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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화의 대생 인수, 죽 쒀서 개 준 격"

이종구 전 금감원감사 주장, 대생 의혹 재점화

지난 1999년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단 국장으로 대한생명 매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이종구 전 금융감독원 감사가 저서를 통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의혹을 재차 제기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지금 한화그룹은 불법대선자금 수사과정에 한나라당과 서청원 전대표에게 50억원, 열린우리당 이재정 전의원에게 10억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런 전방위 로비가 대한생명 인수 특혜의혹을 덮기 위한 게 아니었냐는 검찰의 의혹을 받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강남갑에 출마를 희망하며 최근 금감원 감사직에서 물러난 이종구씨는 최근 출간한 <원칙이 개혁이다>라는 저서에서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국내 재계와 미국이 치열하게 펼쳤던 로비 비화를 공개하며, 자신이 실무에서 빠져나온 뒤 무자격자인 한화로 대한생명이 넘어간 것을 "죽을 쑤어서 개를 준 격"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특히 이같은 대한생명 인수과정에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윤진식 산자부차관 등 당시 권력실세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이종구 전 감사의 저서 가운데 문제 내용을 전제한다. 편집자주

***대한생명의 부실과 매각결정**

국내 최고높이의 63빌딩. 국회의사당과 함께 여의도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우뚝 솟은 대한생명빌딩의 위세와 달리 이 빌딩을 지은 신동아그룹은 1999년 2월 최순영 회장이 외화밀반출 혐의로 구속되면서 급속히 침몰하고 만다.

선친인 고 최성모 회장의 타계로 1976년 신동아 그룹 총수 자리를 이어받은 최순영 회장은 ‘김대중 정부에 의해 구속된 첫 재벌 총수’란 불명예 딱지가 붙기 이전까지만 해도 ‘경영을 잘하는 대표적인 2세 경영인’으로 꼽혀 왔다.

대한생명은 당시 총자산 14조 7천억 원의 생보업계 빅3였다. 하지만 속내는 이미 자산과부족 상태였다. 즉 자산보다 부채가 많다는 뜻이다. 이 규모가 어림잡아 2조9천억 원에 이르렀다.

정부는 더 이상의 부실을 막기 위해 대한생명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 매각을 결정한다.

당시 대한생명 대주주인 최수영 회장은 매각에 강력히 반발했다. “부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돌아가고 있는 회사이므로 그 정도 규모의 부실은 경영 수익을 통해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이후 최 회장은 소송을 제기해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위 구조개혁단 국장으로 대한생명의 매각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고 있던 나에게도 많은 로비와 압력이 들어왔다. 최순영 회장의 동서는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찾아와 최 회장과 대한생명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고 다양한 경로에서 최 회장의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공무원 생활 가운데 대한종금과 함께 대한생명 처리과저에서 이런 저런 부탁과 압력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대한생명 매각 결정은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있었다.

***LG, 롯데, 한화 등 군침**

LG, 롯데, 한화그룹을 비롯한 국내 재벌사는 물론 리젠트퍼시픽, 메트로폴리탄, 파나콤 등 해외업체가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LG그룹이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겨주는 대가로 대한생명을 인수할 수 있도록 정부에 여러 경로로 요청했지만 재벌의 집중화 문제 등으로 제외됐다. 강봉균 재경부 장관은 “5대 그룹이 부채비율 등 구조조정을 완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생명을 넘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으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화 역시 김승연 그룹회장이 직접 제안서를 갖고 구조개혁기획단을 찾아왔다. 고등학교 후배라는 개인적 연은 있었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썩 믿음직해 보이지 않았다.

대한생명 처리 과정에서 금융감독위 내부에서 짐짓 관심을 가졌던 곳은 롯데였다. 우리 경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기업이라 비교적 얘기도 편할 것 같았고 이후 기업 운영도 잘할 것 같은 이유없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롯데에서 처음엔 관심을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들리는 얘기로는 롯데 신격호 회장이 대한생명을 인수하려던 차에 아버지 묘소가 도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급선회했다는 것이었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불교신자인 자신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닮은 대한생명빌딩을 인수하려 하자 안 좋은 징조로 도굴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매각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인 곳은 파나콤사였다.

