.
신당의 경선 포인트는 딱 한가지로 좁혀져 버렸다. 친노 후보들인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이 언제, 누구로 단일화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문제는 이 포인트조차 국민적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친노 후보들의 단일화는 노사모와 참여정부평가포럼과 노무현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일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식상한 이벤트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역으로 묻자. '초록이 동색'인 이들의 단일화에 왜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러므로 조직과 세를 무기로 한 2명의 '비노' 후보(손학규, 정동영)와 또 다른 조직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3명의 '친노' 후보, 이렇게 5명이 연출할 TV토론과 합동 연설회 또한 국민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 '그들만의 잔치'로 치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버렸다. 새로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갈 길은 먼데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형국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따라서 이제 범여권이 기댈 것은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과 문국현 간의 경쟁과 타협이 만들어낼지도 모를 대통합의 드라마다. 아니 통합이 아니라 후보 단일화면 또 어떠랴.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드라마적 요건만 갖춘다면 그 어떤 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주연 배우들의 비중이 커져서 드라마를 자신에게 맞추라고 몽니를 부리는 상황이 연출될 위험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지지율의 범여권이지만 여기에도 선두는 있고 블루칩은 있는 법이므로 때 아닌 '왕자병'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합 또는 후보 단일화라는 마지막 드라마를 위해 변수들을 만들어내고 후보들은 관리해 나갈 범여권의 판 운영 능력의 실체가 자못 궁금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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