***파나콤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매입하겠다"**

파나콤사의 적극적인 구애는 당시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매각에 파란불이 켜지면서 언론을 비롯한 증권가, 금융가에서는 파나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파나콤은 독점적 협상권을 인정해 주면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지 않고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의 인수 의사를 전달해 왔다. 해외 기업 중 누구도 입질을 하지 않던 때라 파나콤의 인수 조건은 더욱 빛을 발했다.

파나콤의 대표는 데이비드 장,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부인은 일본인이었고 워싱턴에 호텔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파나콤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없던 때였다. 고작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대니얼 머피가 파나콤의 회장을 맡고 있는 회사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 파나콤이 토리첼리 상원의원과 한국의 거물 정치인을 동원해서 구입하겠다는 제안서를 낸 것이다.

오비이락 격으로 전 미국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다음해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방문했다. 실제로는 여러 가지 한국관련 사업을 추진하려던 칼라일을 돕기 위한 방문이었다. 아버지 부시와 이헌재 금감위원장, 그리고 내가 신라호텔에서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일이 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부시가 파나콤의 로비를 위해 방문해 우리를 만난 것인 양 넘겨짚어 기사화했다.

***미국의 집요한 로비압력**

파격적인 제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안기부와 미국에 거주하는 금융 관계자에게 은밀한 조사를 맡겼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이 회사는 뉴저지주 포틀리에에서 창고와 같은 건물의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도대체 이 회사의 주력 업종이 무엇인지, 수익은 어디서 발생하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이후 미국 언론을 통해 대표자격인 데이비드 장은 1990년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사실은 있는데 여권이 두개, 출생지는 두 곳, 생일은 세 가지나 되고 이중으로 결혼신고가 되어 있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로비는 만만치 않았다. 토리첼리 상원의원 및 워싱턴과 뉴저지주의 여러 의원들로부터 데이비드 장을 추천하는 편지가 국무총리실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조사 내용이 사실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사기꾼인지 아닌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1999년 5월 말 힐튼호텔. 나와 데이비드 장 그리고 여자 변호사와 파나콤 한국 대리인이 함께 만났다.

능숙한 화술로 그가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먼저 토리첼리 상원의원이나 클린턴과 막역한 관계라 자랑했다. 클린턴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밥은 맛이 없다”며 청와대 만찬 20분 전에 피자를 배달시켜 스위트룸에서 같이 먹었다는 둥, 주한 미대사 임명에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뉴저지주 연금기금 등을 이용해서 대한생명 인수에 필요한 1조5천억원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날 만남 이후에도 나는 파나콤이 대한생명을 매입할 만한 적합한 업체라는 신뢰감이 생기지 않았다.

***파나콤의 협박과 종말**

일이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협박까지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대한생명 구조조정 작업의 실무책임자인 구조개혁기획단 심의관인 나와 정채웅 과장에게 편지가 전달된다. 파나콤에서 보낸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당신(나)과 정 과장이 최근 법원에서 ‘파나콤이 금감위에 제출한 투자제안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여러 명의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돈을 지불했다’고 비난했으나, 이는 거짓일 뿐만 아니라 워싱턴에 큰 분노와 경악을 불러일으켰다…이같은 진술은 파나콤의 평판을 손상시킴은 물론 미국 의회의 명성을 더럽히는 것이다…파나콤은 당신과 정과장의 모든 공식발표를 주목, 그 내용이 거짓되고 명예를 손상시킬 경우 개인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민-형사상의 처벌을 법정에 요청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정 과장은 법원에 결코 파나콤이 미국 의원들에게 돈을 지불했다고 밝힌 적이 없었다. 이는 헐뜯기 위한 파나콤측의 날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데이비드 장의 사기 행각은 미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다. ‘뉴욕타임즈’가 1999년 8월 데이비드 장을 특집기사와 사설로 다루며 미국내 정치인의 비리 연관성을 집중 제기하고 나선 것, 이를 계기로 데이비드 장은 미연방수사국의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해 11월, 파나콤을 도왔던 로버트 토리첼리 상원의원이 기자회견을 했다. 부패 추문에 시달려 온 그가 코앞으로 닥친 선거에 재출마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데이비드 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가 시작되면서 상원의 견책을 받았던 그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부패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선거전이 시작된 후 경쟁 후보에 비해 10%이상 지지율이 떨어지는 열세인 상황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이것은(파나콤과 관련한 스캔들로 인해 낙마하게 된 일)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이라면서 울먹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파나콤에 대한생명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일 파나콤에 대한생명이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느낌이다.

시간이 흘러 파나콤의 사기행각이 잊혀질 때쯤인 2000년 6월, 미국 방문길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인 심달섭 워싱턴 재경관이 ‘뉴욕 타임스’의 팀 고튼 기자가 이홍구 대사를 방문하여 “토리첼리 상원의원을 포함한 미국 정치관료들이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파나콤 로비에 적극 나섰으나 한국 관리들(나와 실무자를 지칭)이 이에 굴복하지 않고 잘 처리했다”며 칭찬하더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의미 없이 대한생명은 이후 매각자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한화그룹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일을 두고 속된 표현으로 “죽 쑤어 개 준다”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정형근 의원의 폭로**

“공적자금 축낸 부도덕한 재벌에게 대생을 넘겨선 안 돼.”(금감위 고위관계자. ‘동아일보’2002.9)

2002년 9월 25일자 신문에는 대한생명의 한화 인수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폭로 내용이 알려진다.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 청와대와 민주당 등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정형근 의원이 제기하면서 그 근거로 한화 김승연 회장의 전화통화 내용이 적힌 도청자료를 내놓은 것.

정 의원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2002년 5월 5일 성균관대 강금식 교수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자 한화 김연배 사장에게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접촉해 협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또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가 지체되자 해외체류중이던 2002년 9월 4일 평소 친분이 있는 청와대 김모 민정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한화의 대생인수를 조기 매듭짓기 위해선 박지원 비서실장이 나서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박 실장이 재경부 윤진식 차관에게 ‘9월 5일 공적자금특별위원회 회의때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가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조치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식으로 강하게 지시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물론, 로비를 받았거나 압력을 행사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정황적으로 정 의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화그룹의 결격 사유**

나는 처음부터 한화의 대한생명인수에 반대하는 입장을 펴 왔다.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몇 가지 결격 사유가 있다.

먼저 한화그룹은 퇴출된 한화종금과 충청은행의 대주주로서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었다. 한화종금 등 금융계열사 부실로 약 1조5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받았고 실질적 대주주였던 충청은행까지 합치면 무려 3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받은 기업이다.

이에 반해 대한생명은 2001년도 8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어 건실해진 상태였다. 이런 대한생명을 한화가 8천2백36억 원에 인수한다면 상식에 비추어 봐도 누가 정상적이라고 볼 것인가? 더구나 한화그룹은 부채비율도 2백%를 넘을 정도여서 재무건전성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가장 중대한 결함은 한화그룹은 계열사간 분식회계를 적발당해 금감원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는 점이다. 시장의 신뢰를 먹고사는 보험사의 대주주로서 한화그룹은 적절치 못한 과거가 너무 많았다.

왜 이런 기업에게 왜 흑자를 내고 있는 건실한 기업을 서둘러 매각해야 했을까?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대한생명의 매각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적자금을 회수할 때의 국가경제에 대한 철학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다.

한화그룹에 넘어간 대한생명에 대해서는 아쉬운 대목이 많다. 또한 정부 스스로 헐값 매각 시비를 무릅쓰며 한국 금융시장의 도덕적 수준을 낮춘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유감스럽다.

***'새털보다 가벼운 부담'**

여기서 (1997년 외환위기직후) 재벌그룹 종금사의 처리과정을 별도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는 동양종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실을 막기 위해 전그룹적으로 최선을 다한 경우다. 동양종금은 공적자금의 지원없이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왔다.

두번째는 한화종금과 같이 공적자금 투입에 의한 해결방법에 기대어 퇴출의 길을 선택한 경우다. 이 과정에서 한화그룹은 부실덩어리이던 한화종금에 공적자금 1조5천억원을 수혈받는 방식으로 그룹사에서 떼어내고, 계열사로 볼 수 있는 충청은행도 1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은 후 하나은행으로 합병됐다.

무려 3조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부실사를 그룹에서 떼어내고 다시 정상화한 한화는 2000년 2월경 창투사인 한화기술금융을 만들어 금융계에 재진입했다. 물론 계열사 한화증권을 통해 한화종금에 투입한 공적자금 1천3백억원을 한국증권금융(주) 바행 채권으로 사는 방식으로 경제적 부담을 졌지만, 3조원의 혈세에 대한 비용지불이란 측면에서는 '새털보다 가벼운 부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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